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책
여름 방학 동안 캐나다 퀘벡을 여행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우주가 여름리그를 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2주 정도의 일정으로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는 미국의 버팔로와 국경을 넘어서 차로 두세 시간 정도 걸려서 갈 수 있는 캐나다의 토론토를 잠깐 들렀다. 버팔로에 도착한 지 사흘째 되던 날 토론토의 로저스 스타디움을 들러 근처에서 점심을 먹었다. 공교롭게도 우리가 도착한 날이 블루재이스가 원정경기를 하는 기간 중이어서 경기를 보거나 기념품을 살 수는 없었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이틀 후에 여름리그 팀의 첫 연습에 참가했다. 우리 팀의 이름은 하프할로우힐 아메리칸스, 감독은 개리 데일리. 개리는 로건의 아버지였는데, 나이는 40대 후반 정도로 보였고 키는 큰 편이 아니었지만 반 팔 소매가 터질 것 같은 근육질의 몸이어서 리틀야구 감독이라기보다는 특수부대 교관 같은 느낌을 주었다.
팀의 구성원들은 모두 봄 리그에서 뛰던 아이들이었다. 내셔널즈에서는 존, 코너, 마크가, 타이거즈에서는 프리다가, 양키즈에서는 마이클 비글루치와 디아즈가, 메츠에서는 브랜든이, 애슬레틱스에서는 로건과 에이든이 아메리칸스로 합류했다. 자이언츠와 말린즈를 제외한 여러 팀에서 골고루 선수들이 합류했다. 자이언츠와 말린즈의 아이들은 주로 하프할로우힐 썬더스(Thunders)에 모였다. 하프할로우힐 리그에서 참여하는 팀은 아메리칸스와 썬더스였는데 심각한 건 아니지만 둘 사이에는 미묘한 신경전이 있는 것 같았다.
봄 리그는 하프할로우힐 지역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지만 여름리그는 롱아일랜드 내에 있는 여러 리틀리그 팀들이 참여하는 큰 규모의 대회였다. 하프할로우힐, 헌팅톤 빌리지, 디어파크, 불독 리틀리그 등에서 총 23개 팀이 출전했다. 여름리그는 참여하는 팀이 많기 때문에 봄 리그처럼 모든 팀들이 서로 한 번씩 경기를 할 수는 없었다. 순위 결정전 세 경기를 통해서 23개의 팀을 세 개의 브라킷(bracket)으로-성적순으로 1위부터 8위, 9위부터 16위, 17위부터 23위-나누어서 배정하고, 이후에는 같은 브라킷 내에서 리그전을 한다. 이후에 다시 4개의 플레이오프(골드, 실버, 브론즈, 블루리본)를 통해서 각 브라킷의 우승자를 뽑는다.
브라킷 결정전은 작년 성적을 바탕으로 넷 또는 다섯 개 팀이 한 조가 되어서 한 번씩 붙는다. 개리가 작년에 맡았던 하프할로우힐 호크스는 7위였다. 우리 조에서는 작년 대회 4위였던 베이쇼오 머로더스(Bayshore marauders)가 가장 높은 순위였고, 우리 팀이 두 번째였다.
브라킷 결정전은 세 경기가 아주 짧은 간격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투수 운용을 잘해야 한다. 우리 팀은 7월 6일, 7일, 10일에 경기가 있었다. 개리의 계획은 7월 6일 첫 경기인 베이쇼오 머로더스와의 경기보다는 뒤의 두 경기를 잡는 것이었다. 뒤의 두 경기만 잡아도 8위안에 들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주는 두 번째 경기에서 선발로 나설 예정이었다. 이후의 경기에서 보여준 감독의 투수 운용으로 판단해보면 개리 감독은 우주와 로건을 1, 2선발로 생각하고 있었고, 존, 브랜든, 에이든, 디아즈를 선발이 내려간 후에 올릴 투수 자원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첫 경기 상대는 베이쇼오 머로더스. 선발은 브랜든. 개리는 브랜든과 그 외의 투수 자원들을 점검하는 차원에서 올렸다. 결과는 3:22. 4회 콜드게임 패.
상대팀 투수는 구위가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제구가 잘 되었고 타자들의 타이밍을 잘 빼앗았다. 이 팀은 능력이 탁월한 한 두 사람이 팀을 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팀원 전체가 야구를 하는 센스가 뛰어났다. 투수들은 공이 빠르진 않았지만 스트라이크를 던질 줄 알았고, 수비수들은 기본에 충실했고, 주자들은 착실한 주루 플레이로 투수와 내야진을 흔들어 놓았다.
개리는 결과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경기에 임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예상을 하고 있었다고는 해도 경기에 지는 것이, 그것도 큰 점수 차로 지는 것이 즐거운 감독은 없다. 크게 뒤지고 있던 3회 말 중견수를 보던 로건이 한눈을 팔다가 공을 뒤로 빠뜨리는 실책을 범했다. 수비 시간이 길어지면 야수들, 더군다나 상대적으로 공을 만질 기회가 적은 외야수들은 더더욱 집중력이 떨어진다. 개리가 타임아웃을 요청하더니 로건을 존과 교체했다.
경기가 끝나고 우주가 관중석 벤치에서 기다리고 있는 내게로 다가왔다.
“로건이 우는데.”
“왜?”
우주가 어깨를 짧게 한 번 으쓱했다. 덕아웃 안에 로건이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아까 딴 짓 하다 혼나서 그런가?”
“감독님 심기가 불편하신 것 같아.” 아내가 말했다.
“졌는데 기분이 좋으면 더 이상한 거지.”
“짜식, 뭘 울어.” 우주가 입을 삐죽거렸다.
“로건 엄마도 심기가 불편하신 것 같아.”
“어떻게 알아?” 내가 물었다.
아내가 눈짓으로 덕아웃 너머를 가리켰다. 경기장 밖에서 개리 감독과 부인이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하고 있었다. 로건의 엄마는 큰 손동작을 하면서 뭔가를 항의하듯이 얘기하고 있었고 개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떨어뜨린 채 듣고 있었다.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상황이 대충 이해가 됐다. 로건은 심기가 불편한 개리한테 혼이 났고 개리는 로건을 혼내서 부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것이리라, 아마도.
여름리그의 장점은 롱아일랜드의 바닷가 근처에 있는 파크들을 돌아다니면서 경기를 한다는 점이다. 파크 근처의 바다를 보면 롱아일랜드가 남쪽과 북쪽이 바다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콜드게임으로 진 것은 아쉬웠지만 경기가 있었던 태너 파크의 경치는 콜드 게임패의 아쉬움을 달래 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멋졌다.
우주는 다음 날 14위 팀과의 두 번째 경기에서 선발로 등판했고 5와 1/3 이닝동안 한 점만을 내줬다. 투구수 73개. 우리 팀은 13:1로 승리했다.
사흘 뒤인 7월 10일 우리 팀은 브라킷 결정전 마지막 경기를 했다. 상대는 코맥노스골드(Commack north gold). 우리 팀 선발 로건은 3회까지 3실점을 했지만 잘 던졌다. 우리 팀 타자들은 상대팀 투수를 1회부터 활발하게 공략하면서 3회까지 12득점을 했다. 12:3. 9점차. 이대로라면 개리의 계획대로 무난하게 골드 브라킷에서 여름리그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4회에 존이 마운드에 올라왔다. 존은 공의 스피드는 좋았지만 제구가 되지 않았다.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고 연속으로 볼넷을 내줬다. 게다가 우리 팀 야수들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실책을 범했다. 늘 그렇듯 볼넷과 실책은 대량실점의 필요충분조건이다. 4실점. 12:7.
5회 초에 우리 팀은 추가점을 내지 못했다. 5회 말 존에 이어서 나온 투수들도 모두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했다. 연속 볼넷과 적시타를 맞고 6실점. 12:13. 우리 팀은 결국 역전패했다. 한 달 전 옷세고 야구장에서 경험했던 역전승을 떠올리게 만드는 얄궂은 데자뷔였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아마도 10점차 이상으로 앞서고 있었어도 결국 역전 당했을 것이다. 야구에서 볼넷과 실책으로 좁혀지지 않을 만큼 충분한 점수 차라는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
구원투수로 올라왔던 코너는 씩씩거리며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역전패로 가장 충격을 많이 받을 줄 알았던 존은 오늘은 잘 안 풀린다는 듯 고개를 조금 갸웃거렸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우주도, 프리다도, 마크도 역전패로 조금 아쉬워하기는 했지만 크게 낙담한 것 같지는 않았다. 봄 리그 결승전에서 말린즈의 아이들이 넋 나간 표정을 지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결승전이 아니라서 그런가. 역전패에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따로 있었다.
경기가 끝나고 마크의 엄마 로렌은 아이들과 코치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돌렸다. 마크가 개리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넸다. 개리가 굳은 표정으로 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며 손을 내저었다. 마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서 있으니까 옆에 있던 로건의 엄마가 대신 받아 주었다. 남편을 보며 못마땅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브라킷 결정전 결과 우리 팀은 18위였다. 골드도 실버도 아닌 브론즈. 아이들은 어느 브라킷이든 별로 상관없어 보였다. 문제는 개리, 개리 감독이 역전패의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