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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진 Nov 11. 2024

아들

열여섯 번째 조각


날씨가 좋은 날은 무작정 걷는 게 좋아요. 평소에는 귀찮아서 집에 있고 싶은 날이 많기 때문에, 마음먹었을 때 나가야 좋은 날씨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답니다. 맑은 공기, 시원한 바람, 때론 꿉꿉한 느낌 그리고 차갑다 못해 추운 날씨들 까지. 산책은 그런 맛에 하는 것 같아요. 그날의 모든 느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거요. 제가 가을이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었나 봐요. 따뜻한 햇살에,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고 좋더라고요.


아들이 어렸을 때는 밤에 그렇게 산책을 자주 했었는데, 요즘에는 그런 여유가 좀 부족한 것 같아요. 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것저것 할 일이 많은 엄마 때문에 덩달아 여유가 없어져 버렸거든요. 새 학기도 준비해야 하고 또 머리가 더 큰 만큼, 머릿속에 지식도 넣어줘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들이 받는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닐 거라 생각이 듭니다. 부모는 본인에게 부족했던 것을 자식에게서 채우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공부는 손을 놓고 살았던 저를, 그리고 그런 어린 시절 때문에 힘들었던 때를 생각하니 저희 아들은 나중에 최소한 본인이 원하는 길을 순탄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지는 거죠. 아마 이것도 제 욕심일 수도 있겠어요.


며칠 전 친구 엄마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그 친구는 곤충을 굉장히 좋아하던 아이었거든요. 그래서 곤충을 보러 가고 키우는 걸 좋아한대요. 근데 그게 참 부럽더라고요. 옛날의 저를 생각해 보면 늘 다른 친구가 하니까 나도 해 볼까?, 할 게 없으니까 나도 따라서 해 볼까? 하는 그런 줏대 없는 선택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저희 아들도 절 똑 닮아버려서 친구들의 선택에 많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더라고요. 원하는 분야가 있으면 저도 마음껏 밀어주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큰 거든요. 그래서 괜히 아들 친구가 그렇게 부럽더라고요. 이것 또한 역시 제 욕심이라는 걸 저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내려놓는 게 참 쉽지가 않아요.


아들은 제 두 번째 인생 같아요. 이렇게 말하면 아들한테 집착하는 못된 시어머니가 될 것 같은 뉘앙스이긴 한데... (절대 아니에요ㅠㅠ) 나름 인생 선배로서 더 나은 길을 걷게 해주고 싶은 욕심이 점점 커져요. 누구나 사는 건 어렵고 힘들기에 쉽게 사는 방법은 없다 생각해요. 대신, 덜 힘들게 살 수 있는 방법은 가르쳐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전 저 나름대로 아들에게 자유를 주고, 하고 싶은 건 꼭 한 번이라도 할 수 있게 기회를 주고 있어요. 그 한 번이 인생을 완전히 바꿀 수도 있으니까요!


지난주에 아들이 유치원 캠프로 늦은 시간까지 원에서 시간을 보냈는데요. 그때 부모님께 받은 편지를 읽고 답장하는 활동이 있었어요. 저는 미리 써서 보내줘야 하기에 곰곰이 생각하다가 제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쓴 후 편지를 보내주었지요. 잘 자라주어 고맙다는 말과, 엄마가 부족해서 미안하다는 말을요.  그리고 제가 받은 답장에는 ‘엄마를 보면 너무 좋아, 그래서 엄마를 볼 때마다 항상 웃는 거야.’라고 써져 있었어요. 저희 아들은 저를 보고 눈이 마주치면 항상 웃어줬거든요. 저는 늘 화만 내고 못해준 것만 생각이 나서 마음이 아팠는데, 아들은 절 보고 행복했던 때만 생각이 났나 봐요. 이렇게 부모와 자식은 서로 바라보고 생각하는 게 다른가 봐요.


저도 늘 좋았던 때만 생각하면서 아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조금 더 애써보려 합니다. 소중한 건 늘 곁에 있어 너무 당연해지는 것 같아요. 오늘도 그 당연한 것들을 더 소중히 여기는 하루를 보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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