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딕부터 로코코까지, 눈이 커지는 하루
드디어 숙소에 짐을 풀었다. 하지만 긴장을 늦출 순 없었다. 시차를 이겨내기 위해선 저녁까지 눈을 부릅뜨고 버텨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뮌헨 여행의 중심인 마리엔 광장으로 향했다. 광장에 도착하자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리쳤다.
“엄마, 여기에 성이 있어요! 왕이 살 것 같아!”
눈앞에 펼쳐진 건물은 뮌헨의 상징인 신시청사였다. 이 고딕 양식의 건물은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는 듯 까맣게 그을은 레이스를 두르고 있었다. 외벽을 가득 메운 인물상과 조각들은 살아 움직일 듯 섬세했다.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첨탑과 길다란 창문까지 그야말로 돌로 만든 예술품이었다. 우리는 피곤함도 잊은 채 감탄과 카메라 셔터를 번갈아가며 눌렀다.
“근데 아빠, 왜 ‘신’ 시청사에요? 되게 오래돼 보이는데?”
“아마 저기 있는 구시청사보다 나중에 지어져서 ‘신’이라는 말이 붙었을 거야.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 후기 때 지어진 건물이니까 음, 150년쯤 됐지.”
“이 조각상들은 누구에요?”
“여기 바이에른 지역을 다스렸던 왕과 공작들이래. 독일은 예전에 여러 나라로 나뉘어 있었거든. 뮌헨은 바이에른 왕국의 수도였고. 뮌헨 사람들은 여전히 바이에른인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대.”
광장을 지나 조용한 골목을 들어서자 단정한 석조 건물 하나가 눈에 띄었다. 너무 소박해서 지나칠 뻔했던 이곳은 성 미하엘 교회였다. 묵직한 기둥과 삼각형 지붕, 외부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위엄이 있었다. 황금으로 장식된 내부는 화려했고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얘들아, 여긴 어떤 양식같아?”
“금색 장식이 화려하니까 바로크요.”
“외부는 균형과 비례감이 있으니까 르네상스 아닐까?”
“오오 대단하네! 이 아치형 천장도 봐봐. 400년 전에 만든 세계 최대 규모의 아치형 천장이래. 지붕과 벽을 하나로 연결하는 기술이 있었다니 정말 놀랍지 않니?””
다솔이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정말 천장이 끝없이 이어지네...”
가까운 곳에 양파 모양의 초록색 돔이 인상적인 프라우엔 교회가 있었다. 붉은 지붕과 초록빛의 조화가 신화 속 궁전처럼 낭만적이었다. 이곳의 명물은 교회 내부에 있는 ‘악마의 발자국’이다. 재정난에 빠진 교회는 악마에게서 재정 지원을 받았는데 계약 조건은 창문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계약을 어기고 교회 측은 창문을 만들었고 이에 분노한 악마가 바닥을 세게 짓밟고 사라졌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대리석 바닥에 찍힌 검은 자국을 보며 온유는 놀란 토끼 눈을 떴다.
“엄마, 저거 진짜 악마가 남긴 거에요?”
“진짜는 아닐 거야, 전설이겠지.”
“그래도 무섭게 생겼어요. 발자국이 까맣고 선명하잖아.”
상상에 휩싸여 놀란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나왔다.
마지막은 따뜻한 노란빛이 사랑스러운 테아티너 교회였다. 교회 안으로 들어간 우리는 압도적인 순백의 세계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와, 말이 안 돼...여기 진짜 웨딩 케이크 속 같아...”
벽을 따라 피어오르는 덩굴은 천장을 향해 뻗어가며 천사와 포도송이, 열매와 꽃잎을 품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너무 작고 정교해서 사람의 손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벽과 천장을 촘촘하게 채운 장식 조각들, 대체 이들을 어떻게 다 조각했을까? 현실감 없는 화려함에 경외심이 들었다.
스승과 제자들은 수십 년 동안 매일 조금씩 이 조각들을 만들어 올렸을 것이다. 사다리를 타고, 손에 흰 반죽을 들고, 조심조심 벽에 붙여서 덩굴을 말아 올리고, 천사의 날개를 조심스레 깎았을 것이다. 예술가들의 인내와 땀 그리고 눈물이 숨막히게 비장했다. 위대한 예술 작품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구나.
테아티너 교회를 나오는 길, 아이들이 건축 양식을 놓고 옥신각신했다.
“누나, 봐봐. 둥근 돔이 있으니까 외관은 바로크고, 내부는 완전 섬세하니까 로코코잖아.”
“아니거든? 교회 벽이 노란 파스텔이었잖아. 외관도 로코코 양식이라고!”
아니, 이런 수준 높은 대화를 나누다니. 유럽 여행을 하는 보람이 있고만.
“얘들아, 사실 바로크와 로코코는 사촌 같은 사이야. 로코코는 바로크보다 좀더 화려하고 섬세한 버전이지. 그니까 둘 다 맞았어.”
그날, 우리는 유럽 건축에 완전히 매혹당했다. 발은 욱신거려도 정신은 이상하게 말똥거렸다.
“엄마, 나 오늘 시차 적응이 완전히 된 것 같아. 누나도 그렇지?”
우리는 시차가 아닌 시간과 공간을 건너는 ‘유럽 건축의 마법’에 적응된 상태였었다.
<공잘공즐 팁. 유럽 건축 양식 한눈에 보기>
1. 로마네스크(10~12세기)는 두껍고 무거운 석조 벽, 튼튼한 기둥, 작은 창문이 특징이에요. 재무가 어두운 이유는 신 앞에 선 인간의 작음을 강조하기 위함이죠.
2. 고딕(12~15세기)은 높은 첨탑, 스테인드글라스, 뾰족한 아치, 세밀하고 정교한 조각들로 하늘을 향한 열망을 표현해요. 뮌헨 신시청사나 쾰른 대성당을 보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어요.
3. 르네상스(15~16세기)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이상을 되살리며 비례와 조화, 건축이 '과시'가 아니라 '이해'의 미학으로 바뀌었어요. 사람이 보기에 편안한 비례와 안정감이 조화로워요.
4. 바로크(17세기)는 권력과 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둥근 돔, 곡선미, 금박 장식, 천장화가 압도적이에요. 빈 슈테판 대성당 내부는 숨이 멎을 듯 화려해요.
5. 로코코(18세기)는 바로크보다 한층 가볍고, 섬세해요. 파스텔 톤, 귀엽고 여성적인 장식, 아기자기한 곡선과 천장 장식이 특징이죠. 프랑스 귀족의 살롱 문화에서 탄생했어요.
건축양식을 감상할 땐 겉모습만 보지 말고, ‘왜 이렇게 지었을까?’를 생각해 보세요. 그 안에는 시대의 철학, 권력 구조, 종교와 인간관이 담겨 있어요. 유럽 건축은 눈으로 배우는 인문학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