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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오즈 Feb 23. 2022

가혹한 삶의 시작

고등학교 02 |  입학시험이 내 미래를 보여주었다

     입학시험이 다가왔다. 25명이 4열 종대로 앉아있는 교실은 역시, 고요했다. 어색한 기운에 교실 밖으로 나와 더 낯선 복도를 걸으면서 다른 반의 상황을 보았다. 우리 반을 제외한 모든 반이 왁자지껄, 거의 파티 분위기였다. 복장이 드레스와 슈트로 바꾸고, 손에는 와인잔만 들고 있으면 분명 이는 미국 고등학생들의 프롬 파티였다. 이런 축제 분위기에서도 여전히 수줍기만 한 우리 반 친구들과 3년간 같은 반을 써야 한다는 거지. 하하, 험난한 기운 가득이다.


    그렇게 입학시험 내도록 인사한 동급생이라고는 동명이인과, 같은 영어학원을 나온 친구뿐. 나머지는 이름조차 모르는 상황으로 시험을 치렀고, 시험이 끝나자마자 교실은 누가 쫓아올 기세로 성급하게 비워졌다.


    시험 후기를 짧게 이야기하자면, '엥'이었다. 영어를 제외한 과목의 난이도가 예상보다 낮아 어색할 정도였다. 중학교 3학년 수준이었으며, 이걸 대비한다고 수능 모의고사를 풀어온 과거의 내가 무색할 정도였다.


    근데, 영어는 달랐다. '영어, 미쳤나 진짜'하는 낯선 목소리 사이에서 나는 '와 이럴 줄 알았는데, 진짜 이럴 줄은 몰랐다'라고 중얼거렸다. 영어시험으로 작년 수능 문제가 출제된 것이었다. 놀랍게도 시험 전날에 독서실에서 수능 영어를 풀었던 나는 운 좋게 똑같은 문제를 또 푸는 호사를 누렸다. 





   대략 3주 뒤 2월. 2차 입학시험 겸 오리엔테이션이 이틀 동안 진행되었다. 침구류, 욕실용품, 필기구 등으로 두 손 가득 등교했다. 처음 룸메이트를 만나고선 인사를 나눴고, 말 한마디 없이 아침이 밝았다. 서로 어색함에 잠을 깊게 자지 못했다. 그리고 그 아침부터 지옥이 시작되었다.


    이 학교는 아침 6시에 기상하도록 하였는데, 기상하라는 일반적인 문구가 아닌, 재학생들이 신청한 노래 여러 곡을 20분 정도 틀어주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기숙사에서의 첫 기상, 첫 기상송으로 우리는 지난주 '불후의 명곡' 김현식 편에 나온 가수 정동하의 '내 사랑 내 곁에'를 접했다. 내 침대는 2층 침대였고, 내 머리 위 천장에 스피커가 있었다. 정동하 님의 노래는 '내 사랑 그대'라는 하이라이트 부분으로 시작한다. 예고라도 해주지. 갑작스러운 고음 공격으로 심장마비 직전의 몸 상태로 비틀거리며 2층 침대를 내려왔다. (이 상황은 전교생의 뇌리에 박혀 졸업식 때 모두가 '내 사랑 내 곁에'를 떼창 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이후 입학생의 오리엔테이션 첫 기상송으로 이 노래를 선정하는 관례가 생겼다. '어디 외고의 화끈한 맛을 봐라!')


    어색하게 아침을 먹은 후 두 번째 입학시험을 치르면서도 나는 이 성적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상조차 못했다. 그래도 복도에서 지나가며 얼굴을 익힌 친구들에게 물었으나 그 누구도 시험을 치는 이유를 몰랐다. 이미 합격은 결정되었고, 언어별로 학급도 이미 정해져 있는 상황이었다. 선생님들은 이 시험의 진행 이유도 안 알려주셨지만 우리는 고분고분하게 온갖 시험과 과제를 풀었다.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서.




    이는 입학식 당일 밝혀졌다. 입학시험의 점수로 학생들 간의 등수가 정해진 것이다. 1등은 입학식 당일 장학금을 받았고, 2등은 <신입생의 다짐>과 비슷한, 사실 누가 이걸 졸업할 때까지 기억할까 싶은 것을 낭송했다. 아, 물론 나는 1등도, 2등도 아니었다. 아니 바라지도 않았다. 첫 시험이니까 그냥 딱 중간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입학식 직후 부모님과 인사를 한 뒤 교실로 돌아온 우리 앞에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입학시험의 여파가 있었다.

    이상한 칸들이 있는 종이 두 장이 칠판 한가운데에 붙여져 있었다. 웅성웅성하는 친구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기에는 자신이 없어서 교실 뒤에 서서 친구들이 자리를 뜨기를 한참 동안 기다렸다. 그러자 뒷문으로 누가 들어와 내 어깨를 두드렸다.


    - 어, 안녕! 너 내 옆자리더라!


    누군가 했는데, 외고 면접 후 대기실에서 만난 영어과 친구였다. 옆자리? 무슨 소리인지 묻자, 저 종이가 학습실 배정표라고 했다. 한 장은 6층 학습실, 한 장은 1층 학습실 배정표이며, 입학 성적이 높은 순대로 40명은 6층 학습실, '나머지'는 1층 학습실에 배정되었다고 했다.


    공교육의 노예였던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친구에게 내가 몇 층 학습실에 배정되었냐고 물었다.


    1층 학습실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아, 절반 등수의 성적도 안된 건가, 하는 생각에 낙담하려는 찰나. 그 친구가 다시 말을 건다. 마침 자신도 선생님께 1층 학습실 배정 순서가 등수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며 자신이 대략 45등 정도 했으니, 나는 46등 정도 했을 거라고 했다. '오, 대박'하며 서로 하이파이브까지 작렬하던 나는 그대로 멈췄다.


    '입학 성적 등수가 저렇게 그대로 공개가 되었다고?'


    당시는 2016년. 3년 전인 2013년에 방영된 드라마 <상속자들>에는 시험 성적 등수를 게시판에 공개하는 장면이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가 아니기에, '에이 저건 심했다'라고 입 모아 비판하던 장면이 그토록 실낱 하게 내 눈앞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친구들이 저렇게 오랫동안 칠판 앞을 떠나지 않는 이유. 자신의 자리를 찾았음에도 종이에서 눈을 떼지 않는 이유는 나 또한 잘 알고 있다. 여기서 내 학습실 위치보다 '내 뒤에 몇 명이 있는지'를 세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 고등학생이 된 첫날부터 우리는 본능적으로 하이파이브나 하면서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낯선 정신이 몸 가득히 휩쓸고 있는 와중, 많은 친구들이 우르르 학습실로 이동하느라 교실 앞이 한적해졌다. 물론 나는 몇 층인지는 아니까 6층 학습실 배정표에는 시선을 주지 않은 채로 1층 학습실 배정표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대략 135명의 인원이 1층 학습실에 배정되었으니, 글자 크기는 매우 작았고 종이에 코 닿을 거리만큼 유심히 봐야 이름이 보였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진다. 같은 반에 동명이인이 있었기에 이번 입학생 전체 명단에서는 내 이름을 두 번 발견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근데, 3명이었다. 같은 학년에 나랑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우리 반 말고도 또 한 명 더 있었고, 그중 두 사람만 1층 학습실에 배정받았다. 그럼, 나머지 한 사람은?


    동명이인이 3명이나 있다는 생각에 머리가 지끈 해지는 상황에서 나는 아까 하이파이브를 했던 친구 이름을 찾는 게 더 빠르겠다고 생각한다. 등수별로 배정했다는 친구의 말대로 친구는 앞에서 5번째 자리에 있었다. 그 옆자리에는 맞다.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내 학번이 아니었다.


    설마, 하는 마음에 제쳐두고 있었던 6층 학습실 종이를 바라본다. 40명의 이름이 적힌 배정표를 읽으며 내 이름을 찾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그렇다. 그 종이에 내 학번이 적혀 있었다.


    최소 40등. 운동만 하던 내가 고등학교에서 40등 안? 픽션 소설 속 주인공의 상황이 펼쳐졌다. 놀라서 쿵쾅거리는 심장과 묵직한 가방을 부여잡고, 그렇게 나는 대략 3개월간 6층 학습실에서 공부하는 호사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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