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단에서 만난 그녀

전화번호를 공유했다.

by 아이리스 H

모닝콜이 울렸다.


알람을 끄고 한참이나

침대 속에서 핸드폰을 만지작 거린다.

오늘 스케줄을 살핀다.

중요한 오전논술수업 10시 30분~

딱히 부지런 떨기 싫은 날이다.


이불속에서 게으름의 사치를 부려본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이상해?

'어라! 핸드폰 와이파이가 안 된다.'

카톡에 비행기가 떴다. (소통 안됨)

시원한 에어컨이 멈췄다.(으휴 덥다)

집안에 불빛이 사라졌다.(어둠 침침)


무슨 일이지? 이불 킥을 하고 일어났다.


두리번두리번 이곳저곳을 살핀다.

스윗치도 눌러본다. 반응이 없다.

'에구 전기가 나갔네~~ 정전인가?'

전기세를 안 낸나? 남편에게 전화를 한다.

(전기세를 하루라도 밀리면 전기차단됨)


통역사를 통해 알아본다. 답답하다.

오늘 8시부터 3시까지 전기검사가 있어서

정전이란다. 방송을 했다는데... 못 들었다.

집안에 가전이 단체로 휴무에 들어갔다.

밥통에 밥을 할 수도 없고...

햇반을 돌려 먹을 수도 없고...

커피포트에 물을 끓일 수도 없다.


'에구야~ 비상사태다.'


다행히 수돗물은 나오니 씻을 수는 있다

커튼을 열고 비치는 햇살에 화장을 했다.

집을 빠져나가야 한다. 탈출 각이다.

배가 고프다. 우유에 죠리퐁을 타먹었다.


대문을 열고 엘베를 확인하니

깜깜 하다. 오! 마이 갓~~~

베트남 하노이에서 처음 겪는 일이다.

30층에서 비상계단을 이용하여 1층까지

내려가려니 현기증이 난다.


어떡해? 정말?


10층쯤에서 살았어야 했나?

선풍기도 에어컨도 멈춘 지 2시간이 넘었다.

시원한 물도 냉장고에서 미지근 해졌다.

내려갈 생각에 이미 식은땀에 겁이 났다.


어쩌면 10시부터 엘베가 될 수도 있다고?

남편이 전화를 해주었다. 제발 제발...

기다렸건만 암흑이다. 이미 10시 5분이다.

안 되겠다. 이러다 늦겠는걸...

30층에서 1층까지 걸어 내려가기로 했다.


일단 물 한 모금 마시고 릴랙스~~


갱년기에 몸상태도 별로인데...

비상계단으로 내려가 수업을 해야 하는 상황

수업 준비물이 있어서 책가방은 무거웠다.

"여보 혹시 내가 ...1층 가서 생존 신고 할게."

"그래 꼭 전화해 줘~~" 후들후들...

비상구

비상계단 문을 처음 열어본다.

잡아당겨도 안되고... 밀어도 안되고...

어떻게 여는 걸까? 서성거리다 겨우 찾았다.

앞부분을 눌러서 여는 거였다. 아휴~~

2년 차인데 비상 탈출은 처음이다.


두근두근 철컹! 열렸다.


어라 또 하나의 문이 더 있다.

조마조마 철컹! 또 열었다.

드디어 숨어 있던 비상계단이 보였다.

내려가기 전! 단단히 심호흡을 한다.


아무도 없다. 다른 사람들은

다 볼일이 없나 보다? 하나, 둘 , 셋, 넷...

한 발 한 발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간다.


22층에서 멈췄다.


왜? 헉헉헉... 헥헥헥

내가 좋아하는 숫자를 22를 보니 힘이 났다.

그 와중에 인증숏을 남겨본다. 찰칵!

잠시 숨 고르기를 하고 다시 내려간다.


비상계단 에서 (2023년 7월 13일 )


완전 운동 부족에 저질 체력 인정하며 땀 찔찔

반만 내려가보자 15층까지만... 어쩌면 엘베가

작동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비상계단 탈출을 시도했다. 역시나

아직 엘베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잘 내려갈 수 있을까? 15층이다.


다시 비상계단문을 꾹 눌러서 철컹철컹 열고

들어서는 순간 위층에서 내려오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둘 뿐이다.


혹시 한국분이세요? 네


그녀는 골프채를 메고 내려오고 있다.

어머나? 세상에...

극기 훈련이 따로 없는 이 상황에 동행자를 만났다.

그녀가 뒤에서 따라오니 두근거리던 심장도 마음도

제자리를 찾아 편안해졌다.


아이고? 뭔 일이래요?


처음 보는 사이지만 해외에서 한국분을

이런 상황에서 만나고 보니....

쓸데없이 반갑다. 어이없어 웃는다.

오르고 내려가고 두 세분을 더 만났다.

하지만 다 외국인이었다.


조금만 더 헥헥... 힘을 내야 한다.

온몸에서 땀이 흐른다.

다리가 후들후들 발바닥도 땀이 났다.

드디어 1층에 도착했다.

땀범벅으로 택시를 부르고 기다리는 동안


15층부터 함께 내려온 그녀에게 핸드폰을

내밀며 번호를 공유하자 말했다. 벼랑 끝에서

우연히 만난 인연을 어찌 그냥 보낼 수 있으랴

지금은 내가 바쁘니... 내일이라도 차 한잔

하자며 말을 건넸다.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수업 시간 10분 늦게 도착하여 허둥거렸지만

아아들과의 수업은 잘 마무리했다.




고생 끝, 통증 시작!


30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다 15층 비상계단에서

우연히 함께한 그녀를 다음날 골프 연습장에서

다시 만났다. 그냥 고맙고 감사했던 순간을

연양갱과 옥수수수염차를 건넸다.


밤새 허리며 다리며 허벅지 종아리 발목까지

아프기 시작했는데... 골프 연습장은 만남을

갖기 위한 핑계였고, 우리는 끙끙 거리며

100개의 공을 땀나게 치며 회포를 풀었다.


동병상련?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의 마음을

잘 안다는 고사성어가 어울리려나?

한국을 떠나온 이방인으로서의 삶

그리움병

자식을 키우고 애쓰며 부모로서의 삶

근심 걱정 병


어쩌다 보니 통하는 게 많은 50대였다.

주거니 받거니 말도 잘 통했다.

다만 딸하나 키운 엄마였고

40대라고 해도 믿을 만큼 젊어 보였다.(진심)


우연은 인연으로~


어쩌다 우리는 이곳 비상계단에서

고생을 함께하고 아픔을 나누며 우연이

인연이 되어 함께 차를 마시고 있는 걸까?

길게만 느껴졌던 비상계단에서 만난 그녀도

나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살면서 깨달아 알게 되는 일들이 많다.

내가 보넨 메시지에... 그녀의 답장이다.


어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자신을 다독이며

긍정적이고 좋은 생각을 하면

안 좋은 일도 훈훈하고 아름답게

잘 마무리됨을 삶 속에서 배우게 된다.


7월, 물폭탄으로 힘든 한국

애틋하고 짠한 소식들을 베트남에서

뉴스로 접하게 되었다.

폭우에 휩쓸려간 개가 27시간 만에

주인 곁으로 돌아온 것처럼 폭우로 실종된 자들이

무사히 가족 곁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정전으로 힘든 베트남 하노이

폭염 속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교민들

그리고 가족들 모두가 편안하고

안전하기를 바란다. 어떠한 역경에서도

쉽게 꺾이지 않는 한국인들의 삶을

응원합니다.


그녀와 시원한 아이스 라테 한잔을 마시며

땀났던 그날 비상계단에서의 만남을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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