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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영아 Aug 19. 2021

#12 벌레가 나타났습니다

불편한 동거 시작입니다


 

난 벌레를 참 싫어한다. 

좋아하는 사람이 드물겠지만, 

혼자 살면서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벌레 잡기였다.


     

내 몸집의 수백 배는 차이가 나는 벌레인데도 싫다. 가끔 푸드덕거리는 소리에 얼어붙을 때가 있다.

설마 벌레인가?! 하면서 긴장을 잔뜩 한 채 바라보다가 벌레가 아니면 안도의 한숨을 내뱉고 하던 일을 계속하곤 한다.     


낡은 집이다 보니 방충망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 방충망이 없는 부분이 있어서 간이 방충망을 설치해놨다. 설치한 방충망에 틈이 있었는데 이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나 보다. 

 




             

“물건을 두고 왔네…. 어디에 뒀더라?”     

외출하기 전 두고 온 물건이 생각나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런데….    

벌레와 눈이 마주쳤다.


어? 어어….   

  

순간 당황해서 온몸이 얼어붙었다.  


왜 쟤가 저기에 있지?

손톱만 한 데 무슨 벌레지? 


그런데 벌레도 똑같이 생각하는 듯하다.

잠시 얼어붙었다가 정신이 퍼뜩 들었는지 샤샤삭 도망친다. 

    

놓칠 수 없다! 싶어 벌레용 스프레이를 가지러 간 사이 벌레가 사라졌다. 

그 후 나는 이 벌레와 불편한 동거를 하기 시작했다. 


    


여름이 되면 크고 작은 룸메이트가 늘어난다.  


내 손이 닿지 않는 천장까지 열심히 올라가는 무당벌레.

나방인 것 같은데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 수 없는 날개 달린 애.

밤에 베란다 불을 잠시 켜놨더니 그사이에 조명 근처에서 푸드덕 춤추는 애.     

그리고….

잘 때마다 윙윙거리며 나를 공격하는 모기까지.   

  

장마 기간 때는 더 심하다.

큰비가 올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지 염치없이 창문을 통해 우리 집으로 들어온다.     


방충망 설치하기 전이었다. 더워서 열어놓은 창문으로 열심히 날아 들어온다.


여긴 도심의 고층빌딩인데도 벌레들이 날아 들어오는 걸 보면 생명의 경이로움에 감탄하게 된다.

그래. 너희들도 살려고 애쓰는구나.   

  

어쩌면 이 더운 여름 햇빛을 피해 햇빛이 잘 안 들어와 음습하고 시원한 북서향 집으로 들어온 것일지도 모른다. 새삼, 이 지구가 인간만이 사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쪼끄만 룸메이트가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내 한숨도 늘어난다. 대체 어떻게 들어온 걸까.

  

평소처럼 책상이 아닌 테이블에 앉아 원고를 하고 있는데 바닥에 꼬물꼬물 누군가가 지나간다. 무당벌레다. 

창문을 열어놨었고 더워서 지친 상태라 알아서 나가겠지 싶어 놔뒀더니 천장으로 올라갔고 어느 순간 사라졌다.     


그래. 더위 잠깐 피하고 다시 갈 곳으로 돌아간 거겠지.     

그렇게 잠깐 집에 들어왔다가 사라진 벌레들이 생긴다.


두 번 다시 보이지 않는 걸 보니 더위만 피하고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간 것 같다. 큰 벌레가 아니니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무더운 여름철 

지나가는 벌레들의 쉼터가 된 것 같은

북서향 집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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