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 의자를 기억하십니까?

추억과 소꿉놀이

by 아이리스 H

날씨가 무척 추웠던 겨울날


손과 발이 꽁꽁

방바닥의 아랫목 윗목 온도가

달랐던 70년대 ~를 추억해 봅니다.

충청도 시골에는 지금의 아파트나 주택처럼

목욕시설이 좋지 않았답니다.


동네마다 한 두 개뿐인 목욕탕은

늘 가는 날이 장날.

사람들의 발길이 많았습니다.

매표소에서 종이표를 들고 입장하면

번호표에 따라 열쇠를 받고

옷을 벗습니다.


작은 수건 한 장으로 온몸을 길게

가리고 목욕탕으로 입장합니다.

작은 다라? 큰다라? 하나씩 챙기고

하나는 물을 옮겨 담는 거 조금 큰 것은

물을 받아 사용하는 것으로 따뜻한 물을 퍼서

날라야 했으니 엄마는 내 것과 언니 것에

물을 담아줍니다.


낑낑 작은 힘으로 물을 옮겨봅니다.

땀인지? 물인지? 이마에 줄줄 흐릅니다.

긴 머리는 바짝 묶어 올리고

열심히 때를 밀기 위해 준비 완료 합니다.


동그랗거나 네모모양 플라스틱 의자도 하나

챙겨서 커다란 욕조 앞에 홀딱 벗고 도란도란

둘러앉아 목욕을 시작합니다. 물을 살짝 끼얹고

커다란 욕조 안으로 풍덩 들어가 때를 불립니다.


뜨겁습니다.

진짜 그런데 엄마는 안 뜨겁다며

"언능 들어와라 "

"후딱후딱 씻고 가야지~"

때를 불려야 한다며 한사코 욕조 안으로

엄마 말은 도무지 믿기 어렵지만 언니를 따라

애써 침착한 듯 물속으로 들어갑니다.


"오메 뜨거운 거 ~~" 100만 세고 나올 거라며

손가락을 펴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열 번을 조용히 외칩니다. 미소를 지으며

접은 손가락을 보여줍니다.

엄마는 눈을 감고 머리를 흔듭니다.

"아니 아니 아직 아니여 ~아직"

그때 그 시간은 왜 이리 길었는지?


잠시 후,

엄마는 빨간 때수건(이태리타월)을 들고

등짝부터 엉덩이 다시 앞쪽 팔다리 배꼽

그 아래까지 어쩌나 꼼꼼하게 훑고

지나가시는지?

무릎 뒤쪽 발꿈치 복숭아뼈아래

발가락 사이사이 팔꿈치 겨드랑이까지

때를 벗겨냅니다. 뻘뻘 땀을 흘리시면서요

내가 미운짓을 많이 했나?


"엄마 아파요 아파~~"

몸을 요리조리 꼬고 비틀어도 소용없습니다.

날 잡았다니까요 빨갛게 빨갛게 내 몸도

이태리타월처럼 변하고 나면 목욕이

깨끗하게 끝납니다.


탕 밖으로 나오니 "오메~~ 좋은 거"


아버지와 아들 둘, 엄마와 딸 둘

그러니까 남자 셋 여자 셋은 나란히

겨울나들이를 목욕탕에서 따로따로

즐긴 후, 볼 빨간 아이들 넷을

데리고 짜장면집으로 출동합니다.

그 시절이 추억의 저장고속에서

꿈틀거립니다.






과거여행 잘하셨나요?


현재 여기 베트남은 더운 나라입니다.

1월과 2월 사이 춥고 습한 날씨를 빼고

다 덥습니다. 샤워를 하루에도여러번 합니다.

스파 맛사가 있지만 공중목욕탕은 없습니다.

7년 차 하노이 생활하며 한 번도 본적도 간 적도

없으니 말입니다.


공중목욕탕은 없는 걸로 탕탕!!

아니, 그런데 목욕탕의자가 길가에 많다?

오잉? 이게 무슨 일입니까? 설마 설마...

부끄럽게 목욕을 밖에서 하는 건가요?

비가 올 때? ㅎㅎ


놀라지 마세요.

카페든 식당이든 작은 가게 앞에

삼삼오오 커피를 마시거나 쌀국수를 먹거나

해바라기씨를 먹을 때 그 의자에 앉는답니다.


목욕탕 의자요 ㅎㅎ진짜입니다.

목욕탕은 없고, 목욕탕의자만 있는 나라

그것도 많이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타국살이 7년 차 우리는 목욕탕 의자와 플라스틱

상을 점심때 공장직원들에게 그리고 우리도

애용하는 식탁입니다. 가볍고 편리하며 쌓아두기

좋습니다. 처음엔 놀랐고 지금은 즐깁니다.


남편 따라 벳남여인이 다 되었습니다.

하노이 집에는 4인용 식탁이 두 개나 있는데...

이곳 타이빈 공장에는 유일하게 목욕탕 의자와

밥상이 하하하 우리의 소꿉놀이 식탁입니다.


어떠신가요? 탐나시나요?

소꿉놀이 식탁

남편이 오늘 요리를 합니다.

직원들이 퇴근을 하고 둘만의 저녁입니다.

한국식당도 벳남식당도 다

패스하고 여기서 집밥 소꿉놀이를 합니다.


설마, 아이리스 작가님은 뭘 하실까요?

글을 읽고 글을 씁니다 (핑계)

신김치에 된장 풀고 두부 넣고

캠핑찌개도 끓였고요

두부 전도 곱게 부쳐두고 김도 김치도

나름 밥 한 끼를 소박하게 차려줍니다.


회사 사무실에서 소꿉놀이 해봅니다.

자세히 보시면 웃음천국입니다.


간장종지 없어서 그릇에 부었고요

김치도 통째로 사 왔고요

호박전은 태웠고요

찌개는 다시다 맛이에요 하하하

그래도 감사합니다. 이제는 남편건강이 좋아져

밥상도 차리고 웃음을 주네요.


목욕탕의자에 앉아서 둘이서 소꿉놀이를

하는 우리는 30년 차 부부 맞습니다.

고생은 함께해야 반으로 줄더라고요

"고마운 당신,

여기서 시방 뭐 하고 있는겨?"

" 당신에게 밥 한 끼 차려주는 게 행복이야 "

현대판 소꿉놀이는 남자가 밥을 차립니다.

70년대도 아니고 2000년대에

베트남 시골 타이빈에서 한국부부가

목욕탕 의자에서 저녁식사를 한다고요?

아이고 이거 이거 눈물 나는 다큐멘터리

찍겠다고 귀한 분들 오실까 봐 공개 안 하려고

했는데... 돈 벌겠다고 타국땅 와서 고생고생

생고생하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추억을 소환시켜 준

목욕탕 의자에서 행복을 낚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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