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rey수 Mar 05. 2024

마침표 하시나요?

D - 1967

아침은 볶음밥이야. 정했으니 그냥 먹어.


 검사에서 야채 적게 먹는다는 지적을 받은 아들 덕분에 냉장고에 당근이 가득하다. 어릴 때부터 먹이는 것이 가장 큰 일이었던 아이 둘을 키우며, 노하우가 쌓이기는커녕 요리에 대한 상흔만 가득하다. 재미도 없고 보람도 없지만, 그때그때 코앞의 끼니를 넘기기 위해 몸을 움직여 본다.


볶음밥 재료를 잘 다지기 위해 채 잘 썬다는 푸드프로세서를 혹 해서 샀으나 아직 안 씻어 쓸 수가 없다. 코너로 쓱 밀어 넣고 더 좁아진 싱크대에 도마와 당근을 올려본다. 언젠가는 기계로 썰겠지. 씻고 설명서 읽어 복잡한 칼날 중 하나를 적당히 골라 광고처럼 웃으며 요리할 날이 오겠지. 역시 또 일만 벌린건가. 당근 썰기 시작인데 벌써 손목도 아프고 딴생각만 가득하다.


채를 썰기 시작하면 마치 아이들 눈이 절로 유튜브로 가듯이 내 손이 자꾸 반도 썰지 않은 채를 멈추고 큐브로 잘게 다지고 싶어 진다. 엄청난 끌어당김이다. 분명 채를 다 썰고 다져야 섞이지 않는데, 내 머리는 빨리 잘게 다진 큐브를 보여 내라 난리다.


다진 당근과 채가 뒤엉켜 손으로 골라내 본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에, 굳은 마음으로 당근만 바라보아 본다. 이 정도는 끌림은 정말 물리적인 힘을 계산해도 될 것 같다. 마음이 급해지니 막 썰기 시작한다. 두께는 이미 시작보다 3배로 두껍고, 결국 애매한 크기가 된 썰다만 당근들이 봉지 속으로 대충 들어간다.






사주를 보면 가장 궁금해하는 게 " 재물복"이다.

속물이라 말할 필요 없다. 인간에게 재물은 삶을 영위하고 안전하게 지켜주는 방패막이니까. 아이가 학업운이 없다고 할지라도,  재물복이 많아서 돈 걱정 없이 산다는 말을 듣는 순간 아량 넓게 아이를 기다려 주는 엄마가 되기도 한다. 며칠 이겠지만.


재물운을 나타내는 재성은 꼭 돈이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되지 절대 않는다. 결과를 뜻하기도 한다. 재성이 튼튼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경우 어떤 일이든지 끝맺음이 있다. 끝까지 해서 결과를 손에 넣는 힘이란 뜻이다. 이 힘은 어떤 역량을 타고났던지, 삶을 업그레이드해주는 기회로 작용이 된다. 아이가 학습 능력이 뛰어나도 끝까지 해내지 못하면 고생은 했어도 세상은 인정해 주지 않는다. 반대로 아무리 소소한 일이라도 끝까지 해내면 인생에서 하나씩의 경험이 블록처럼 쌓여 타고난 능력을 빛내 주는 더 큰 능력이 된다.


재성이 있으나 위치와 힘이 약한 나는 언제나 끝맺음이 힘들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잘 모른다. 대신 시작력이 좋기에 작심삼일이 안된다면 하루씩 계획을 세 번 세워 중간 이상은 따라가기 때문이다. 명리학을 공부하기 전에는 언제나 내 노력이 부족하다고 나를 탓했다. 헬스장 기부천사는 당연하고 학원을 등록하거나, 공부를 시작하거나, 책을 읽을 때도 시작은 화려하나 끝이 없다. 심지어 과자도 한 번에 여러 봉지를 뜯어서 쫙 깔아 놓고 먹다가 만다. 나에게 시작의 허들은 너무나 낮고 쉽지만 끝을 맺기 위해 노력하는 애씀은 남들의 3배 5배는 되어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자책하고 스스로 못나 보였던 시간에 미안함이 쏠린다. 신은 나에게 실행력이라는 능력을 주시고 끈기를 주셨구나.




15년의 회사생활을 바라보며 고민이 있었다. 항상 용쓰며 살아서 노력에 대한 아쉬움은 없는데 뭔가 내 이름으로 성과라는 것이 딱히 없었다. 언제나 코앞에 닥친 일들과 프로젝트를 마치 함박눈을 쓸듯이 쓸어낸 것 같다. 아무리 쓸어도 덜 쌓일 뿐, 내가 잠깐 허리를 피면 나의 흔적은 없어졌다. 너무 어필을 못했던 것일까 회사가 나를 안 알아주는 것일까 불만도 아쉬움도 많은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내 사주명식을 보면서 깨달았다. 내가 마무리를 못했던 것이구나. 내가 스스로는 관리를 다 했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는 성과 없는 노력만 했던 것이었구나. 남이 한 것에 내가 한 티만 낸 것이구나.라고 뼈아픈 깨달음이 훅 들어왔다.


자존심이 정말 상했다. 나 스스로 일을 잘한다는 프라이드가 있었는데, 뒤 돌아보니 생각보다 성과 낸 것이 없고 마무리된 것들도 적었다. 시작만 가득했고 결과 없는 과정들은 회사 입장에서 비용을 축낸 것뿐이니, 나는 내 생각보다 괜찮은 직원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명리공부를 계속해 나가려면 내 단점도 가감 없이 인정하고 넘어가야 지속할 수 있다. 공부 처음에는 내 팔자는 왜 이럴까 원망이 많았지만, 이제는 꿀꺽 삼키고 받아들인다. 재성이 약한 나는 팔자대로 충실히 살아왔던 것이다.


평생 마무리 없고, 결과 없는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렇게 또 10년 후, 20년 후 내 인생을 뒤돌아보면 슬픈 모래탑 같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명리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주는 원인과 환경이기에, 내가 노력하면 결과값은 바꿀 수 있다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마치 이혼 3번 하고 남편이랑은 절대 같이 살 수 없다는 팔자를 가진 내 친구가 아직도 그 남편분과 존중하며 잘 지내는 것을 보면, 인간은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것 같긴 하다. 하지만 겁난다. 내 힘으로 하기에는 기존의 관성 때문에 중간에 포기할 것이 뻔하다.



규칙과 룰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나의 특징에
끈기 부족한 단점을 믿고 맡겼다.



남편에게 독립하는 것이라는 주제로 연재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나 혼자 힘으로는 원점일 것이다. 브런치에서 발행일이라는 알람이 오는 것 자체가 더 신경이 쓰여, 포기 않고 머릿속을 써내려 갈 것이기 때문이다. 포기 없이 가기 위해 불편함을 믿은 것이다. 회사일도, 집안일도, 운동도 쉼표로 가득하고 시작하기만 한 책도 10권이 넘는다. 그래도 불편함 덕에 오늘의 연재에 마침표를 찍어 본다.  

이전 05화 행복을 묻는 것은 자학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