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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마모리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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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주 Apr 06. 2021

그 섬에 가고싶다!


  "엄마, 내 방에 들어오지마."

  어느새 자란 딸아이는 방문을 닫기 시작했다. 화장실까지 따라다니던 녀석이 이제는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니. 문 밖에 남겨진 그 시간은 반갑기도 쌉쌀하기도 하여 가끔은 창문으로 가서 아이를 훔쳐보고, 어느 때는 핸드폰을 보거나 책을 읽는다.


  비뚤비뚤한 글씨로 적힌 문패 앞에서 자유 시간을 누리다 보면 아이는 '짜잔'하고 무언가를 만들어 나온다. 엄마에게 쓰는 편지, 놀이터 보물 지도, 색종이 팽이 같은 것을 말이다. 나는 "우와."하고 가짜로 놀라기도 하고, 이따금 "어머나, 세상에!"하고 정말로 놀란다.


  '아이의 생각과 솜씨가 이렇게나 자랐구나. 어떻게 이런 궁리를 했을까?'

  보이지 않는 방면의 성장을 알게 되는 이 시간은 소중한 일과다. 방문을 사이에 두고 모녀가 일부러 떨어져 있는 시간. 각자가 방해 받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시간.


  마음이 포개어진다는 것은 오히려 적당한 거리를 두고 껴안는 일임을 아이를 보며 깨닫는다. 우리에게는 섬처럼 단단하여 겹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떨어져야만 서로의 두껍고 넓은 뿌리를 완전히 볼 수 있다는 것을.


  오늘도 아이는 스케치북을 들고 방에 들어간다.

  "엄마, 내가 말할 때까지 방에 들어오지마."

  -"그래."

  작심 어린 아이의 표정을 잠시간 모른 척한 채, 덜 닫힌 방문을 닫는다. 수면으로 연하게 비치는 커다래진 덩치가 여전히 귀엽고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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