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선수

by 생각의 변화

야구선수


야구장 외에 우리 가족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교회였다. 우주 때문이었다. 만약 우주가 교회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교회 어른들이 우주와 누리를 귀여워했던 것도 한 몫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둘 모두 너무나도 한국말이 유창했다.

우주를 가장 잘 다루는 사람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에서 최고였다, 따로 있었는데 그건 바로 목사님의 사모님이었다. 사모님은 까만 뿔테 안경을 쓴, 똑 부러지는 성격의 중학교 가정 선생님 같은 인상이었다. 어떻게 보면 학원가의 정보를 줄줄 꿰고 있는 정보력 만렙의 대치동 사모님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모님은 우주와 동갑인 조용하고 순종적인 딸을 둔 엄마였지만 말도 함부로 하고 장난도 심하게 치는 우주를 좋아했다. 이상하게도 우주도 사모님을 잘 따랐다. 어쩌면 우주도 중학교 2학년 때의 나처럼 엄마와 비슷하지만 엄마는 아닌 누군가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주가 교회에 있는 것을 싫어했다면, 우린 아마도 서울에서처럼 예배가 끝나면 부리나케 집으로 오는 선데이 크리스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우주는 교회에서 노는 것을 좋아했다. 교회 아이들은 여자아이들이 많았고, 대부분 우주보다 어렸고(최소한 한 살 이상), 숫자도 얼마 되지 않았고, 스포츠보다는 스마트 폰으로 게임하는 것을 훨씬 더 좋아했지만, 우주는 다른 아이들의 부모들이 합창 연습이 끝나서 집으로 돌아 갈 때까지 교회에서 계속 놀고 싶어 했다.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 즈음에 우주가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으면 목사님은 저녁에 초대를 하거나 빠른 시일 내로 아이들과 같이 놀 계획을 잡아 주곤 했다.

우주가 교회에 오래 있다 보니 우리 부부도 오래 머물러 있어야 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교인들과 얘기를 하는 일이 잦아졌고, 또 그러다 보니 크고 작은 교회 행사에 참여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생활정보를 얻기 위해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던 우리 부부는 지나치게 방어적이었던 맘이 풀어지자 어느 순간부터 다른 교인들에게 마음에 빚을 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교회를 신앙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이용한 것에 대한 죄책감 비슷한 게 있었던 것 같다.

많은 교인들 중에서 특히 허 집사님은 우리와 같은 동네인 멜빌에 사는 ‘진짜’ 이웃이었다. 우주가 봄 리그 경기를 하는 기간이 합창제 연습을 하는 기간과 겹쳤기 때문에 경기가 끝나고 집이 아닌 허 집사님 댁으로 갈 때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허 집사님도 우주의 야구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됐다. 내셔널즈가 우승을 하고 우주가 최우수선수가 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허집사님이 너무 기뻐하면서 우주가 한국에서도 야구를 계속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허집사님의 오빠는 웬만한 야구팬이면 이름을 들으면 알 정도로 유명한 야구 선수였다. 당신의 오빠가 학교 다닐 때 공부도 곧잘 했는데 야구가 너무 하고 싶어서 반대하는 부모님을 설득해서 결국 야구 선수가 되었고, 지금도 야구 선수였던 걸 너무 자랑스러워한다고 했다.


예배가 끝나고 목사님이 나를 불렀다.

“다음 주 수련회 때 간증을 해주세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간증이라, 너무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 자신이 무신론자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앙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나 신비스런 경험 같은 게 있어야 하지 않나요?”

내 말을 들은 목사님이 빙그레 웃었다.

“성경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하잖아요. 회개하라의 원어가 ‘메타노이아’에요. ‘메타’는 바꾼다는 뜻이고 ‘노이아’는 생각이니까 생각을 바꾸는 거죠. 교회에 다니면서 생각이 변했다면 그게 바로 회개인 거예요. 간증은 그 순간에 대해 얘기하는 거죠. 그런 일 없었어요?”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사소한 것도 괜찮으니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분명히 있을 거예요.”

새그하버 수련회에서 난생 처음 간증이라는 걸 했다. 미국에서 일어난 나의 소박한 ‘메타노이아’, 부모로서 느낀 생각의 변화에 관한 내용이었다. 왜 그랬는지 알 수는 없지만 간증을 하다 보니 울컥했고 결국은 제대로 끝내지 못했다.

다음 날 새그하버의 아침 풍경은 내가 느꼈던 전날의 무안함과는 상관없이 고요했고 바다 위로 떨어지는 5월의 햇살은 바다에 정박한 배들 틈에서 반짝였다. 서울에서는 퇴근하면서 병원 문을 나서면 8차선 도로 위로 지나가는 모든 게 정신없이 빠르기만 했는데, 새그하버 호텔 정문에서 수평선이 보이는 파란 바다와 무심하게 떠 있는 배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세상이 아무런 변화 없이 영원히 정지해 있을 것만 같았다.

목사님과 같은 테이블에서 아침을 먹게 됐다. 조금 있다가 이관수도 와서 앉았다. 내가 전날 일로 무안해하니까 이전에 이관수 집사가 간증했을 때보다 훨씬 나은 편이라고 위로했다. 이관수는 체격이 크고 우락부락한 인상을 지닌 사람이었다. 교회가 아니라 양산박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인상이었는데, 내가 만났을 때는 머리를 단정하게 자르고 다녔지만 간증을 하던 당시에는 머리를 길러서 포니테일로 묶고 다녔다고 한다. 키 180센티미터 이상에 체중 100킬로그램 이상, 게다가 머리까지 길게 묶은 사람이 단 위에서 꺼이꺼이 울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나 정도가 우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서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이관수를 볼 때마다 단짝이었던 임동준이 떠올랐다. 부리부리한 눈과 직설적인 말투, 그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꼼꼼함과 논리적인 사고, 거기다가 약간의 감상적인 성격까지. 심지어 비슷한 버릇도 있었다. 동준은 거친 외모와는 달리 공부할 때는 세심하고 치밀하게 준비하는 편이었는데, 시험 보기 직전에는 장난으로라도 자신의 머리를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 이유를 물으니 자신이 밤새 공부한 모든 게 머리에 간신히 붙어 있는데 머리를 만지면 날아간다는 것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이유였지만 본인은 진지했다.

아침을 먹다가 대학 다니던 시절 얘기가 나왔다.

“저는 시험 볼 때 징크스가 있어요.”

이관수가 말했다.

“뭔데요?”

“일단 반드시 전날 밤을 새야 하고, 그 다음에는 반드시 모자를 써요. 이유? 외운 게 날아 갈까봐. 푸하하하, 말도 안 되죠.”

이관수는 직설적이고 욱하는 성격 탓에 교회 내에서 인간관계가 원만한 편은 아니었지만 난 이관수가 좋았다. 아마도 여러모로 동준을 닮아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교회를 다니면서 우리 가족은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우리 가족에게 많은 호의를 베풀었지만 그것이 신앙이 없었던 나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은 것은 아니었다. 교회가 내게 만든 변화는 아주 작고 미미한 것이었다.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거나, 갑자기 방언이 터졌다거나, 선교사가 돼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보다 훨씬 더 작고 사소한 것이었다. 무신론은 외로웠고, 누군가를 위해 기도했고, 나와 우주에 대해 가끔 생각했다.


좋은이웃 교회 야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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