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스타일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고 하던가. 딱히 우리 차의 잘못 같아 보이지 않던 상황에 상대 차량은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렸다. 반면 업무용 차량 SUV의 운전석을 자득 채운 큰 덩치의 소유자인 내 사수는 '아이고 미안합니다.'라고 혼잣말을 하며 비상 깜빡이를 켰다. 덩치만큼이나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일 것이라고, 태권도장에서 허리를 쭉 펴고 앉은 아이들처럼 긴장을 유지하고 있던 나는 짐작했다.
우리는 산방산 근처에 있는 순대국밥집으로 갔다. 차에 내린 나는 어떤 기시감을 느꼈고, 이내 대학시절 동기들과 제주도 여행을 와서 들렀던 식당이 길 건너 바로 맞은편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천진난만하게 놀러 와서 고기국수를 먹던 그때와, 정장을 입고 순대국밥을 먹는 지금이 꽤나 대비됨을 느꼈다.
식당에는 밭일을 하다 온 작업자들이 많았다. 그 사이 멀끔하게 정장을 입은 나는 그 공간에서 유난히 튀었다. 아니, 뚝배기에 담긴 국밥을 한 술 두 술 떠먹고 있는 사람들은 내게 큰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마음을 괜한 옷차림에 투영시켰을지도 모른다.
아침부터 술에 취해있던 그는 뜨끈한 국물을 보니 또다시 술이 당겼나 보다. 막걸리 한 잔 하자는 말에 나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술을 마시고 있지 않다고 답했고, 그는 약간의 실망과 조소가 뒤섞인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밥을 다 먹고는 담배를 피우냐고 물었다. 피우지 않는다고 답하니 조금 전 마주했던 표정이 보다 강하게 드러났다.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는 '이상한 놈'에게 그는 몇 마디를 툭툭 던졌다.
듣기 싫었다. 추운 날씨만큼이나 꽁꽁 얼어있던 긴장상태를 순대국밥이 조금 풀어줬기 때문인지, 오전 내 받은 스트레스가 임계점에 도달한 것인지, 나도 인상을 찌푸리며 한 마디 뱉었다. "그럼 뭐. 담배 배울까요?"
육지에서 온 나를 배려했던 것인지 바다가 보이는 해안도로로 빙 돌아서 사무실로 이동했다. 남들은 보고 싶어 안달 난 제주 바다를 눈앞에 두고도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순대국밥이 맛있었으니 망정이지, 맛이 별로였다면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며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사무실에 도착한 나는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내가 앉을 의자는 망가져서 삐걱거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쪽으로 기울어있었다. 사무실 천장에는 빗물이 새서 곰팡이가 보기 싫게 슬어있었으며, 콘크리트조 창고 벽면에는 금이 쩍쩍 가있고 슬라브 창고에는 해풍으로 인한 녹이 잔뜩 껴있었다.
젠장. 단톡에서 저마다의 첫 출근 소감을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내 동기들은, 이런 광경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의자가 고장 났다고 말하니 그는 알고 있는데 예산이 없어서 그냥 써야 한다고 했다. 환장하겠다는 표현이 딱 어울렸다.
오후엔 구성원들에게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그에게 정신교육을 받았다. 서귀포시 대정읍에서부터 다시 제주시내로 돌아오는 퇴근길에서까지 실시된 이 교육의 엑기스를,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보내놓은 것이 있어 첨부해 본다.
완전히 무너졌다. 진심으로 토가 나올 것만 같았다.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첫 출근이 어땠냐고 물어보시는 부모님께는 그냥저냥 잘 다녀왔다고 둘러대고, 친구들에게 저렇게 하소연을 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어떤 억울하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멀쩡하게 툭툭 털고 일어나던 내가 이렇게까지 힘들어한 모습을 보지 못했었는데, 너무 놀라고 걱정됐었다고 절친한 친구 한 명이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이야기해 줬다.
지금이라도 못하겠다고 해야 하나?
아까 통화했던 인사팀 과장에게 전화를 걸어야 하나?
노조에서 이런 경우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이직을 괜히 했나?
...
코골이 앙상블이 일어나던 게스트하우스 2층 침대 위
차가운 1월의 공기를 피해 전기장판과 이불 사이에 몸을 욱여넣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나는, 코골이가 시끄러워서였는지 속이 시끄러워서였는지 도저히 잠에 들 수가 없었다. 그 난잡한 안팎의 소음들의 끝에, 나는 이제껏 늘 그래왔듯 이번에도 버티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길고 긴, 잊을 수 없는 첫 출근날이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