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살
우리 팀은 순위 결정전 세 경기를 통해서 18위로 결정됐고, 17위부터 23위까지가 속한 브론즈 브라킷에서 일곱 경기를 했다. 아메리칸스는 봄 리그의 내셔널즈와 비교하면 타격, 수비가 모두 좋았고 투수진도 나쁘지 않았다. 여름리그를 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건, 브론즈 브라킷의 다른 팀들이 너무 전력이 약하다는 것. 적어도 실버 브라킷에는 들었어야 했다. 코맥노스골드에게 당한 역전패가 두고두고 아쉬웠다. 하지만 어쩌랴, 브라킷을 바꿀 방법은 없었다.
충격의 역전패를 당한 후 우리 팀은 내리 7연승을 했다. 7승 중에서 2승은 콜드게임이었고 그나마 콜드게임이 아니었던 나머지 다섯 경기도 대부분 초반에 대량득점을 하고 후반에 점수를 조금 내주면서 싱겁게 끝났기 때문에 딱히 긴장감을 느낄 만한 순간이라는 게 없었다.
리그전이 모두 끝난 후에는 다시 네 개의 브라킷 플레이오프로 나누어져 경기를 치른다. 1위부터 6위까지는 골드, 7위부터 12위까지는 실버, 13위부터 18위까지는 브론즈, 나머지는 블루리본. 우리 팀은 브론즈였고 첫 상대는 코맥사우스블랙(Commack south black)이었다.
1999년 2월, 동준과 나는 거하게 술을 한 잔 하기로 했다. 당시 나는 타과 파견 중이어서 다음날 오후부터 근무였고 내과였던 동준은 편한 파트를 돌고 있는 중이었다. 술 마시는데 명분 따위가 필요한 건 아니지만 그날만큼은 나름 명분이 있었다. 혹독하고 고달팠던 1년차가 끝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졸업생 공연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얘기 해보기로 했다. 솔직히 말하면 1년차가 끝나가니 졸업생 공연을 안주 삼아 자축이나 하려는 심산이었던 것 같다.
나는 선배 근형에게 연락을 했고 동준은 내과 동기인 정태에게 연락을 했다. 정태는 일이 늦게 끝나서 약속 시간에 늦을 것 같다고 했다. 우리 셋은 1차에서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고 지하에 있는 비텐베르그 호프로 자리를 옮겨서 맥주를 마셨다. 2차로 옮길 즈음에 정태가 못 온다는 연락을 했다. 당시에 나는 지하에 있는 술집에 가는 것을 꺼렸는데 그건 몇 년 전에 발생했던 화재 사고 때문이었다. 3년 전 가을 ‘라이프 온 마스’라는 지하 술집에서 불이 났다. 전기합선에 의한 화재였다. 이 사고로 종업원과 손님 열한 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중에는 세 명의 레지던트가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에 레지던트 1년차였던 그들은 모처럼 짬을 내서 그날 만나기로 했다. 원래는 네 명이 만나기로 했지만 한 명은 일 때문에 결국 장소에 나오지 못했다. 그날 모임의 유일한 생존자였다. 그 사고 후로 한동안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지하 술집에 가는 일을 꺼렸다. 하지만 술이 좀 오르면 그런 불길한 기분은 누그러지는 법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졸업생 공연에 대해서 얘기했다. 졸업생 공연을 하겠다고 나섰던 사람이 나와 동준이 처음은 아니었다. 과장해서 말하면 연극반의 거의 모든 졸업생들은 술자리에서 조건반사처럼 연극을 한 편 올려보자는 말을 하곤 했다. 실제로 연극을 올리기 위해서 작품을 선정하고 연습을 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아무도 공연을 올린 적은 없었다. 말은 무성하지만 퍼포먼스는 없는, 모두가 기다리지만 아무도 본 적은 없는, <고도를 기다리며>속의 ‘고도’와 같은 그 무엇, 그게 바로 졸업생 공연의 실체였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하는 일의 대부분이 무의미한 잡담과 장난뿐이었던 것처럼 졸업생들이 공연을 위해서 한 일도 마찬가지였다. 알맹이 없는 수다와 공허한 다짐. 다음에 다시 만나도 똑같이 수다를 떨고 다짐을 할 뿐, 아무도 그 지점에서 더 나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날 셋이 모여서 한 일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졸업생 공연을 안주 삼아 수다를 떨었고 언젠가 공연을 하자는 다짐을 또 한 번 반복했다. 훗날 셋이 다시 만났다 해도 이야기는 다시 같은 지점에서 시작해 같은 지점에서 끝났을 것이다. 어쩌면 영원히.
우린 평소보다 조금 일찍 헤어졌다. 그날 동준은 평소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평소에는 선후배 가리지 않고 술을 마구 먹이던 동준이 웬일인지 그날은 얌전했다. 덕분에 근형도 나도 너무 멀쩡했다. 2차를 마치고 나온 시간이 대략 저녁 열 시 정도였으니 3차를 갈 만도 했다. 하지만 우린 그러지 않았다. 그땐 왜 그랬을까.
오전 열 시, 야구장은 조용했다. 야구장에서 들리는 유일한 소음은 잔디를 깎는 기계의 거친 엔진소리와 서걱서걱 풀이 깎이는 소리뿐이었다. 야구 시즌에는 아침마다 잔디 깎는 차가 동네 야구장을 돌아 다니면서 잔디를 깎는데 우리가 마침 그 시간에 도착한 것이었다. 나와 아내는 플레이오프 1차전이 열리는 파인에이커 파크(Pine acres park)에 들렀다. 근처에 볼일도 있었고 처음 오는 구장이어서 위치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파인에이커 파크는 디어파크 리틀리그의 홈구장이었고 여름 리그 동안 우리 팀은 이곳에서 한 번도 경기를 한 적이 없었다. 옷세고나 태너에 비해 규모가 작았고 파크 안에는 다양한 크기의 야구장이 철조망으로 구획되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사무실은 닫혀 있었다. 사무실 건물은 목조였는데 건물 벽면에는 지역리그 우승을 한 팀의 감독과 선수들의 이름이 새겨진 현판이 듬성듬성 붙어 있었다.
나오면서 보니 파인에이커 파크의 입구 한 쪽에는 ‘브리아나 라이넥’이라는 이름이 금색으로 새겨진 와인색 바탕의 현판이 장미 넝쿨에 싸인 흰색 기둥에 걸려 있었고, 바닥에는 앳된 소녀의 얼굴이 프린팅된 푸르스름한 돌판이 있었다. ‘우리 가슴 속에 영원히’라고 새겨진 현판의 문구에서 브리아나가 죽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바닥에 놓인 돌판에는 '브리아나 라이넥을 추억하며'라는 문구 아래로 ‘브리지(breezy, 산들바람이 부는)’라는 단어와 숫자 ‘00’이 줄을 바꿔서 새겨져 있었다.
무슨 뜻일까. 나와 아내는 돌판 앞에서 잠시 생각에 잠긴 채 서 있었다. ‘브리’로 시작되는 소녀의 이름이 ‘브리지’라는 단어의 앞부분과 우연하게도 발음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며, 파인에이커 파크를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 숲 사이에서 불어오는 작고 조용한 바람을 상상했다.
오후 6시에 플레이오프 1차전이 시작됐다. 우주는 3번 타자, 선발투수로 출전했다. 1회 초 우리 팀은 적극적인 주루 플레이와 상대 수비진의 실책으로 8득점했다. 1회 말 우주는 선두타자를 3루수 실책으로 출루시켰다. 무사 주자 1루. 2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볼. 볼. 세 번째 던진 공을 상대 타자가 받아쳤다. 유격수 앞으로 굴러가는 공이었다. 유격수는 조금 앞으로 달려와 받은 후 2루로 던졌다. 2루 베이스에서 공을 받은 비글루치는 베이스를 밟고 포스아웃을 시킨 후 부드럽고 군더더기 없는 연결 동작으로 1루로 던졌다. 1루에서도 아웃. 더블 플레이. 6-4-3으로 이어지는 환상적인 더블 플레이였다. 우주는 다음 타자를 삼진으로 잡았다. 8:0.
이어지는 이닝에서 우리 팀은 두 점을 더 보탰고 우주는 마운드에서 흔들림이 없었다. 10:0. 5회초 우주가 볼넷으로 걸어 나가면서 시작된 공격에서 우리 팀은 5득점 했다. 15:0. 5회말 수비에서 우주는 아웃 카운트 하나만을 잡고 2루타, 안타, 그리고 볼넷, 만루의 위기를 맞았다. 다음 타자는 삼진. 투 아웃. 투구 수 65개.
개리는 15점이라는 점수 차를 감안해서 투수를 브랜든으로 교체했다. 상대 타자는 브랜든의 초구를 받아쳤고 공교롭게도 유격수로 자리를 바꾼 우주 앞으로 공이 굴러갔다. 우주가 제자리에서 잡아서 1루로 송구했다. 경기 끝. 15:0.
경기가 끝나고 비글루치가 우주에게 오늘 투구할 때 어떤 그립으로 잡고 던졌는지를 물었다. 포심이었다. 비글루치는 주근깨가 난 얼굴에 체격이 작고 마른 아이였는데, 우주에게 관심이 많았다. 어떤 브랜드의 배트나 글러브를 쓰는지 묻기도 했고, 투구할 때 요령 같은 걸 물어 볼 때도 있었다.
오늘 우주는 4와 2/3이닝 동안 단 한 점도 내주지 않았다. 5회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위기도 없었다. 하지만 오늘 경기 최고의 장면은 우주의 무실점 투구가 아니라 비글루치가 보여 준 더블플레이였다.
동준과 만난 다음 날 아침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시계를 보니 아침 7시가 훨씬 지나 있었다. 거실로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정태였다.
“웬일이냐?” 내가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말했다.
“응급실에서 연락 받았는데 동준이가 응급실에 있대” 정태의 말투가 조심스러웠다.
“어디 아픈가? 어제는 멀쩡하던데.”
“출근하다가 교통사고가 났나봐. 나도 아직 못 가봤는데 응급실 애들 말로는 많이 다쳤다고 하더라.” 정태는 뭔가를 더 알고 있는 듯 했지만 말을 아꼈다.
“빨리 가봐라.”
전화를 끊고 나서 서둘러 집을 나섰다. 어제 같이 술 마시고 멀쩡하게 헤어진 사람이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병원에 도착하니 오전 여덟 시가 넘었다. 동준은 이미 수술방으로 옮겨진 상태였다.
새벽에 동준이 탄 택시가 병원 근처의 터널에서 맞은편에서 오는 트럭과 정면충돌했다. 디오에이로 응급실에 도착했다. 심폐소생술을 했고 맥박이 돌아온 후에 브레인 CT를 찍었다. 출혈이 많고 부종이 심했다. 신경외과에서 감압을 위해서 두개골의 일부를 제거했다. 예후가 좋지 않을 거라고 했다. 다음 날 아침에 중환자실에 들렀다. 동준은 기계환기에 연결된 채 중환자실에 평온하게 누워 있었다. 기계가 숨을 불어넣을 때마다 동준의 머리 쪽에서 낮고 메마른 바람 소리가 들렸다.
아침마다 로비에 앉아 있는 동준의 어머님을 만났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며칠이 지나도 동준은 평온한 모습 그대로였다. 더 이상 유한한 세계에 속하지 않는, 무한한 세계로 떠난 자의 평온함. 닷새 뒤 동준은 사망했다. 모두가 기다렸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2005년 브리아나 라이넥은 열한 살이었다. 친구들은 그녀를 '브리지'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그것이 그녀의 별명이었다. 브리아나를 발음할 때마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입술 사이에서 불었다. 열한 살의 브리아나는 디어파크 리틀리그 소프트볼 팀의 포수였고 그녀의 유니폼에는 동료들이 지어준 ‘브리지’라는 별명과 함께 등번호 ‘00’이 새겨져 있었다. 9월이 되어 새 학기가 되면 디어파크에 있는 로버트 프로스트 중학교에 입학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브리아나는 중학생이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2005년 8월 그레이트 사우스 배이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보트 충돌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브리아나는 바람이 되어 무한한(∞) 세계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