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rey수 Feb 20. 2024

섭섭한 프라푸치노 크림

D-1981


내가 데려다줄게. 


아냐. 괜찮아. 

친구들 만나러 가는데 데려다준다는 남편이다. 왜 남편이 나를 챙겨주는 것이 참 부담스럽고 어색할까. 무술이 팔자라 내 몸 움직이는 게 속 편한 것도 알겠지만, 그래도 15년 살아가며 아직도 낯선 건 왜일까. 그리고 내 몸 편한 것은 당연하게 여겨지기 십상인데, 여태껏 손사래를 치며 버스 타고 간다. 


 



내가 12살 때이다. 

부모님이 교통사고가 나셔서 아빠는 허리를 엄마는 목을 크게 다치셨었다. 이후 후유증이 심하여 치료를 길게 받으셨다. 더 어릴적은 사실 기억이 잘 안 나고 지금도 기억에 남는 장면은 이렇다. 장을 봐서 짐을 들고 30분을 걸어야 하는 일정이었다. 12살 내 양팔에는 손바닥이 빨갛게 피가 몰리는 짐을 들고 있었고, 어깨에도 하나 짊어지고 있었다. 엄마도 무거운 짐을 지고 가시지만, 아빠는 뒷짐 지고 먼저 쭉 걸어가신다. 그때는 허리가 아파서 그러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가족 챙기는 것을 모르는 남자였던 것이다. 


 엄마가 밥을 안 드셔도 왜 같이 안 먹냐는 궁금증을 갖지 않고 잘 먹고 일어나신다. 집안일은 당연하게 손도 대지 않으시고, 무거워 보이는 것 힘들어 보이는 것이 있어도 아빠는 가만히 앉아 계셨다. 전구를 가는 것도 변기를 뚫는 것도 아빠는 한 번도 해보신 적이 없다. 나이가 드셔서 음식물쓰레기 정도는 버리시지만, 몸이 아파 누워있는 엄마에게도 아직도 물 가져다 달라, 리모컨이 어딨냐 하신다. 건물에 들어설 때도 딱 아빠만 지나갈 정도 유리문을 열었다 놓아버리신다. 뒤에 가족들이 따라오고 있는데도. 시대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더 유별나게 안 자상하시다.


 아빠의 아빠(나의 친할아버지)는 한 번도 돈을 안 벌어 오셨다고 했다. 술 먹고 집안 물건 깽판 내는 것도, 학비로 술을 드셔서 학교 등록을 못하는 상황도 낯설지 않았다고 했다. 논에 비료를 주라고 잔소리 잔뜩 들은 날에는 논두렁 입구에 비대 한 포대를 몽땅 부어버리고는 다 하셨다 했다. 할머니는 세명의 자식을 키우기 위해 농사도 하시고 돼지도 키우시고 가장의 역할을 다 하셨다. 아빠는 집에서 행복이 아닌 생존을 목표로 살았어야 했고, 커서 꼭 돈을 잘 벌어다 주는 가장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꿈을 이루신 것 같다. 내가 커오며 사치는 못 부려도 학비 걱정하며 살지는 않았다. 부모님 노후를 내가 걱정할 필요 없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아빠는 성공하신 것 같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아빠도 나도 롤 모델의 부재가 있었다. 아빠는 올바른 가장의 롤 모델이, 나는 자상한 남편의 롤 모델이 없이 살아온 것이다. 


  


사주를 배우면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사주는 겪을 사건이 아닌 바라보는 시각을 이야기한다였다. 사실과 상관없는 나만의 시각에 대한 설명을 잘 보여주는 동화가 있다.  


옛날 옛적에 핑크를 사랑하는 왕이 있었어요. 

왕은 세상 모든 것을 핑크로 만들고 싶어서, 신하들을 시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핑크로 색칠하게 했어요.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칠을 해도 핑크가 아닌 것들이 새롭게 만들어져, 신하들은 지치고 왕은 슬퍼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가던 마술사가 왕에게 핑크색안경을 선물했어요. 그 안경을 쓰니 모든 것이 핑크색으로 보였답니다. 그리하여 왕과 신하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핑크킹요약)



 세상 모든 것들을 핑크로 볼 수 있다면, 실제로 핑크가 아니더라도 핑크인 것처럼 행복하다는 것이다. 명리학 사주팔자에는 내 삶의 시각이 나와있는데, 실제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바라본다는 것으로 마치 핑크색안경을 쓰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쉽게 말해서 인생이 꼬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실제 그 사람 인생이 꼬였다기보다는 모든 상황을 꼬였다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팔자라는 것이다.


 특히 관계에 있어서의 시각은 더 영향이 크다. 배우자가 아무리 잘해도 내가 배우자 운이 없다고 바라보는 사람은 전 세계 누구를 옆에 앉혀도 불만을 가질 확률이 크다. 자식이 전국 1등을 하고 인성이 너무 훌륭하더라도 자식을 사랑할 시각을 못 타고난 사람은 스스로 자식복이 많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 와중에 자식의 부족한 점만 돋보기처럼 확대해서 볼 가능성이 높다. 


 아빠의 사주에서 아버지의 존재는 뿌리 없는 창피한 존재다. 아버지가 나를 보살피지 못하고, 아버지로 인해 구설수에 휘말리게 되고 내가 아버지에게 끊임없이 희생해야 한다고 느끼는 구조이다. 반면 어머니는 겉으로는 무뚝뚝한 관계이나 나의 산소호흡기 같은 생명을 유지해 주는 존재이다. 그 사이에서 우리 아빠는 올바른 아버지의 롤모델을 찾기 힘들었음은 당연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와 닮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친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관계의 해석은 아빠의 시각에서 이다. 같은 부모아래에 다른 부모로 해석하는 자녀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같은 아버지를 뒀어도, 작은아버지와 고모의 시각은 아빠와 또 다르다. 같은 부모에 다른 느낌을 각자 사주 속에서 느끼며 살아간다. 


 내가 사주에서 바라보는 남편은 나를 보호해 주지만 다스리고 평가하는 모습이다. 또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 내가 끌린다. 그래서 남편을 만나기 전에 내가 끌렸던 사람들도 보면 그룹에서 리더 역할이나 조직의 장 같은 사람이었다. 다른 딸들이라면 절대 아빠 같은 사람을 안 만난다는 마음으로 자상한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나는 내 시각이 그런 터라 자상하지 않더라도 나를 잘 보호만 해준다면 불편함이 없다고 바라보는 것이다. 


 



스타벅스 가서 가장 고민되는 때가 무료 쿠폰으로 그린티프라푸치노를 먹을 때이다. 크림을 얹혀 먹으면 맛있겠지만 연중 다이어트가 이슈인 나에게 크림의 심리적 대가는 좀 크다. 그래서 빼고 주문하면 음료 전체가 맛이 떨어지고, 크림을 올리면 부드럽지만 부담스럽다. 크림러버라면 고민할 문제가 아니지만 그다지 크림과 케이크류를 좋아하지 않아서, 있으면 맛있지만 없어도 나쁘지 않다 정도로 마무리된다. 


 남편의 자상함이 나에게 그렇다. 

자상하게 해주면 고맙지만, 다른게 더 중한 나는 자상 안 해줘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남편은 워낙 자상한 아버지 아래 자라왔었고, 스스로 가족을 챙겨주며 만족을 느끼는 스타일인데 내가 자신의 자상함에 가중치를 전혀 두지 않음이 참 섭섭한가 보다. 자상함이 일등으로 중요한 여자를 만났다면 더 만족 했을 것을, 평가 절하되어 있으면 땡큐 없어도 그만이니 억울할만하다. 이런 면에서는 나는 남편 자상함에 의존도는 매우 낮다. 의존하지 않기에 기대도 낮고 실망도 적다. 독립적이라는 말로 스스로 기특해하고 싶지만, 이건 취향의 문제니 내가 노력한 것과는 다르다. 어쨌든 슬퍼하는 남편에게 위로를 해준다면. 




우리 딸은 당신 같은 자상한 남편을
롤모델로 삼아서 골라올 거야.
그러니 포기 말어.





(사진 출처 : unsplash, 대교 소빅스 철학동화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