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궁전에서 찾은 나를 사랑할 용기
처음 ‘레지던츠(Residenz)’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우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왕궁’이란 말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아파트 단지 이름처럼 소박했기 때문이다. 베르사유, 쇤브룬처럼 화려함이 휘날리는 유럽 궁전들 속에서 ‘거주지’라니, 이 얼마나 무심한 네이밍인가. 빵에 버터도 설탕도 넣지 않는 나라, 독일답다고나 할까.
하지만 막상 들어서자, 감탄이 절로 나왔다. 황금빛으로 뒤덮인 공간, 번쩍이는 샹들리에, 빼곡한 대리석 기둥, 천장 가득 날아오르는 천사들까지 인간의 손으로 가능한 장식의 끝판왕을 본 느낌이었다. 뮌헨 사람들, 이렇게 안 봤는데 꽤 화려한 취향이 있었군.
레지던츠는 바이에른 왕국이 신성로마제국 안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아름다움’이라는 무기로 치장한 곳이었다. 유럽의 왕들은 궁궐을 예술로 채워 권력을 과시했고, 레지던츠는 그 정점을 찍은 독일 궁전의 하이라이트였다. 왕은 이곳에 살면서 ‘내가 이 나라의 왕이다’를 외쳤다. 아이들은 감탄하며 셔터를 눌러댔고, 우리는 그 화려한 궁전을 두 시간 이상 걸었다.
연회장인 ‘안티쿼아리움’에 들어섰을 때, 눈이 휘둥그레졌다. 길이 66m, 아치형 천장 아래에는 알렉산더 대왕, 카이사르,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인물들의 흉상이 벽면을 따라 줄지어 서 있었다.
“이건 뭐지? 역사적인 인물과의 팬미팅 현장인가?”
고대 영웅들의 눈빛은 살아 있는 듯했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대단한 사람이라니까.”
이곳을 걷다 보니 문득 떠올랐다. 요즘 우리가 인스타그램에서 남기는 수많은 셀카와 해시태그도 결국은 이런 자아 인증의 연장선이라는 걸. 시대가 바뀌어도 인정받고 싶은 사람은 마음은 계속되는 듯하다. 뭐 ‘인정욕’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니까.
잠시 쉬는 찰나, 온유가 신나게 사진을 찍고 와서는 나에게 휴대폰 사진을 보였다.
“엄마, 제가 찍은 사진 보실래요? 사람없이 배경만 나올 때까지 기다렸어요.”
타이밍을 몇 번이나 맞춰가며 찍은 그의 노력이 귀여워 엄지척을 날렸다. 아들의 눈에는 이 공간의 흉상들처럼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똑 닮아 있었다.
보석관으로 향했다. 다이아몬드와 루비, 진주로 장식된 왕관과 방패, 장식용 그릇까지. 이건 단순한 액세서리가 아니었다. ‘짐은 위대하노라’라는 소리 없는 외침이었다. 황금빛 찬란함 속에는 불안과 과시, 그리고 시대의 욕망이 뒤엉켜 있었다.
마지막 관람 장소인 황금홀에 들어서자, 또 다시 압도당하고 말았다. 벽과 천장에 흐르는 금빛 물결, 빼곡하게 채운 황실 인물들의 초상화, 살아 있는 듯한 옛 사람들의 눈빛이 우리를 반짝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이 궁전엔 조각상이랑 사람 얼굴이 진짜 많네요.”
“그러게. 이 궁전은 뮌헨 사람들의 몇백 년 전 ‘좋아요’였나 봐.”
농담 같은 진담 끝,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우리는 누군가에게 나를 보여주고, 증명하고 싶어 안달이다.
사실 인정받고 싶은 건 누구나 그렇다. 하지만 그 욕망이 ‘중독’이 되면 문제가 된다. ‘좋아요’ 수에 기분이 출렁이고, 남들의 반응이 내 가치를 대신하는 순간, 나는 나를 잃는다.
우리가 해야 할 건 결국 하나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상이 만든 기준이 아니라, 내 삶의 방향과 의미에 집중하는 것. 나를 좋아하고, 자주 다독이는 것.
“인정. 이게 나야. 어쩔 수 없는 나지만, 그래도 꽤 괜찮아.”
그 말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궁전보다 더 소중하게 품어야 할 말 아닐까?
언젠가부터 인스타그램이 버거워졌다. 피드의 속도는 숨 가빴고, 성과와 자랑은 오히려 나를 작아지게 했다. 여행 릴스를 만들며 그림 같은 풍경을 날려 보내는 대신, 난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여행의 감정을 마음속에 고이 담기로 했다.
인스타를 멈추고 나는 브런치로 돌아왔다. 휘발되는 피드가 아닌, 깊이 있게 존재감을 남기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것이 나처럼 느리고 깊고 조용한 사람에게 더 어울리는 듯하다.
무엇보다 이번 여행에서 무엇보다 진짜 지켜야 할 것은 타인의 인정이 아닌, 나에게 소중한 가족의 눈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