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03 | 학습실 위치가 학생의 '훌륭함'을 증명했다
최상위권 대학에 가면 좋은 게 뭔지 아나요? 취업이 잘된다? 아닙니다.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처음 보는 사람이 최상위권 대학에 다니는 학생을 보았을 때 아주 기초적인 능력을 굳이 증명하라고 요구할 필요가 없죠. 대학 수준이 학생의 훌륭함을 대신 말해주거든요.
(유명 인터넷 강의 강사의 말 중)
3개월이었다. 고등학교 재학 기간은 대략 3년.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모두 1층 학습실에 배정된다는 사실을 제외해도 대략 2년이라는 시간과는 8배 차이가 난다. 고작 1학년 1학기가 끝난 여름방학. 그 어느 날, 나는 6층 학습실을 떠나야만 했다.
처음에는 내가 공부한 정도가 고등학교 학업에 적당하다고 생각했고, 이는 과도한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시기는 1학년 1학기 중간고사였으며, 그토록 원했던 중간 등수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의 성적을 받자 '사실 6층 학습실 배정은 운이었다'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좌절은 끝을 보이지 않은 채로 1학년 1학기의 끝까지 이어졌고, 1학년 1학기 성적을 토대로 학습실 재배치가 이루어지자 나는 자연스레 1층 학습실로 향했다.
그때의 심정은 따로 말할 수 없다. 물론 이미 지역에서 공부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모인 학교이기에 1층 학습실과 6층 학습실의 학업 분위기는 크게 차이가 없었다. 그럼에도 성인이 된 지 3년이 지난 지금 그 당시의 상황에 직면한다면 과연 내가 좌절하지 않고 당당하게 행동할 수 있었을지 생각하게 된다. 17살 청소년이 겪기에는 꽤 가혹했다.
학습실 위치는 학교라는 새롭고 좁은 사회에서의 관계 맺음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학습실 위치가 곧 학생으로서의 '훌륭함' 정도를 의미했고, 전자기기 없는 학교에서 친구와의 소통 수단으로 유일했던 쪽지 공유를 하기 위해서 쉬는 시간에 1층과 6층을 오가는 일이 벌어졌다. 1학년 1학기. 친한 친구 하나 없는 곳에서 단짝 친구를 사귀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조금은 친해지는 듯했던 친구는 6층 학습실, 나는 1층 학습실에 있게 되면서 점점 거리가 멀어졌다. 노력해도 낮아지는 성적에 예민해지던 나는 매일 아침 기숙사 화장실에서 '빨리 이 고통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결국 1학년 2학기 말, 같이 다니던 친구가 다른 친구와 잘 다니는 것을 본 나는 그대로 혼자가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중간고사마저 성적이 그대로인 것을 확인한 날. 내 학습실 책상에는 '나는 멍청하다'라고 적은 포스트잇이 붙었다. 물론 자의적이었다. 이상하게 둥둥 떠다니는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아예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까지 진위를 판별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때부터 나는 나를 믿지 못했다. 그 후로 3년까지도.
외고가 언어를 배우기 위한 학교다? 그 생각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머릿속에서 증발했으며 외국어가 아닌 숫자에 더 집착하는 삶 속에서 우리는 대입 전쟁에 참전했다. 정말 목숨을 건 3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