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 1989
누가 더 힘들까요??
여러분. 저는요 남편이 너무 답답해요. 그런데 남편은 제가 너무 깝깝하대요.
결혼 16년이 된 이번 설에도 역시나 싸웠다.
시댁이슈는 정말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시댁 이야기가 없었음 탄생 못했을 드라마가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그동안 막장이라며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들이 소중하기는 하지만 그 속에 나의 등장은 매우 재미가 없다.
상황은 이렇다. 내가 결혼할 때 사드린 TV를 시부모님께서는 멀쩡하다며 아직 보고 계셨는데, 문제는 스마트 TV가 아니다 보니 넷플릭스 연결이 복잡했다. 순서를 써드리고 리모컨에 표시도 해드렸지만 70대 후반의 두 분에게는 등산만큼 벅찬 단계였다. 그러다 설 전날, 형님이 당근마켓에서 30만 원짜리 스마트 TV를 알아봐 중고로 장만하게 된거다. 사실 이번 설 전날 나는 처음으로 시댁에 못 갔다. 혼자 일어나 물도 못 마실 만큼 아파서 집에 누워있었다. 남편과 아이들은 집밥 없음을 알기에 시댁에서 저녁까지 해결하고 집으로 왔다. 남편은 오쟈마냐 컨디션이 어떠냐고 묻고는 종알종알 있었던 일들을 얘기했다. 하나도 안 궁금했지만, 엄마 만나고 와서 기가 살아난 어린애 마냥 수다를 떨었다. 한참을 얘기하다 TV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그러고는. 그래서?
응 현금 없으시대서 좀 보태 드렸어.
없던 힘이 불끈 누워있다 벌떡 일어났다. 나는 머리 꼭대기까지 화가 났다. 왜 이 말을 내가 묻고 묻고 물어야 말하는 건데!
딸 같은 막내아들에게 한없이 사랑 크신 시어머니와, 겉으로만 털털한 여우형님을 모시며 함께 지낸 시간들은 정말 힘겨웠다. 인생 꼬였다 싶을 정도로 어이없는 시집살이였다. 나의 하소연을 들은 친구들은 현실성이 떨어져 드라마 소재로도 안된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공감받아 좋았지만 누워 침 뱉기라 그 후에는 입을 닫고 10년의 세월이 지날 때쯤, 박힌 가시 주변에 굳은살이 생겨 아픔이 좀 익숙해졌다. 그 과정에서 나도 살고자, 남편과 만든 룰이 모든 돈은 내손에서 나간다 였다. 아들을 잘 키웠다는 어머님만의 자부심은 치우친 관계를 만들어 냈다. 생활비를 매달 드리고, 모든 행사에서 우리가 밥을 사는 게 자연스럽고 용돈을 많이 드리는 건 고맙이 아니라 당연했다. 내가 돈을 드리지 못하게 하면 남편은 어떻게 서든지 몰래라도 드릴 사람이었다. 시어머니의 아들은 엄마의 기대를 알기에, 못할 수 없음을 난 확신 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말했다. 행사때 드리는 돈, 생활비, 조카들 용돈까지 내가 더 많이 드릴 테니 모든 돈은 내 손에서 나가게 하자 했다. 코앞에서 더 많이 드릴 수 있다니 겉만 효자인 남편은 흔쾌히 동의했고, 그때부터 룰이 만들어졌다. 이렇게라도 해야 관계에서 내가 숨 쉴 순간이 생길 것 같았다. 잠깐이지만 돈이 내손에서 나가는 그때, 관계의 거리감이 빤짝 확보가 된다.
당근 30만 원에 왜 보태드렸냐고 화내는 건 절대 아니었다. 연휴라 다 큰 자식들이 둘이나 있는데 신상 TV도 아니고 중고를 시부모님이 돈을 내도록 하는 게 창피하지도 않냐고 물었다. 비싼 차 자랑은 하며 시댁에 TV 사드릴 돈이 없는 형님네나, 본인은 새 상품을 잘도 사면서 부모님 중고 사시는데 전액도 아니고 일부 보탰다며 얘기하는 남편이 너무 한심해 보였다. 내가 화가 난 건 다른 부분이다.
룰이 어쩔 수 없이 깨진 상황을
묻기 전에 나에게 먼저 말했어야지.
편관이 있는 남편과 정관 있는 나는 같은 컬러이지만 베이비 핑크와 검붉은 자주 같은 느낌이다. 남편의 언어는 부드럽고 듣기 좋으나 정확하지 않게 말을 할 때가 있다. 자세히 물으면 그냥 생각 없이 말한 거라는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데, 생각을 통하지 않고 말을 한다는 것은 나는 하라해도 못한다. 내 언어는 차갑고 오피셜 한 말투이나 정확하지 않을 때는 입을 닫고, 잘못도 먼저 이실직고하려 한다. 들키고 사과하면 쪽팔리니까. 물론 이건 곡해된 와이프의 시각이라 할 수 있지만, 다행(?)스럽게 도 사주의 해석이 그런 편이다.
나는 자존심과 명예가 중요한데, 실수할 때 먼저 매를 맞아야 속 편한 스타일이다. 업무 보고를 할 때도 잘한 것보다 못한 것을 먼저 말해 욕먹을 것을 다 먹고 잘한 것을 얘기해야 스스로 멋(?) 있다. 남편 왈 내가 고생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고생을 하는 전문고생러라 했다. 슬프게도 맞는 말이다. 목구멍까지 그래서 '결혼도 없는 고생 만들려'라고 하고 싶었으나 나의 장점을 살려 입을 닫았다.
남편도 겉으로 멋있는 게 너무 중요한데, 약한 점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나와의 차이점이다. 사주 구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남편은 스스로의 부족함과 약함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고 다른 이유를 찾아서 합리화하고 넘기는 편이다. 덕분에 마음 다치거나 상처받을 일이 적고, 회복 탄력성이 뛰어나다. 언뜻 자존감이 높아 보이지만 반대로 보면 사실 더 겁이 많다. 처음에 K장녀인 나는 막내아들이라 엄마한테 안 혼나려 말을 빙빙 돌려하는 습관인가 싶었다. 명리를 배우고 습관이 아니라 타고난 거라 평생 못 고치겠다는 불필요한 이해를 해 버렸다. 일상에서 이런 유형의 사람이 있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안 만난다는데, 그러면 뭐 하나 집에 오면 버젓이 있는걸.
내가 원하는 답을 또박또박 말한다.
오늘 이러저러한 상황이 있어서 너한테 상의할 겨를이 없어 내가 알아서 드렸어라고 다음부터는 (특히 시댁일은) 반드시 묻기 전에 먼저 말하라 정답을 알려준다. 못 외우고 다음에 또 싸울 것이 뻔하지만 이 것조차 안 하면 너무 미래가 없어 보여 못할 것을 알면서 말속에 형광펜을 혼자 그어본다. 내가 원하는 답 말하기가 안 되는 사람인 것을 아니까 화내고 요구하면서도 안 되는 게 이해 간다는 맥락 안 맞는 말을 한다. 사주 몰랐을 때는 왜 저럴까 싶어 이유 몰라 답답했고, 알고 나니 이유를 알아 평생 참고 살아하는 게 답답했다.
남편은 숨 막힌다고 했다.
업무 미팅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머리를 긴장하고 매번 중요하다는 것을 안 놓치고 말해야 하는 것이 본인은 불가능하다고 말했고, 나에게 너무 깝깝한 여자라 했다.
나도 숨 막힌다.
목이 콱 막힌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문제 생기면 수습하고, 문제 생기기 전에 잔소리하는 나는 맨날 나쁜 역할이라 더 힘든데. 오늘따라 디기 별로인 여자로 날 말한다.
안다. 나도 당신이 깐깐한 남자가 아닌 게 좋아서 결혼했음을.
그래도 그건 그거고 답답한 건 고구마다. 어디까지가 깝깝과 답답의 중간쯤 일까.
깐깐하고 꼬장꼬장한 미래의 백발 할머니가 자꾸 떠올라 기분이 나쁘다. 나도 깝깝한 당신 마음이 억울하게도 이해는 간다. 그래도 밸런스게임에서 나의 선택은
답답이 더 힘들다!
(사진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