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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니엘 Nov 24. 2023

혹독한 겨울 신고식이라 쓰고,

올 겨울 잘 나기 위해서라 읽는다.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코가 막혀버린지가. 시월초에 캠핑을 다녀와서 코가 막히고 콧물이 나더니 눈물까지 얼굴의 여기저기 구멍에서 줄줄 흐르고 난리도 아니다.

지저분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눈물, 콧물을 연신 닦아댔다. 코가 헐고 눈가의 살이 아렸다. 그럼에도 휴지뭉치를 놓을 수가 없었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주일 넘고 이주일이 다 되어 갈 때쯤 코가 너무 막혀 잠도 못 자겠고 숨도 못 쉬겠어서 집 앞 가정의학과를 뿌리치고 사람들이 바글바글 콩나물시루같이 빼곡히 앉아있는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의사 선생님이 프라이드가 대단하시다고 해서 기대를 하고 갔는데 소문 그대로 사람도 너무 많고, 한참을 기다리다 파김치가 될 때쯤 진료실로 들어가니 약도 엄청 많이 뿌리고 코 속 깊숙이 기계가 들어갔다 나온다. 병원에서도 계속 눈물반, 콧물반이다. 


그냥 단순 코감기인 줄 알았는데 부비동염이 만성이 됐다고 한다. 일명 만성 축농증이 된 것이다. 어쩐지 증상이 눈은 벌겋고 얼굴은 붓고 머리까지 지끈거리는 게 심상치 않았다.

거기다 눈물, 콧물에 코까지 막히고 우습게 봤다가 큰 코 다치게 막히고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코가 막히면 콧물은 나지 말던지, 콧물이 나면 막히지는 말던지 보통은 한 가지만 생기던데 이건 풀지도 못하고 국이라도 끓일라치면 콧물로 간을 맞출까 봐 휴지로 코를 틀어막았다. 다소 지저분한 내용이지만 일상생활이 안될 정도로 나에게 생계가 달린 심각한 상황이었다.

음식의 맛도 잘 느껴지지 않았다. 간이 맞는지도 모르고 그냥 음식을 대충 하고 먹었다. 그럼 살이 빠질 법도 한데, 왜 살이 더 찌는지 아이러니하고 야속하기만 하다.


하다 말고 코를 풀고 손을 씻고, 왔다리 갔다리 머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아가미도 없는데 입으로 숨을 쉰 지 오래고 입은 바싹 말라가고 정말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사람이 겪어봐야 안다고 코감기 걸려 코 막혀하는 애들 대수롭게 생각했는데,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을지 이제야 알겠다. 가볍게 넘길게 결코 아니다.


휴우. 캠핑을 간 게 그렇게 잘못은 아닐 텐데 한 달이 넘게 입을 반쯤 벌리고 코맹맹이에 정확한 발음이 안 돼서 의사소통의 어려움까지 겪으며 지내다 보니 괜스레 서글프다.

요즘 독감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겐 엄살로 보일 수도 있지만 나이가 먹어서 그런 건지 염증이 낫지 않고 이리 오래가는 것도 처음이고 무서운 생각마저 들었다.


 와중에 2주에 걸쳐 주말마다 시댁과 친정에 가서 휴지로 코를 막은 채 김장을 치르고 왔다. 맵디 매운 쪽파를 다 다듬어도, 수육에 와사비를 왕창 올려 먹어봐도 뚫릴 기색이 없는 철벽코다.






오늘은 둘째가 체육관에서 운동하다 발목을 접찔려 오전엔 정형외과로 오후엔 이비인후과로 병원투어를 했다.

  "성생닝, 어제 저녕에 체육광에서 웅동하다 발몽을 바까트로 삐끄해써요."

정형외과 진료실에서 선생님한테 설명하는데, 정말 내가 말하면서 이렇게 들렸다. 아니 무슨 외계어도 아니고 무슨 말인지 몰라하실까봐 종이에 쓰고 싶은 심정이었다.

코가 너무 막히니까 'ㄴ' 받침이 발음이 되질 않았다.


그래도 뼈에는 이상이 없고 인대만 좀 늘어나서 당분간 보호대하고 조심하면 되니 다행이었지만 입 벌린 삐꾸같이 하루종일 돌아다니고 오니 정말 울고 싶었다.

나이는 먹을 대로 먹은 어른인데,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부비동염이 뭐라고 징징거리고만 있다.

잘 치료한다는 병원에서 진료하고 약 먹고 있는데 어제오늘은 어째 코가 더 막히는 듯하다.


어디가 아프든, 작든 크든 아프면 힘들고 불편하다. 하지만 분명 염증보다 더 독한 병마와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얼마나 힘겨울까. 코 하나 때문에도 이렇게 답답하고 고통스러우니 말이다.


그러니 그만 투정 부리고 감사해야겠다. 매번 다짐만 한다.

그래, 금방 낫겠지. 코 막혀서 죽은 사람은 없다니까. 이번 겨울을 잘 보내기 위한 예방주사라고 생각해야겠다.


그나저나 이번 토요일이면 중요한 만남이 있는데, 약속도 했고 설레는 그곳에 가야 하는데 이 모양 이 꼴이다.

얼굴은 붓고 눈, 코는 벌겋고 코 맹맹이 소리에 발음도 안되지만 튼튼한 두 다리는 멀쩡하니 미리 예매해 둔 버스를 타고 신나게 가서 활짝 웃어야겠다.


원래 꾀꼬리 같은 목소리는 아니지만, 걸걸해진 울림 가득한 목소리로 마음을 다해 인사를 건네야겠다. 외계어같은 발음일지라도 정말 마음을 듬뿍 담으면  알아들으시고 전해질거야. 이 마음이


나름 혹독하게 겨울의 시작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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