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업
방학을 하면서 우리 가족의 하루 일과도 변했다. 7월 중순까지 우주와 누리는 여러 가지 단체들에서 운영하는 썸머 캠프에 등록해서 낮시간을 보냈다. 캠프에서는 수영을 하고, 야구나 농구를 하고, 레고를 만들었다. ESL 수업을 듣는 아이들을 위한 썸머 클래스에도 등록했다. 우주와 누리를 장소에 데려다주고 온 후에 아내와 나는 집에서 쉬거나 장을 봤다.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와서 점심을 먹고 나면 아파트 안에 있는 수영장에서 한두 시간 더 수영을 했다.
우주는 수영이 끝나고 조금 쉬었다가 햇볕이 너무 뜨거운 한낮의 시간을 피해서 선컴 파크에서 야구 연습을 했다. 아이들을 매번 차로 데려다줘야 했기 때문에 스쿨버스로 통학하던 학기 중에 비하면 할 일이 늘었지만 여전히 시간이 많이 남았다. 게다가 포트제퍼슨 대학교 실험실도 두 달 동안 방학이었다.
미국에 오면서 한국에서는 읽을 수 없었던 책들을 몇 권 가져왔다. 읽을 시간이 많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못했다. 마음 같아서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단숨에 읽을 것 같았는데 현실은 <노인과 바다>도 힘들었다.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 내가 미국에서 쓴 글이라곤 에스앤에스에 올린 야구 경기에 대한 짧은 포스팅이 전부였다.
한때 소설가를 꿈꿨던 조한수는 정신의학과 전문의가 된 후에는 책을 읽지도 글을 쓰지도 않게 됐다고 했다. 어렸을 땐 모난 성격이어서 세상과 자신에 대한 불만과 분노로 똘똘 뭉쳐 있었지만 정신의학과 의사가 되면서 둥글둥글해졌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어쩌면 그 당시 내가 글을 쓸 수 없었던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 만족스럽다면 글 따위가 필요할 리 없다. 그러니 언젠가 행복한 시절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면, 그건 넘치고 만족스럽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어떤 결핍을 견디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더 높다.
골드 브라킷이 좌절되고 난 뒤에 우리 팀의 분위기는 좀 더 여유로워졌다. 우선 개리의 표정이 이전보다 훨씬 편안해 보였다. 브론즈로 결정되고 난 뒤에는 승부에 별로 집착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일방적으로 이긴 경기가 많았기 때문에 승부에 집착할 기회가 별로 없었는지도 모른다. 코치였던 존의 아빠 역시 마찬가지, 봄 리그를 할 때와는 달랐다. 존이 좀 못 쳐도, 못 던져도 그다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여름리그 동안 존은 타자로서는 여전히 날카로웠지만 투수로서는 팀 내에서 비중이 현격히 줄어들었다. 들쭉날쭉한 제구가 문제였다.
존의 아빠는 브라킷 결정전 세 경기가 모두 끝난 다음 날, 존의 생일 파티에 우리 가족을 초대했다. 나와 아내는 기꺼이 초대에 응했다. 우리 부부는 언젠가부터 영어를 잘 못한다는 사실을 별로 의식하지 않았다. 영어실력이 늘어서라기보다는 공통된 얘깃거리가(주로 우주와 관련된 내용이긴 했지만) 생겼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오후 세 시 즈음에 존의 집을 방문했다. 존의 엄마인 크리스틴이 우리를 반겼다. 롱아일랜드의 여느 집과 다름 없는 평범한 모습이었다. 나무로 만든 이 층집이었고, 자그마한 마당 한 켠에 있는 바비큐용 그릴에서는 손님들에게 낼 햄버거 패티와 소시지가 지글지글 익고 있었다.
거실에는 빅 존과 크리스틴의 결혼사진을 비롯한 젊은 시절의 사진들이 거실 벽 위쪽에 걸려 있었다. 빅 존은 젊은 시절 군인 신분으로 한국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이태원에 가본 적이 있다고 했다. (리틀) 존은 네 살 아래인 남자 동생 조셉이 있었고, 위로는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누나 스텔라가 있었다. 스텔라는 뭔가 불만이 있는지 잔뜩 부어 있었는데 눈치를 보니 크리스틴은 어린 조셉에 신경을 많이 쓰고, 빅 존은 리틀 존에게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결국 스텔라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 그리고 동양이나 서양이나 머리가 굵어진 고등학생과 친하게 지내는 게 쉽지 않은 법이다. 스텔라는 졸업 후에 대학을 가지 않고 조금 쉬다가 취직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가을에 졸업파티를 할 계획인데 아무도 관심이 없다며 투덜거렸다.
집에는 로건. 코너, 그리고 내셔널즈였던 블레이크가 이미 와서 놀고 있었다. 우주와 아이들은 마당에 지상으로 설치된 수영장에서 조금씩 내리는 가랑비를 맞으며 수영을 했다. 조셉 나이의 아이들이 수영장에서 익사하는 사고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기 때문에 수영장을 땅을 파지 않고 지상으로 설치한 거라고 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지 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이들은 수영을 마치고 케이크를 먹은 뒤에 지하에서 플레이스테이션을 했다.
존의 집에 온 부모는 코너의 엄마와 우리 부부뿐이었다. 이상하게도 코너는 봄에 이어서 여름에도 야구를 같이 했는데 그다지 친근함 느낌이 없었다. 그날 코너가 결승전에 오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물었더니 라크로스 경기 날과 겹쳐서 나올 수 없었다고 했다.
코너가 팀에 들어 온 초기에 코너의 아빠는 라인업에 불만이 많았다. 몇 차례 피카렐라에게 하위 타순이었던 코너의 타순을 조정해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코너는 6번 타순까지 올라왔다. 물론 조정이 된 가장 큰 이유는 코너가 너무 잘 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봄 시즌이 끝날 때까지도 코너의 아빠는 코너가 6번 타순이라는 사실에 완전히 만족하는 것 같지 않았다. 어쩌면 결승전과 축하파티에 나오지 않은 것도 그런 불만과 관련이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누구나 자신이 더 인정받는 곳에서 있고 싶어 하는 법이니까.
아내와 크리스틴이 식탁 주변에서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빅 존과 거실에서 영화 <용쟁호투>를 보았다. 전에 봤을 때는 몰랐는데 새삼 'Enter the dragon'이라는 영어 제목이 낯설게 느껴졌다. 용으로 들어가다, 난해할 만한 부분이 전혀 없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난해한 부분이었다. 왜냐하면 용과 호랑이가 싸우는 막상막하의 대결을 의미하는 제목이 ‘용으로 들어가다’라는 전혀 엉뚱한 의미로 영역(英譯) 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끝까지 봤지만 영어 제목은 여전히 수수께끼였다. .
집에 도착하니 일곱 시가 조금 넘었다. 마침 생각이 나서 ‘용쟁호투’로 검색해 보니 영어 제목에 대한 해석이 분분했다. 그 중에 가장 그럴듯했던 건 영어 제목 'Enter the dragon'이 'Enter the dragon gate'에서 ‘gate’가 빠진 형태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실은 ‘용으로 들어가다’가 아니라 ‘용문으로 들어가다’가 원래 의도했던 제목이라는 것.
등용문이라는 말의 어원이기도 한 용문은 황하 상류에 있는 협곡을 일컫는 말이다. 용문은 물살이 가장 거센 곳이다. 중국의 고사성어 ‘리어도용문(鯉魚跳龍門, 잉어가 용문을 넘어야 용이 된다)’은 용문의 물살이 너무 거세기 때문에 잉어가 용문을 넘으면 용이 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니 용문이란 더 높은 경지로 가기 위해서 감내해야 하는 고난의 관문인 셈이다.
하지만 박광수라면 ‘용문’이 아니라 ‘용’이 맞다고 우겼을 것이다.
박광수는 같이 학교를 다녔지만 나보다 여덟 살이 많았다. 그는 대학교를 들어오기 전에는 독실한 크리스찬이었고, 대학에 들어와서는 극렬한 운동권이었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제적을 당했고, 이후에는 공장 일도 하고 직장 생활도 하다가 복학이 됐다.
비쩍 마른 체형에 키가 훤칠했고 검정색 가죽점퍼 차림으로 오토바이를 몰고 다녔다. 거친 첫인상과는 대조적으로 여자 친구도 사귀지 않고 술 담배도 전혀 하지 않는 수도사 같은 생활을 했다. 본인 말로는 운동권 시절에는 말술에 골초였지만 모두 끊었다고 했다. 사실 오토바이도 거의 자전거와 비슷한 속도로 조심조심 몰았다. 왜 굳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는지는 잘 모르겠다.
한때 그와 함께 신흥 종교의 교주를 쫓아 다녔던 선배의 평가에 따르면 광수 형은 논리적이라기 보다는 직관적이라고 했다. 신기(神氣)가 있다고나 할까. 기독교, 불교, 유교로부터 도교까지 모든 종교에 관심이 많았던 그의 마지막 (내가 알고 있는) 종교는 동학 또는 천도교였다. 그가 내게 설명해줬던 많은 종교적 또는 철학적 잠언들은 대부분 향아설위(向我設位)라는 동학의 설법으로 수렴되었다. 향벽설위(向壁設位)가 아닌 향아설위하라. 그는 누구나 자신의 내면에 상상할 수조차 없는 경지의 ‘나’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우리가 평범해 보이는 것은 내면의 동굴에 잠들어 있는 ‘나’를 아직 깨우지 못했기 때문이야.”
쿠킹호일이 깔린 네모난 불판 위에서 냉동 삼겹살이 지글지글 익고 있었다.
“못 믿겠지?”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요.”
그가 다 익어서 바삭해진 고기를 불판 가장자리로 옮겼다.
“서양의 전설을 떠올려 봐. 기사는 공주를 찾아서 여행을 떠나. 공주는 동굴에 갇혀 있어. 동굴의 문 앞에는 불을 뿜는 거대한 용이 지키고 있지. 공주를 구하기 위해서는 용을 죽여야만 해.”
내가 잔에 반쯤 남아 있던 소주를 마셨다.
“용을 죽이고 공주를 구하면, 공주는 하늘을 날게 되지.”
“노래 가사랑 비슷하네요” 나는 <마법의 성>을 떠올리며 빈 소주잔을 만지작거렸다.
“그건 단순한 노래 가사가 아니야. 우리 내면에 감춰진 엄청난 비밀이지. 공주가 바로 우리 자신이거든.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능력을 가진 나. 용은 그런 나를 얻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수많은 장애물인 거고.”
어딘가에서 그 노래가 들릴 때면, 그의 말이 떠오르곤 한다. 하늘을 날 수 있는 공주가 내 안에 갇혀 있다. 공주를 구하려면 ‘용’을 죽여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게 있다. Enter the dragon. 용으로 들어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