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패션산업에서 유통의 역할은 단순히 제품을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대금을 받는 기능에서 벗어나, 판매 이후의 제품 관리 책임까지 포함하는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다.
기존의 패션 유통은 백화점, 대리점, 아웃렛, 온라인 채널 등을 통해 만들어진 제품을 판매하거나, 사서 팔거나, 중계한다. 이 과정에서 유통업체의 역할은 제품을 전달하고 돈을 받는 것으로 끝났다. 하지만,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가 패션산업에 도입되는 순간부터 유통업체 역시 판매한 제품이 폐기될 때까지의 전 과정에 대해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 구매자와 제품을 연결하는 접점에서의 역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유통은 제품이 판매된 이후 폐기될 때까지 추적하고 관리하는 기능을 요구받는다. 이에 따라 생산에서 물류, 판매처, 구매자로 이어지는 유통의 흐름이, 구매자에서 판매처, 수거물류 그리고 생산자로 이어지는 '역물류(Reverse Logistics)'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역물류'의 운영 과정에서 택배의 반품 역할도 확대된다.
구매자가 제품을 얼마나 오래 소유할 것인가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유통업자는 제품을 판매하는 순간부터 재판매, 재활용, 폐기까지 책임이 발생한다. 이러한 책임을 단순히 세금처럼 금전적으로 해결할 수도 있으나, 모든 제품에 대한 책임을 돈으로 감당하는 것은 기업의 손익구조를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제조자와 유통업자는 비용을 줄이면서도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새로운 제품 관리 방식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유통은 제품이 언제 판매되었는지, 현재 어떤 상태인지, 잔여 가치는 어느 정도인지 등을 기록하고 관리해야 하며, 이 정보는 수선이나 재판매, 재활용을 위한 기초 자료가 된다.
수선은 브랜드가 직접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수선 전문업체와 협업하게 될 가능성이 크고, 이 경우 수선 제품의 수거와 관리도 유통업체가 담당하게 된다. 재판매를 전제로 한 판매라면 사전에 재판매처를 지정하거나, 유통업체가 다시 구매하여 판매하는 방식, 또는 브랜드가 자체적으로 재판매를 운영하는 방식을 사전에 구매자에게 알려야 한다.
구매자가 제품을 폐기할 때는 분리배출의 의무가 부여되며, 수거는 지자체나 지정된 수거업체가 담당하게 되고, 수거된 제품은 분류를 통해 재활용이 가능한 경우 브랜드나 유통업체로 전달되거나, 재활용업체에 이관되어 재활용 비용이 부과된다. 재활용 소재는 브랜드에서 우선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되고, 활용이 어려운 경우에는 재활용소재 유통업체를 통해 판매된다. 이 과정에서 재활용 기업과 브랜드 또는 유통업체는 재활용 비용을 공동 부담하고, 판매 수익을 나눌 수 있는 구조를 만들게 된다.
결국 미래 유통의 가장 큰 변화는 판매와 동시에 제품의 전 생애를 책임지는 구조가 된다는 점이며, 지금까지의 A/S나 간단한 수선 서비스와는 차원이 다른, 폐기까지 포함한 완전한 제품 관리 체계를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서비스 확대가 아니라, 재판매와 재활용을 통해 탄소배출을 줄이고 지속가능한 패션산업을 실현하기 위한 필수적인 전환이다. 유통은 더 이상 단순한 중개자가 아니라, 책임 있는 제품 관리자이자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실현하는 핵심 주체로 자리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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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출처: https://www.cello-squa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