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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마모리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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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주 Apr 06. 2021

현관

엄마, 배웅의 달인


  엄마의 배웅은 길다. 엄마의 배웅은 현관에 들어서면 으레 신발을 벗듯, 엘리베이터 앞에 다가가면 곧장 버튼을 누르듯 반사적이고 자연스럽다. 반면, 딸의 배웅은 말할 수 없이 짧다. 권태롭고 굼뜨다. 딸의 배웅은 언제나 현관 앞에서 잘린다. 김유신이 말목을 자른 것처럼, 그녀는 일시에 배웅의 목을 잘랐다.


  본시 딸은 효녀였다. 지난 10년간 빠짐없이 엄마의 생일과 결혼기념일을 챙겼다. 직장 동료들이 푸켓이나 코타키나발루에서 여름 휴가를 보낼 때 그녀는 늘 본가에서 쉬었다. 저녁마다 엄마에게 찜닭, 스파게티 같은 도시 음식을 만들어 건넸고 스팀 마사지와 흰머리 뽑기도 선사했다. 사나흘 휴가가 끝나고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날이면 엄마는 단단한 과일과 마른 반찬을 보냉가방에 담아 현관에 내려 두었다. 엄마는 그 무거운 가방을 들고 택시까지 딸을 전송해주었고, 딸은 택시에서 내려 고속버스에 옮겨 타면 발 끝에 놓아둔 가방을 보며 울었다.


  어느새 딸은 엄마처럼 어미가 되었다. 갓난 아기를 키우는 딸에게 쉬는 날은 없었다. 타지에서 일하는 그녀의 남편은 휴가를 오듯 드물게 신혼집에 왔다. 딸은 수시로 엄마를 불렀다. 할머니의 호칭까지 덧붙은 엄마는 더 무거워진 가방을 들고 버스를 타고 딸을 찾아왔다. 엄마가 하루이틀씩 육아를 돕고 본집으로 돌아갈 때, 딸은 조그마한 아이를 안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훌쩍거렸다. 슬리퍼 위로 불거진 발가락을 내려다보며 울었다.


   그러나 김유신이 단칼에 천관녀에게서 마음을 돌리듯이, 딸은 일시에 엄마에게 향했던 효심을 딸아이에 대한 모성애로 치환했다. 아이가 자라면서 예전만큼 엄마가 필요치 않았다. 딸이 엄마를 찾는 일은 뜸해졌다. 엄마는 단지 그리움으로 딸을 방문했다. 못된 딸은 때때로 귀찮아서 엄마를 하루 만에 돌려보냈다. 그녀는 자신의 집 곳곳에 현관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 데서나 엄마를 환송했다. 발코니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다가 엄마와 이별하고, 주방에서 그릇을 헹구다가도 엄마와 헤어졌다. "엄마, 잘가. 고마워."하는 무성의한 목소리만이 신발도 없이 현관 밖으로 흘러갔다.


  딸은 아이를 낳은 뒤, 그 아이를 제일로 사랑했다. 자신보다 아이를 더 아끼는 순애보였다. 많은 날동안 자기를 아이의 엄마로, 자기 엄마를 아이의 할머니로만 여겼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단칼에 쉽게 베어지는 것은 아니었나보다. 엄마를 향한 그녀의 마음은, 있는 줄도 몰랐던 신발장 속 하이힐처럼 가슴 한 구석에 조용히 남아있었다.


  추석에 본가에 다녀온 그녀는 돌아와서 방을 닦다가 엄마의 배웅을 기억해 냈다. 여전히 현관에 놓인 보냉가방에는 가을 햇발이 뿜어나는 단단한 배와 반찬통에서 짭짤한 파도를 일으키는 멸치볶음, 새지 않게 꽁꽁 싸매진 담갈색 식혜가 들어 있었다. 얇은 팔로 차에 보냉가방을 실어주던 엄마를 생각하며 딸은 엄마가 배웅의 달인이 아닐까 생각했다. 엄마는 언제부터 이렇게 배웅의 고수가 된 걸까.


  엄마와 헤어질 때마다 '또 이런 순간이 오겠지.'하고 생각했던 딸은 배웅의 하수다. 딸은 우둔하고, 게을렀다. 엄마와 딸은 빈번히 이별하지만 매번 같은 이별은 아닐 것이다. 거의 같다 하더라도 각자의 현관에 겹겹이 포개어질 교감의 순간들일 것이다. 딸은 성석제 작가의 말을 떠올린다. 순간은 돌로 쌓은 성벽이라고 했던가. 그녀는 엄마가 쌓아놓은 돌들을 상상한다. 그리고 자신의 돌 중에 몇 개는 없는 것으로 하고싶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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