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 1974
나는 언제 행복했던가?
행복이라는 것은 과거형 언어라 생각한다. 어느 순간 짜릿한 즐거움은 있을 수 있지만, 결국 과거를 해석함에 있어 나는 행복한 사람이구나, 오늘 하루 행복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바닷가를 걸어가다 잠시 멈추어 내 발자국을 뒤돌아 바라보는 그 순간 뱉는 말인 것이다.
내가 가진 기준이 높아서 기준을 낮추려 노력해 보았고,
내가 가진 기준이 많아서 기준 없이 바라보려 용써 보았고,
행복함을 인지하지 못하나 싶어 이것저것 취미로 삐걱대 보았고,
나를 몰라 그러나 싶어 명리학도 심리학도 아프게 헤매어 보았다.
그런데 잠시 잠깐 뿌려보는 향수 같았다.
다시 익숙한 냄새가 바탕색을 칠한다.
그래서 더 이상 행복하려 하지 않으련다.
백만 가지 조건이 맞아야 되는 그런 무모한 것을 목표 삼아 살지 않으려 한다.
죽는 순간 행복했었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부질없는 꿈임을 알기에 모른 척했다.
지금까지 안된 것을, 다만 노력이 부족하다는 자학으로 계속 꿈꾸지 않으련다.
행복하지 못하면 불행했어야 했고,
완벽하지 않기에 불안했어야 했다.
불안해서
이 세상이 무서웠고, 삶이 겁났고, 기댔어야 했고, 화냈어야 했다.
나는 행복할 자격도 없는 한심한 스스로였다.
그동안 최선을 다하여 행복하려 노력했냐 나에게 물었다.
오늘 하루 할 수 있는 애를 모조리 다 써보았냐 되물었다.
그게 최선이었냐고 채찍질해 보았다.
가득한 리스트에 항상 할 일을 다 끝내지 못한 사람으로 그날을 마무리한다.
매일 부족한 사람으로 거듭나며 그날의 12시를 맞이하고, 게을러 그랬다며 마음을 쳤다.
그렇게 하면 더 빨리 행복해질 줄 알았다.
행복하지 않으려 한다.
신에게 내 손에 있어 본 적도 없던 행복을 내주고, 함께 불안도 내주려 한다.
행복하려 불안해야 한다면 그 둘을 함께 흘려보낸다.
불안하지 않으면
조금만 무서워도 되고, 덜 의지해도 되고, 완벽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심장이 조금 느리게 뛰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내 심박수에 맞춰서 재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리고 행복은 모르겠으나, 불행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침 6시 33분에 물어본다.
오늘도 최선을 다해 살아볼 각오가 되었냐가 아니라
지금 6시 33분에 불안하지 않느냐라고 현재 진행형으로 물어본다.
열심히 사는 삶이 목표가 아니라
불안하지 않은 삶이 썩 마음에 드는 목표가 되었다.
지금. 나 그리고 당신.
행복 따위 하지 않아도 될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