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딘 칼도 칼이지

2025년 11월 28일

by 고하진

저는 웬만하면 사람을 싫어하지 않아요. 저에게 나쁘게 행동하다가도 또 잘해주면 마음이 금세 풀리는 일명 호구입니다. 다만 저도 사람을 미워하는 때가 있는데요. 제 기준에서는 미움은 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기회인 것 같아요. 내가 뭐라고 기회를 주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모든 관계는 쌍방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서로에게 기회를 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연인이든 친구든 상대방이 저랑 놀기 싫으면 그 관계는 끝이잖아요.


그렇다고 미워하는 걸 잘하는 것도 아니에요. 혼자 꿍시렁거리다, 혹시 내가 잘못한 건 아닐까? 하고 갑자기 자기반성을 합니다. 그런 제가 사람을 칼같이 잘라낼 때가 있어요. 첫 번째는 저에게 무례하게 행동하는 사람인데요. 물론 한두 번 가지고 쩨쩨하게 잘라내는 사람 아닙니다. 잊지 마세요. 제가 호구라는 것을요. 무례한 태도의 횟수가 많아질수록 전 이미 상대방에게 ‘그렇게 해도 되는 사람’이 되었단 거겠죠. 참고 참다 저도 미련 없이 상대방을 잘라냅니다.


두 번째는 저와 안 맞는 사람이에요.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잘 맞는 것이 아니기에, 그런 사람은 어딘가에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앞서 얘기했듯 관계는 쌍방이기에 제가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으면 거리를 두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이런 경우, 제 칼이 그렇게 날카롭지 않을 때도 있어요.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칼을 다시 집어넣는 일은 없어요. 칼을 뽑은 순간 언젠간 끝을 꼭 보기 때문에요.


사실 가장 아픈 칼은 무딘 칼이에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과 행동이 그 관계를 더 망가트리거든요. 가끔 오롯이 나를 위한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어요. 제가 아프지 않기 위해서요. 그러기 위해선 칼을 아주 날카롭게 잘 갈아놔야 하는데, 전 왜 늘 녹슬고 무뎌있을까요?


때론 서로를 위해 잘라내야 하는 인연도 있어요. 무딘 칼도 칼이라고, 처음엔 힘들지 몰라도 순간이 아닌 나중을 본다면 그건 그 관계에 대한 가장 최선의 방법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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