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rey수 Apr 02. 2024

그런데 결혼을 했습니다.

오래 있을 건데 편한 의자 찾아보자.



1년 반 만에 만난 대학 친구.

늙지도 않는다. 아직도 얼굴은 처음 만난 스무 살 때 같고, 그때는 더 벚꽃 같은 아이였다. 자세히 뜯어보면 너도 나이가 드는구나 싶지만, 내 눈에는 여전히 봄 같다. 전공도, 성향도 달랐지만 동아리에서 동기로 만나서 그 시절 동기의 친함 정도로 지냈었다. 결혼을 하고 이사도 여러 번.. 서로 연락이 자연스럽게 끊겼다가 우연히 3년 전 연락이 닿았다. 그리고 한두 번 보고, 오늘 다시 만난 것이다.


친구가 어떤 고민과 일상들로 살아가는지 궁금했다. 그 고민을 들어주며 충분히 괜찮다고 멋져 보이는 공감도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저번에 만났을 때 느꼈던 것처럼, 만남의 시작부터 내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빵과 커피를 내가 사고 싶었지만, 각자 하자라는 말에 쟁반을 잡으려던 손이 어색했다. 자리를 잡고 앉았지만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다. 어떻게 지냈어라는 나의 말에 친구는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너는 어땠니라고 묻는다. 잘 지냈지.


저번에 만나고 와서부터 너 딸이 너무 걱정이 되었어. 잘 지내는 거야? 

친구의 말에 순간 마음속 방문이 하나 열린다. 그 방은 내가 도망갈 곳도, 숨을 곳도 없는 질문들로 가득 차 있다. 평소에는 닫혀 있다가 2주에 한번 부모상담 갈 때 열리는 곳이다. 그런데 지금 연다. 친구가 내 딸아이를 만났던 것이 3년 전이니까 극도로 힘들기 직전쯤이다. 나는 아이가 힘든 것을 잘 몰랐고, 더 밀어붙이기만 하던, 살면서 가장 어리석은 짓을 했던 시기다.


그때 보다 조금 나아졌어.

나는 딸아이를 위해 상담도 다니고, 같이 취미생활도 하고, 학원은커녕 하루 10시간의 유튜브를 보더라도 본인 선택에 맡긴다는 급한 방어들을 나열했다. 사실 방어라 인식하고 했던 말이 아니라, 요즘 지내는 모습을 이 친구가 잘 모르는 것 같아, 좀 변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다시 질문을 받을 차례다. 그런데 그 모든 게 결국은 또 너 마음대로 하는 거 아냐?  

 

억지로 이어가던 말 줄기가 더 이상은 힘을 잃었다. 아니 맥락을 잃었다. 이건 무슨 소리지. 내가 통제감이 심한 사람인 것은 알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면 이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그런데 친구 말을 인정하지 않고 넘어가면, 우주 끝에 있는 상상할 수 없는 질문을 또 받아야 할 것 같다. 네 말 맞아 다 내 마음대로 하는 거지. 


그래. 네가 마음대로 한다는 것을 우선 인정해야 해.

너는 아이들과 남편을 통제하는 기준을 만들고, 가족에게 묻지 않고 너 판단에 맞다면 그것을 정답이라 이름 붙였잖아. 그리고 정한 대로 못 살면, 부족하고 한심한 인간이 되는 거고. 그런 상황에서 아이들과 남편분은 정말 힘들 거야. 네 생각이 어떻게 정답일 수 있겠니.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봤어? 그리고 남편분이 얼마나 힘든지 공감해 드렸어? 나는 네가 잘하려는 욕심을 좀 내려놓고 아이들과 남편분의 행복만 바라며 살다 보면 너 마음도 편해지지 않을까 싶어. 그렇게 모든 것을 다 움켜쥐고 잘 해내야 성공하는 건 아니야.  


나 아니면 누가 너에게 이런 얘기를 하겠니.



저 문장.

내가 너무 싫어하고 듣기만 해도 숨 막히는 문장인데, 싫다고 할 자격이 이미 박탈되었다. 친구의 설명은 언뜻 들어도 정말 최악의 엄마이고 와이프였다. 얼른 닫고 싶었던 숨을 곳 없는 말 가득한 마음속, 그 방의 모든 단어에게 날개를 달아준냥 마음껏 내 혈관을 휘젓고 다닌다.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나도 잘하는 게 있어'라고 말할 자존감 따위는 원래도 없었다. 커피만 마셔댔다. 그리고는 엉뚱한 깊은 바닥 속 단어가 나열되었다.


그래 나는 사실 혼자 살았어야 해.


친구가 처음으로 내 말에 공감을 해준다. 그리고 다시 친구가 말하는 차례인가 보다. 내가 너를 보며 항상 생각했었는데, 너 이미 알고 있었구나. 너는 아마 혼자 살며 정치를 했어도 좋고 회사에서 여성 임원으로 좋아하는 일 가득하며 인정받고 살아도 좋았을 거야. 조직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는, 너한테 쉽쟈나. 그런 네가 아이를 키우고 남편과 알콩달콩 가정을 이루는 게 안 어울릴 수밖에 없어. 어쩌면 네가 선택한 것이니 네가 힘들기보다는 아이들과 남편분이 힘들지 않겠니. 너 옆에 있어서.


알아. 내가 가족에게 해로운 존재인 거. 그래서 홀로 서려해.


잘할 필요 없다고 말하던 친구는 자기 얘기를 잘 들으라 말한다. 지나 보니 이 모든 것은 그녀의 배설이었다.






오른쪽 세 칸, 위로 다섯 칸을 갔더니 행복이 나와. 너도 반드시 그럴 거야.


우리가 아무리 자기 개발서를 읽고 좋은 강연을 들어도, 다시 읽고 들어야 하는 순간이 오는 이유이다. 책 쓴 이와 강연자는 본인의 위치에서 저렇게 움직였을 때 행복이나 성공이 나왔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시작점이 똑같을 수 있을까? 명리공부 큰 배움 중 하나는 모든 인간은 시작점이 다르다 라는 것이다. 방법대로 똑같이 움직인들 작은 의미는 있겠지만 원했던 결과가 나오기 어렵다. 1분 전의 내 몸상태와 지금도 달라졌는데, 다른 이의 성공방법이 날 것 그대로 내 것이 된다는 것은 마법 같은 생각(magical thinking)이다. 이런 이유로 함부로 타인에게 인생길을 알려줄 수 없다. 오히려 그 사람이 길을 찾는 시간을 빼앗고 혼란만 주는 꼴이다. 본인 생각이 옳은 말이니 말대로 하라 하여 너를 통제하고 싶다 밖에 안되고, 그건 배설이다. 인간이라면 화장실을 구분해서 배설해야 한다. 아무 곳에서나 상대를 지적하며 통제하려 들면, 본능 충실한 존재 밖에 안된다.





안다. 나는 결혼을 안 했어야 했다.

내 사주에 있는 관이라는 글자를 결혼으로 쓸 수도 있지만, 사회생활과 공직 같은 것으로 쓸 수 있다. 두 갈래 길에서 나는 그 글자를 남편을 만나 결혼하는 것으로 쓴 것이고, 아닌 선택을 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사주 공부하며 받은 큰 충격 중 하나가, 나는 결혼을 안 하는 게 나았구나 라는 해석이었다. 그 해석을 하고는 정말 많이 방황했었다.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지만, 내 운명을 이렇게 비켜간 것에 대해 가슴깊이 슬펐다. 마치 실패한 인생이라 도장 찍어 버린 느낌이었다. 조직에서 잘 적응하고, 가장 재미있는 것이 일이고, 주목받은 것에 두렵지 않고, 누군가를 말로 설득하는 것도 좋아한다. 뒤돌아 보니 난 혼자 살며 열심히 일하며 골드미스로 살면 딱 좋았을 수 있다. 이 사실을 모르고 살았으면 나았지 않을까 싶어 처음으로 명리공부한 것을 후회하였다.


이렇게 이기적인 나는, 비켜간 운명에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우선시했다. 하지만 가족 입장에서 보면 남편과 아이들 만난 것을 후회하고 부정하는 꼴 밖에 안되었다. 뒤늦게 슬픔보다 더 크게 미안함과 어리석음이 몰려와서 다시는 내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말이었다. 부모가 날 두고 그런 말을 한다면 나를 낳아 후회한다는 말로 밖에 안 들리는 것은, 누구나 그렇다. 그런데 이런 말을 제 3자의 입에서 확인받으니 참 벚꽃 같은 인연이 슬펐다.


사회생활하면 좋았을 내가, 그 에너지를 아이들에게 쓰고 집에서 쓰기 시작하니 모든 것이 문제였다. 뛰어난 가정의 관리자가 되고 싶었고, 남편의 역량을 평가 내리고 아이들도 예외는 없다. 그 평가가 맞다는 확신아래 조금 더 나아지는 방법을 모색하고 실행하였다. 이 세월이 참 후회되고 아픈 시간이다. 나는 가족들이 행복한지는 한 번도 관심조차 안 가지고 내 힘듦과 그들의 노력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모두 아팠어야 했다.


그리고 명리학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또 다른 어리석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뀌려는 노력 말이다. 아이들의 아픔을 인지하는 순간, 모든 것을 접고 가정에 충실하며 내 모든 꿈을 포기해 버리는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하고 소소한 기쁨이라 말하고 있으니. 그러나 ' 빨간색이 연한 분홍이 될 수는 있지만, 파랑이 될 수는 없다'라는 것이 사주팔자이며 각자 시작점이 다르다는 해석이다. 무지했다면 나는 아마 파랑이 되려 용썼을 것이고, 더 큰 실패와 후회만 남았을 것이다.




마치 가위손 같다.

가까이 있으니 너도 나도 찔리고 다쳤다. 이 단어를 쓰는 지금도, 마음이 또 가위에 찔린 듯 아프다. 나는 가족과 함께 하기 위해 좀 멀어져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물론 또 틀렸을지도 모르나 지금은 맞다. 내가 써야 하는 에너지와 삶의 형태는 누르기만 한다고 해결되지 않을 것이고, 다른 방향으로라도 써내야 행복을 꿈이라도 꿀 것 같았다. 그래서 지키고 싶은 소중한 가족들에게 한 걸음 독립하려 한다. 유리그릇끼리 자꾸 부딪혀 상처 났던 시간을 알기에 뽁뽁이를 감싸듯이 그 간격쯤에서, 언제나 가족 옆에 존재하고 싶다. 남편과 아이들을 세상 어떤 성공과 부귀영화를 준다 해도 바꾸지 않을 테니.



사실 결혼은, 내 인생 모든 행운을 다 끌어다 쓴 최고의 선택이었다.














10회 연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용기를 주셔서 10회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이 순간 곁에 머물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  grey수 올림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