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근무한 지 21개월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나는 제주도의 외딴 사무소에 배치받은 날을 떠올리면서 쏜살 같이 흘러버린 (혹은 너무 괴로워서 빨리 지났다고 스스로 암시하는) 시간의 속도를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배치 문서를 두 눈으로 확인했을 때의 당혹감
2년만 고생하라고 나를 달래던 인사팀
아직은 생생하게 기억나는 첫 출근 날의 풍경들
숱한 고민 끝에 상사를 고발한 늦은 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미화되기 마련이다. 나는 기숙사 고등학교에 다닌 적이 있는데, 성인이 되어 오랜만에 만난 같은 반 친구는 다른 동창들이 그 시절을 미화해서 아름다운 추억처럼 여기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때 우리는 정말 힘들게 공부했고, 우리의 담임 선생님은 -그 또한 그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지만- 우리들을 쥐 잡듯이 옥죄어오곤 했다는 사실을 친구는 잊지 않았다.
뜨끔했다. 나도 괴롭고 힘든 시간들은 장기 기억 어딘가에 처박아 두고는 성취의 순간들이나 친구들과 함께 했던 밝고 즐거웠던 기억들만 자주 꺼내보고 있었다.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축복이라고 그랬던가? 분노하는 친구의 모습이 조금은 무섭게도 보였고, 그의 말로써 잊고 있던 고난의 시간들을 끄집어내니 마음이 꽤나 불편했다.
좋은 기억만 남기는 내 뇌의 '저장공간 분류 프로그램'은 아마 제주에서의 근무기간이 모두 지나고 수도권으로 돌아간 그 어떤 날에도 성실하게 작동할 것이다. 앞서 떠올린 많은 장면들 중 여럿은 잊혀지고 애써 끄집어낸다 해도 보정이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때는 고등학교 시절을 처절하게 기억하는 친구 같은 제3의 외장하드도 없어 더더욱 아름다운 제주살이의 한 페이지로 느껴질 것이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의 헨드릭 하멜은 일본으로 가던 중 제주도에 표류한 후 조선에 억류되고 네덜란드로 귀국하기까지의 여정을 기록했다. 17세기 조선의 모습을 기록한 최초의 유럽서적으로 사료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그의 표류기 위에 내리고 있다.
그는 왜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13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간 하멜은 그동안 받지 못한 임금을 동인도 회사에 청구했다. 그에게 이 기록물은 일종의 산업재해 보고서 내지는 출장 보고서였던 것이다. 그리고 제주발령기를 쓰고 있는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마 기록하는 그 과정 자체에 즐거움을 느꼈을 것이다.
언제쯤 돌아갈지 모를 기약 없는 상황에서, 언젠간 밀린 임금을 받아낼 것이라는 희망과 함께, 뜻하지 않은 여행에서 가득 차버린 이야기 보따리를 가족과 친구들에게 잔뜩 풀어낼 것이라는 묘한 기대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펜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힘들고 지치는 마음을 달래기도 했을 것이다.
또는 객관적인 사건들과 주관적인 감정들을 여과 없이 기록하며 그가 지내온 시간들을 언제든 날 것 그대로 꺼내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노트북을 켜고 하얀 바탕을 마주한 나처럼 말이다.
하멜은 본인의 글에 이런 제목을 붙였다.
Journal van de Ongeluckige Voyagie van 't Jacht de Sperwer
번역하자면, [Sperwer호의 불운한 항해일지]이다.
나는 어떤가? 나의 제주살이를 불운하다고 할지 행운이라고 할지 아직은 결정하지 못했다.
그렇게 내 앞에 놓인 하얀 바탕에는 '나의 제주발령기'라는 다소 진부하고 밋밋한 제목이 첫 줄을 차지했지만, 나중에 채워 넣을 수 있는 여백이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아마 이 발령기를 완성할 즈음이면 어떤 수식어가 어울릴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