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부

by 생각의 변화


야구부


2015년 5월의 어느 날. 나는 평소처럼 퇴근해서 일곱 시 즈음에 집에 도착했다. 집안은 조용했다. 우주 방의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직 학교에서 오지 않았다. 책꽂이에는 첫 경기에서 피카렐라가 줬던 야구공이 있었고, 서랍장 위에는 하프할로우힐 봄 리그 우승 트로피, 최우수선수 트로피와 여름리그 브론즈 브라킷 우승 트로피가 놓여 있었다. 우주랑 야구를 하니까 상 받을 일이 많아서 신난다고 했던 존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우리 가족은 2013년 10월 8일 제이에프케이 공항을 출발해서 형이 살고 있는 네덜란드 라이덴에 들렀다. 그곳에서 사흘 동안을 머물렀고 기차를 타고 파리에 도착해서 사흘 동안을 지내다가 17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네덜란드와 파리에서 좋았던 건 너무 멀리 있어서 서로 볼 수 없었던 조카 연두와 우주, 누리가 짧은 시간이나마 같이 지낼 수 있었다는 것이고 나빴던 건 네덜란드에서도 파리에서도 계속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는 것이다.


좌: 암스테르담 우: 라이덴에서


좌: 노트르담 성상 우: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

한국에 돌아와서 우주는 비록 롱아일랜드에서 만큼 야구를 할 수는 없었지만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돼서 기뻐했고, 누리는 <별의 커비> 게임을 할 수 있게 돼서 좋아했다.

내가 한국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우주가 들어갈 수 있는 학교 야구부나 리틀 야구팀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야구를 하는 건 쉽지 않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학교 야구부 소속이 아닌 학생이 제대로 갖춰진 조건에서 야구를 하는 게 쉽지 않았다. 우주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야구부가 없었기 때문에 다른 경로를 통해서 야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주변에 그런 정보를 아는 사람은 드물었고 검색을 통해서 알아볼 수 있는 정보는 한계가 많았다. 또 검색을 하거나 정보를 듣고 막상 가보면 너무 실망스러운 수준인 경우가 많았다.

이러저러한 경로를 거쳐서 겨우 알아낸 곳은 집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삼십 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한 미라클 야구교실이었다. 처음 레슨을 받으러 갔을 때 인스트럭터가 왜 야구 레슨을 받는지 물었다. 야구 선수를 시킬 거라고 했더니 나와 우주 쪽을 슬쩍 쳐다보았다. 아마도 우주와 나의 키를 확인했던 것 같다. 작아요. 그냥 취미로 시키세요. 공을 던지는 것도, 배트를 휘두르는 것도 보지 않고 한 얘기였다. 아이의 키만 보고 야구 선수가 될 가능성을 판단하는 스승에게서 과연 야구의 미라클 또는 미라클 같은 야구를 배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지만 일단 레슨은 받기로 했다.

그 곳에서 두 번 더 레슨을 받았다. 그곳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희한하게도 그 곳은 초밥처럼 생겼지만 초밥 맛이 나지 않는 B급 출장 뷔페의 초밥처럼 야구를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었지만 야구를 하는 즐거움이나 활기 같은 게 전혀 느껴지지 않는 곳이었다. 시합이 아닌 연습만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었을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닐 것 같다. 어쨌거나 미라클은 없었다.

작년에 우주가 동부 다이노스의 선수로 참가했던 포니(PONY) 리그 경기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마찬가지였다. 야구장도 있고 심판도 있고 선수도 있고 박빙의 승부도 있었지만, 중요한 뭔가가 빠져 있었다. 우주가 그날 참여했던 세 경기는 싱겁게 일방적으로 끝났던 브론즈 브라킷의 리그전보다도 더 지루했다. 왜 그 경기들은 즐거움과 활기가 없었을까.

우주가 한국에 와서 본격적으로 야구를 하게 된 것은 엉뚱하게도 누리 덕택이었다. 어느 날 퇴근해서 집에 와보니 못 보던 전단지가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저니맨야구학교’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누리가 하굣길에 교문 앞에서 받은 거라고 했다. 그 즈음에 우주는 세 번 레슨을 받았던 미라클 야구 교실에 더 이상 가고 싶어 하지 않았고 우린 새로운 곳을 찾는 중이었다.

누리가 전단지를 가져 온 지 며칠 후 나와 우주는 저니맨 야구학교를 방문했다. 한국에서 야구를 하면서 즐거웠던 몇 안 되는 순간들 속에는 모두 저니맨이 있었다. 저니맨에 다니던 초기에 우주의 연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던 순간이 좋았다. 연습이 끝나고 나서 식당에서 우주와 밥을 먹던 순간도 좋았다. 밥을 먹으며 우주와 야구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순간도 좋았다. 그 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 둘 다 신나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곳을 다니던 초기에 우주는, 나도 그랬지만, 프로야구 선수가 된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어쩌면 우주는 다른 친구들처럼 방과 후에 학원을 가지 않아도 됐기 때문에 더 신났던 것 같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보낸 시간 중에 가장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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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저니맨 세종캠프 우: 청량중학교에서 연습


하지만 미국을 떠나온 시간이 길어질수록 현실 속의 압박은 점점 더 교묘해지고 은근해졌다. 그건 더 이상 우주를 학원에 보내고 안 보내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과목이 달랐을 뿐 야구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야구를 하는 게 더 이상 즐겁지 않다면, 그건 간판을 달리한 학원일 뿐이었다. 언젠가부터 야구는 우주가 즐기고 잘하는 운동 중에 하나가 아니라 가야 할 길이 돼 버리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우주가 열심히 하는 게 너무나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우주를 야구선수로 만들겠다는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더 이상 취미가 아니라 직업이라는 걸 명심하라고, 성실과 열심이 없다면 경쟁에서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매니저가 소리치고 있었다. 어느 순간 관중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저니맨으로 향하는 우주의 일과는 일 년이 넘게 계속됐다. 물론 그 기간 동안에도 문제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우주는 학교에서 제멋대로일 때가 많았고 규칙을 잘 따르지 않았다. 우주가 학교에서 크고 작은 사고를 칠 때 마다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면담을 마치고 온 아내의 표정은 어두웠다. 시간이 지나도 우주의 학교생활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지만 나는 아직 야구를 본격적으로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야구부에만 들어가면 야구도, 학교생활도 더 좋아질 거라고 믿었다.


거실로 나왔다. 불이 꺼진 거실은 어두웠다. 아발론 아파트에 살던 초기에 불편했던 점 중의 하나는 너무 어둡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미국의 집 거실과 방 천정에는 조명이 없기 때문이었다. 존의 집도 그랬고 멜빌의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부엌과 화장실을 제외하고는 모두 조명이 없었다. 스탠드를 구입하기 전까지 거실의 어둠을 바라보면서 저녁을 먹었고 화장실의 불을 켜서 방을 밝히곤 했다.

한국에 도착했던 날 집에 도착해서 받은 첫인상은 ‘낯설다’라는 것이었다. 고작 일 년을 미국에서 보내고 와서 7년을 살았던 집이 낯설어졌다는 게 이상한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실제로 그랬다. 그 낯섦의 가장 큰 원인은 어둠이었다. 거실 조명을 바꿔도 어둠은 해갈되지 않는 뙤약볕의 목마름처럼, 얼굴에 스며든 세월의 흔적처럼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왜 우리 집은 어두웠을까.

한국에 온 지 여섯 달이 지났을 무렵 아내는 도배할 계획을 세웠다.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서 도배 하는 법을 익히고, 풀을 비롯한 여러 가지 재료와 도배지를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아내에게 도배는 어둠을 몰아내기 위한 어떤 의식처럼 보였다. 이전 벽지를 뜯어내고 속살을 드러낸 벽에 하얀 벽지를 붙였다. 여기저기로 풀이 튀기고, 길이가 맞지 않고, 붙여 놓은 도배지가 떨어지고, 모든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요령이 생기고 점점 더 일에 속도가 붙었다. 우주 방에서 시작해서 안방, 누리 방, 거실까지 모두 도배를 하는데 거의 석 달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2014년 가을 즈음에는 모든 벽이 하얀 벽지로 도배되었고 우리 집은 이전 보다 조금 환해졌다. 하지만, 훨씬 더 환해졌어야 했다. 이상하게도 새하얀 벽지와 밝아진 조명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우리 집은 조명조차 없었던 아발론 아파트의 거실보다도 어두웠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건 벽지나 조명의 문제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아마도 그건, 그 시기가 2013년 가을이 아니라 2014년 가을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주의 2014년은 2013년 보다 조금 더 나빴고 2015년은 2014년보다도 훨씬 더 나빠지고 있었다. 그게 어둠의 또 다른 원인이라면 원인이었다.

좌: 저녁의 목련나무 우: 집근처에 핀 장미

거실 불을 켰다. 창밖 너머로 보이는 바깥은 어두웠지만 아직도 햇빛이 발그레하게 남아 있었다. 아침에도 얘기했으니 많이 늦지는 않을 것이다. 거실에 있는 수납장에는 우주가 예전에 좋아했던 운동 장비들이 쌓여 있었다. 야구 글러브, 워리어 티피엑스, 이스턴, 드마리니 배트, 스케이트 보드, 축구공, 테니스 라켓. 미국에 가기 전에 우주가 가장 좋아하던 운동은 테니스였다. 그 당시에는 학교가 끝나면 학교 옆 테니스장에서 하루 종일 테니스를 치다가 저녁 늦게 집으로 들어오곤 했다. 미국에 갈 때 우주가 제일 먼저 챙겼던 물건도 테니스 라켓이었다. 하지만 정작 미국에서는 야구를 하느라 거의 치지 않았다. 어디서나 우주는 자신이 적당히 할 수 있는 운동을 잘 찾아냈다.

6학년 가을에 우주는 중학교 야구부 감독들 앞에서 테스트를 받았다. 감독들의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저니맨에서는 현재 중학교 야구부가 정원이 찬 상태이지만 1학기가 끝나면 그만두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자리가 생길 거라고 했다. 하지만 테스트를 본 후에도 우주의 학교 생활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점점 더 엉망이 돼가고 있었다. 그리고 야구도.

저니맨을 다니던 초기에 매일 같이 연습을 하러 가던 우주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딱’ 그 만큼만, 그러니까 잔소리를 듣지 않을 만큼만 연습하러 갔다. 추워서,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친구와 약속이 있어서, 피곤해서, 팔이 아파서, 발목을 삐끗해서 연습하러 가지 않았다. 가지 않을 이유가 그토록 많다는 사실이 가리키는 단 한 가지의 진실은 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진실을 받아들이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주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남양주 연습장까지 일주일에 두 번 운전을 해서 데려다 줬다. 그때까지만 해도 연습장으로 가는 문제만 해결되면 야구를 다시 열심히 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연습하는 걸 보면서 그게 원인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멀어진 건 거리가 아니라 마음이었다.

일주일 전 연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속에서 아직도 야구 선수가 되고 싶은지 우주에게 물었다. 몰라, 우주가 무성의하게 대답했다. 일주일 동안 생각해보고 다음 주에 다시 얘기하자.


저녁 늦게 우주가 들어왔다.

우주야, 생각해 봤니. 뭐? 야구. 몰라.

“이젠 모른다고 하면 안 돼.” 우주는 나를 보지 않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아빠가 보기에 우주는 이제 야구를 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어떻게 할 거냐?”

“모른다구.” 우주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주야, 아빠랑 엄만 진짜 괜찮아. 네 생각을 말해줘.” 아내가 말했다.

우주가 방으로 들어가려다가 문 앞에서 멈췄다.

“그만할래.”

방문이 천천히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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