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게임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를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부모를 닮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부모와 전혀 닮지 않은 부분도 있다. 내게는 아버지의 느긋함이 있지만 어머니의 조급함도 있고, 아버지의 둔감함이 있지만 어머니의 예민함도 있다. 하지만 두 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나’도 엄연히 존재한다. 왜냐하면 나는 부모님과 다른 인간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내가 형을 어려워한다는 건 알았지만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형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렸던 것은 몰랐다. 중학생인 내가 클래식 기타 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알았지만 기타 선생님에게 모성-좀 더 과장하면 애정-을 느끼고 있는 것은 몰랐다. 내가 동준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것은 알았지만 일 년 넘게 우울증에 시달렸던 것은 몰랐다.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부모들이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어두운 심연이 존재한다. 미국에서 야구를 하면서 우주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부모님이 나에 대해서 잘 몰랐던 것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우주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다. 우주가 야구를 좋아하고 잘하는 것은 알았지만 야구를 그만두면서 느꼈을 절망과 우울에 대해서는 몰랐다. 빛이 있는 곳에 그림자가 있다는 것,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가 더 짙게 드리운다는 단순한 진실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야구를 할 때 빛나던 기쁘고 행복한 순간들만을 생각했을 뿐 야구가 사라지고 난 후에 드리운 어둠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야구를 그만둔 후 우주는 걷잡을 수 없이 나빠졌다. 어제보다 더 나빠질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내일이 되면 항상 더 나쁜 일이 생겼다. 야구를 그만두면 공부를 조금이라도 할 줄 알았던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야구가 사라진 우주는 길 잃은 양이 아니라 황폐한 사막이었다. 우주는 집에 있는 내내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다. 어쩌다 들어가 보면 어두운 방 안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천장을 보며 누워 있었다. 그 시기에 우주의 눈에서는 허무와 분노가 막 벼린 날처럼 번득였다. 그건 특정한 대상을 향한 것은 아니었지만 학교라는 제도 안에서 끊임없이 충돌하며 문제를 일으켰다.
학교의 규칙을 깡그리 무시했고 통제하려는 선생님에게 분노를 터뜨렸다. 거의 매일같이 지각을 했고 선생님에게 욕을 하고 대들었다. 교권 보호 위원회를 열겠다고 한 선생님도 있었지만 다행히 경고를 하는 수준에서 끝났다. 친구와 주먹질을 하다가 뼈가 부러졌고 학폭위에 불려 다녔다. 지각을 할 때마다 벌점이 계속 쌓여서 선도위원회에 불려가는 일도 많아졌다. 당시 우주의 ‘한 학기’ 벌점이 75점이었다. 전 학년을 통틀어서 가장 높았다. 차라리 지각을 해서 학교에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게 다행인지도 몰랐다. 더 오랜 시간 있었다면 더 많은 그리고 더 심각한 충돌이 있었을 테니까. 그나마 그 와중에 위안이 되었던 것은 우주가 누군가를 괴롭혀서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에 가기 전보다 훨씬 더 나쁜 상황이었지만 우리는 그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우리가 택했던 ‘다른’ 방식이란, 정확하게 말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우주에게 화를 내지 않았고, 혼을 내지 않았고, 뭔가를 하지 말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런 모든 것들이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할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끔씩 생활 태도가 전혀 변하지 않는 우주를 보면서 양육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자책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내가 한국으로 돌아와서 우주에게 했던 몇 안 되는 잘한 일 중에 하나였다.
얼핏 보면 그건 이전에 내가 우주에게 보였던 무관심과 비슷했지만 조금 달랐다. 애정을 가지고 무관심해지기. 우주와 야구를 하면서 배운 것이었다. 닉과 마크의 아빠로부터, 그리고 옷세고 파크 관중석에 앉아서 응원을 하던 모든 부모들로부터. 나는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는 관중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우주가 뛰는 게임에 개입하지도 비난하지도 야유하지도 않고 애정을 가지고 묵묵히 지켜보는 관중, 그게 내가 바라는 부모의 모습이었다.
국문학과 대학원 수업 때 들은 이야기다. 심훈 소설을 읽는 수업이었는데 담당 강사가 차후에 심훈이 국문학 연구 분야의 블루칩이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계몽소설이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상록수>를 읽으면 새로운 게 보일 거라고 했다.
“<상록수>가 재밌었나요?”
“예.” 학생들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여전히 계몽소설로만 읽히나요?”
침묵.
“전 이 소설이 연애소설이라고 생각해요. 심훈이 <상록수>를 통해서 그리려고 한 건 ‘계몽’이 아니라 ‘연애’가 아니었을까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여전히 침묵.
“<상록수>에서 실제 연애를 하는 장면의 분량은 얼마 안 되지만 이 소설은 연애소설이 갖춰야 할 중요한 요소를 갖고 있어요. 그게 뭘까요?”
여전히 침묵. 강사가 학생들을 한 번 둘러보았다.
“기다림. 연애소설에서 사랑을 완성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죠.”
티볼트를 죽인 로미오는 만토바로 도망가서 줄리엣을 기다리고, 개츠비는 롱아일랜드 북쪽에 있는 그레이트 넥의 대저택에서 매일 파티를 하며 데이지를 기다리고, 채영신은 방화를 한 동생을 대신 해 감옥살이를 하는 박동혁을 기다리며 죽어간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기다림이라면. 아이들을 사랑할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랑한다면 기꺼이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2011년 겨울 우주와 함께 영화 <퍼펙트 게임>을 보러 갔다. 이 영화는 1987년 5월 16일 실제로 있었던 한국 프로야구의 전설적인 두 투수 선동열과 최동원의 맞대결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이 경기에서 선동열은 232개의 공을 던지면서 15이닝 동안 두 점을 실점했고 최동원은 209개의 공을 던지면서 두 점을 실점했다. 결과는 2:2 무승부. 단 한 명의 출루도 허용하지 않는 사전적 의미의 퍼펙트 게임이 아닌, 한국 프로 야구사에서 다시 재연되지 않을 완벽한 경기라는 의미에서의 퍼펙트 게임.
우리 가족들이 생각하는 퍼펙트 게임은 어떤 것일까. 우주가 언젠가 질문했을 때 내가 꼽은 퍼펙트 게임은 여름리그 결승전이었다. 우주는 상대 팀의 1번 타자만을 출루시키고 모든 타자를 삼진과 범타 처리하는 ‘딱 하나’가 부족한 퍼펙트 게임을 만들어 냈다. 아내는 비록 패하긴 했지만 인페르노스와 했던 가을리그 경기가 프로 선수들이 하는 경기와 비슷한 완벽한(퍼펙트) 게임이었다고 했다.
“우주야, 너는?”
“당연히 봄 리그 결승전이지.”
우주는 일 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나랑 아내도 즉각 고개를 끄덕였다.
진부한 얘기지만 야구는 인생과 비슷하다.
퍼펙트 게임, 노히트 노런, 무사사구 완봉승을 거두며 승리하는 것이 완벽한 승리이긴 하지만 그게 꼭 완벽한 야구가 되는 건 아니다. 반면에 올라오는 투수마다 계속 볼넷을 내주고 야수들이 여기저기서 실책을 남발하는 경기가 한심해 보이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야구에서 완벽함은 멋지기는 하지만 그게 야구가 주는 감동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야구에서도 인생에서도 때론 불완전함이 완전함을 압도한다. 봄 리그 결승전에서 우리는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지만 그건 우리 팀의 실력만으로 이뤄낸 것은 아니었다. 말린즈 투수들의 볼넷이나 야수들의 실책이 없었다면 도저히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우리 가족이 야구로부터 느꼈던 최고의 감동은 볼넷이나 실책과 같은 불완전함에서 나온 것이다. 아이들의 경기는, 그리고 아이들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더 감동적이다.
미국을 떠나면서 아쉬웠던 일 중에 하나는 가을리그를 끝까지 못한 것이다. 우주가 떠난 후 롱아일랜드 마린스는 전혀 다른 팀이 됐다. 우주가 있는 동안 마린스는 6승 1패를 기록했지만 우주가 떠난 후에 1승 3패를 기록했다. 마린스는 플레이오프 준결승에서 머로더스를 다시 만났지만 1:9로 완패했다. 머로더스는 결승에서 컨텐더스를 이기고 올라온 인페르노스에게 패했고, 결국 인페르노스가 우승했다. 피카렐라가 이메일에 썼던 것처럼 우주가 있었다면, 결과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아마도 머로더스가 아닌 우리 팀이 결승에서 인페르노스와 멋진 리턴 매치를 하지 않았을까. 또 한 번의 퍼펙트 게임. 하지만 가정은 가정일 뿐. 가을리그를 마치지 못했기 때문에 그때가 더욱 그립다.
다시 한 번, 야구는 인생과 비슷하다.
야구에서 승리만 하는 건 불가능하다. 중요한 건, 심지어 그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야구에서 패배의 의미가 단지 승리의 반대말로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2015년 프리미어 12에서 우승을 일궈낸 김인식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좋은 감독은 수많은 패배를 통해서 만들어진다고 했다. 어쩌면 이거야말로 야구와 인생이 가장 비슷한 부분이 아닐까. 인생에서도 배움이란 결국 실패의 기록이니까. 6할의 승률과 위닝시리즈를 떠올려 보라. 여섯 번을 꾸준히 승리하기 위해서 꾸준히 네 번을 패할 수 있어야 하고, 두 번을 꾸준히 이기기 위해서 꾸준히 한 번을 패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야구라는 스포츠다. 이보다 더 패배가 절실한 스포츠가 있을까.
태풍 샌디가 상륙해서 멜빌을 휩쓸고 간 다음 날, 집 근처 여기저기에서 커다란 나무들이 쓰러져 있는 걸 보았다. 전날 불었던 태풍이 강력하긴 했지만 엄청나게 큰 나무들이 저렇게나 쉽게 쓰러지는 것은 좀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교회에서 목사님께 여쭤보니 이 동네에 심어진 나무들은 땅이 너무 비옥해서 뿌리를 얕게 내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주는 그날 이후로 완전히 야구를 접었다. 야구를 그만두는 시기에 찾아왔던 어둠은 사춘기라는 태풍과 함께 우주를 휩쓸고 다녔지만 나와 아내는 그 혼란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아들을 도와줄 수 없었다. 우리는 우주가 겪고 있는 혼란을 늦게나마 알게 됐지만 우리가 우주라는 나무의 뿌리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건 온전히 우주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우린 옆에서 가슴 졸이며 그걸 지켜볼 수만 있을 뿐. 다행히도 우주는 멜빌의 나무들처럼 쓰러지지 않았고 어둠을 견디고 태풍에 버티면서, 황하의 용문을 힘겹게 거슬러 올라가는 잉어들처럼, 동굴에 갇힌 공주를 구하기 위해서 거대한 용과 위태롭게 싸우는 기사처럼 조금씩 최악의 시기를 벗어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우주가 이 시기를 잘 극복하길, 부디 땅 속 깊숙이 튼튼한 뿌리를 내리길 조심스럽게 기다리고 있다.
가끔 우주가 야구를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하곤 한다. 더 나아가 만약 내셔널즈 선수가 아니었다면, 봄 리그를 우승하지 않았다면, 야구 선수가 되고 싶어 하지 않았다면, 과 같은 ‘만약’으로 시작하는 문장들을 떠올려 본다. 그 모든 ‘만약’들은 야구도 내셔널즈도 우승도 사라져버린 시공(時空)으로 나를 데려간다. 그곳에는 태풍도, 어둠도, 실패도 없다. 하지만 관중도, 서비스 로드도, 퍼펙트 게임도 없다. 그곳에서 나는 기다림이 아닌 무관심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고, 아이들 마음속의 어둠과 태풍을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영원히, 영원히.
다행스럽게도 그런 ‘만약’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의 야구가 우리에게 주었던 많은 것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와 아내는 꽤 오랫동안 그 많은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다, 시간으로부터, 망각으로부터, 그리고 현실의 굴레로부터. 그러나 이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우리의 걱정과는 달리 그 많은 것들이 오히려 우리 가족을 오래전부터 지켜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요즘 우주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위기를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지극히 우주다운 방법으로.
일주일 전에 아내는 교복을 가져 와 달라는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교복을 챙겨서 학교로 갔다.
“어떻게 오셨나요?” 정문에서 수위 아저씨가 물었다.
“아이가 교복을 안 가지고 가서요.”
“주세요. 전달해드릴게요” 아저씨가 교복을 받고 이름표를 확인했다.
“우주 어머님이세요?” 불안하다. 이미 우주가 누군지 알고 계신 듯.
“아. 네.” 아내는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왜 우주를 알고 계실까.
“우주, 공 잘 차는 우주, 맞죠?” 아! 축구.
우주는 학년이 올라가면서 매일 아침 7시에 등교해서 축구 연습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학교 축구부 최전방 공격수로 구청장배와 교육감배 대회에 참가했다. 우주의 학교는 구청장배 토너먼트에서 2승을 거두고 8강에 올라갔지만 강력한 우승 후보와 맞붙어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석패했다. 우주의 중학교가 토너먼트에서 2승을 거둔 것은 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한다. 우주가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축구 경기를 보러 간 적은 없다. 아침에 차로 데려다줄 때 우주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테니스, 야구에 이어 또다시 적당히 잘할 수 있는 운동을 찾은 모양이다.
우주는 매일 아침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차며 어둠과 태풍을 견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