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rey수 Mar 19. 2024

사주 때문에 처음 맡는 초코향

영화 언제 시작해요? 목말라서 물사올래요.


아들 옆에 안 앉아서 다행이었다. 영화관에서 남편이 통로 쪽에 앉은 덕에 둘째의 들썩거림에 동행해서 나갔다. 오랜만에 가족 4명이 함께 보는 영화였다. 큰 아이는 아빠와 한번 본 영화인데,  너무 감동적이라 또 보고 싶다 하여 3명은 끌려 나왔다. 사람 많은 주말에 어디 나가는 것을 나는 극도로 싫어하기에, 그나마 타협을 본 일요일 조조타임이었다. 그렇게 초코영화는 시작되었다. 



 

뭐 할 때 재미있냐는 질문은 나에게 극심화 문제이다. 

난 재미있음의 정의를 분명 모르는 것 같다. 잠시 즐거울 수는 있어도 어떤 것을 재미있게 해 본 것은 진심이고 웃기고 슬프게도 '회사일' 빼고 없다. 가만 생각해 보면 어릴 때도 무언가에 빠져서 썩 즐거워했던 기억이 없다. 그때는 어려 그랬나 했다. 


#10대

압축하면 1분이면 설명 끝날 시간 같다. 하라는 대로 하고, 해야 하는 것 하다가 가라는 곳 갔던 시간들이다. 주어 생략된 문장처럼, 그 시간들에 내가 없다. 어떠한 나의 결정과 선호의 화학작용 없던 시간들이, 물리적으로 내 인생에 묻어 있는다. 유일한 고등 친구 한 명이, 그 시절이 실제 존재했음을 보여주긴 한다. 식탁을 덮을 듯한 대학 원서 스케줄표 앞에 부모님과 마주 앉아 들은 질문은, 주인공이 있었어야 했는데 없었구나를 깨달을 수 있었다. 너는 왜 재미있어하는 게 없는 거니?


#20대

비로소 내가 좋아하는 것이 없음이 이상하다 인지하고 나름 만들려 노력했다. 과 학생회 활동도 해보고, 집회도 나가보고, 민중가요에 율동도 해보았다.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열몇 개를 해보고, 술도 종류별로 마셔보고, 연애도 해보고, 산악동아리에서 '악'소리 나는 산도 많이 다녀봤다. 공부 빼고 다 한 것 같다. 그런데 어느 곳에서도 내 취향조차 찾지 못했다. 허겁지겁 운 좋게 취업해서 일을 하다, 적절해 보이는 나이에 결혼을 했다. 


#30대

회사와 가정생활을 병행하며, 이 시기에는 취미가 있더라도 못할 판이었다. 새벽 5시부터  밤 12시까지 풀가동해서 인생을 돌리고 시간을 돌리고 나를 돌렸다. 아무리 빼내도 없어지지 않는 TO DO LIST에서 할 일 지우는 재미 정도가 다였다. 30대 후반쯤 남편을 따라 미국 생활을 1년 반 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가정에 속한 기분이었고, 처음으로 온전한 아이들의 엄마가 된 느낌이었고, 남편과 긴 시간을 함께 했다. 어찌 보면 얽혀있던 한국사회의 인간관계 속에서 빠져나와, 겨우 온전히 내 가족과 얼굴 보고 앉은 것 같았다. 무인도 같은 그 시간이 내 마음에 생각의 시간을 주었다. 


캘리포니아 공기는 느긋했고, 사람들은 여유로웠고, 치열할 필요 없는 삶이었다. 인생의 이슈는 부활절, 핼러윈, 땡스기빙,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하면 즐겁게 보낼까였고 저녁 9시 이후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이가 들면 부모가 살던 집을 물려받아 거기서 쭉 살면 되는 것이고, 평생 동네를 벗어날 생각도 안 한다. 그 지역 대학을 나오면 지역할당 취직제가 있어서 살던 곳에 있는 회사로 입사해서 다니면 된다. 정년보장이 되지 않지만 파트타임도 활발하여 원하는 시간에 일하고 가정생활을 병행한다. 열심히 살지만 종종거리지는 않는다. 


좋았어. 그들처럼 여유 있게 운동도 하고 여행도 해보고 그림도 그려보고 요리도 해보았다. 그런데 뭘 해도 자꾸 치열해지고 재미는커녕 잘 못하는 나 자신에 화만 가득 찼다. 왜 나는 즐겁지 못하고 취미 또한 열심히 잘 해내야 하는 것일까. 이렇게 좋은 환경과 누가 봐도 부러울 시간에 화를 내고 있는 나 자신에 더 화가 났다. 몸뚱이는 내 것인데 왜 내 마음대로 못하는 건가. 누구 마음대로 이리 안 즐겁나. 뜨거운 캘리포니아 태양 아래 나만 안갯속에 있으니, 사막의 밤 같이 외로웠다. 

   



영화 중간쯤 매력적인 음악과 함께 주인공이 극 중의 꼬마와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온다. 동물원의 동물들을 탈출시키고, 풍선을 타고 멀리 날아오르는 장면이었다. 노래는 아름다웠고, 가사는 꿈이 가득 차 있었다. 바라보고 있는 내 마음이 벅차오르고 마치 초콜릿 향이 코에 가득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함께 그곳에 머무는 것 같고 충분히 심장이 두근거리는 경험을 했다. 내가 마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느끼다니... 신기한 일이다.

  



 신기한 경험의 이유를 나는 사주에서 어느 정도 찾아볼 수 있었다. 머릿속 구조가 이상해서 재미와 삶을 못 느끼는 것이 아니라 운이 매우 한쪽으로 치우쳤기 때문이다. 나의 사주에는 표현하고 행동하는 기운의 글자가 처음부터 없었다. 무(無) 식상이라고 말하는데, 40년 넘게 없이 살다 몇 년 전 처음으로 식상운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새로 들어오는 이 기운은, 내가 왜 재미를 못 느끼고 살았는지 깨달을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그 기운을 원래 갖고 살던 사람들은 이렇게 싱긋 웃을 수 있는 익숙한 시간 속에 살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아름다운 바다에 앉아 노을을 바라봐도 영화관 스크린 같은 느낌이었다. 현실감이 전혀 없고 먼 느낌의 현재였다. 시간이 지나 과거형이 되면 그때서야 좋았네 싫었네 라는 감정 네이밍이 붙었을 뿐이다. 다들 즐거운 시간에도 나는 나 혼자 유리관 속에 갇힌 느낌이었다. 그곳에 있으나 존재할 수 없고, 만지고 있으나 느낄 수 없고, 시간을 보내나 그 속에 있을 수 없었다. 모두 다 과거형이 되어야 비로소 내 것이 되었다. 그러니 어떻게 재미라는 것이 존재할까. 어찌 즐거움이 존재하며 진심으로 깔깔 웃을 수 있을까. 모든 인간이 이렇게 사는 줄 알았다. 세상을 만질 때 하나의 스크린 너머의 그런 곳 같은 느낌으로 모두 살아가는 줄 알았다. 그래서 함께하는 친구들은 내 진심을 느끼기 어렵고, 아이들에게 지금 뱉는 단어는 시간이 지나야 모성애로 담아졌다. 인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는 남편에게 나는, 함께 즐겁기를 포기해야 하는 배우자였다. 




 사주에 없던 기운이 들어오며 내 인생은 달라질 가능성이 생긴다. 특히 아예 없던 것이 20년간 들어옴은, 남극에 살다 아프리카로 옮긴 정도의 큰 변화다. 짧은 공부지만, 앞으로 삶의 방향을 어렴풋이 잡아 본다. 40년간 나의 중심을 잡고 있던 기운을 새로 들어오는 식상기운이 흔들어 대기 시작한다. 덕분에 사회 속에서의 내 포지션과 안정을 추구하는 관계들이 흔들리고, 당연하다 생각하던 내 자리는 빼앗길 수 있고, 이 세상이 나를 무시한다고 나는 느낄 것이다. 아마도 자존심 상하는 일들이 많이 생길 수 있다. 항상 신중하려 애쓰던 내가 갑자기 말이 앞서고 행동부터 해버리며, 하지 않던 실수를 하고 관계가 깨지는 구설을 끊임없이 만들 가능성이 있다. 남편과의 관계도 나의 많은 변화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공부를 할수록 나의 운세를 바라보며 많이 두려웠다. 걱정 많은 내가 저렇게 암울하고 큰 일들이 생길 것을 알며 한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싶었다. 의존도가 높은 내가 내 손으로 무너트린 것들을 후회하며 스스로 실망할까 무서웠다. 그래도 진리는 내 인생에서도 작용할 것이다. 


어떤 것도 나쁜 것만은 없다는 진리. 


 식상 있는 사람들은 생생하게 느끼고 웃고 만지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었구나. 마치 집안에 갇혀 창밖으로 구경만 하던 세상에 내가 처음 들어선 기분이었다. 스치는 봄바람에 머리가 시키지 않아도 씽긋 웃을 수 있고, 머리가 말하지 않아도 따스함을 느꼈다. 아이들과 대화하는 것에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이니 좀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손을 움직여 음식을 하는 것이 덜 어려워졌고, 화가 머리까지 나기 전에 내 마음을 미리 털어놓는 것이 가능해졌다. 남편에게 머리로 판단한 내 논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말하는 소리를 들려줄 수 있게 되었고, 함께 치맥이라도 먹는 시간은 좀 재미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실수를 해도 예전처럼 심각히 괴로워 하지 않고, 덤덤하게 받아들이려 애쓸 수 있게 되었다. 


 남편에게 독립을 마음 선언한 이유도 이와 멀지 않다. 내 운의 흐름속에서 남편과 이제는 거리를 두어야 서로를 지켜줄 수 있는 운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 전에는 하고 싶은 말을 참아서 스트레스가 컸지만, 덕분에 안싸우고 넘길 수 있는 일들이 많았다. 겉에서 보면 이해심 넓게 남편을 챙기는 와이프 같아 보였다. 물론 참고 참아서 너무 큰 파도로 올때도 있었지만, 화나는 순간을 참고 넘기면 왠만한 문제들은 해결이 되었다. 그런데 내가 이제 안 참는다. 아니, 힘든건 안 참아야 하는게 처음부터 맞았는지 모른다. 바뀐 나를 이제 나부터 인정할 시간이다. 


초코향을 맡으며 이제는 마음의 독립을 할 시간이다.
남편과 나 둘다의 긴 세월을 위해. 
이전 07화 완벽주의자의 치열한 얼렁뚱땅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