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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h Sep 23. 2023

오래된 추억의 비빔밥

하노이에서... 비빔밥을 마주하다.

따라라라라라라라~~ 쉬는 시간을 알리며

4교시 공부가 끝나는 벨이 울렸다.

"아 ~~~ 드디어! 점심시간이다."

우당탕탕 책을 덮고, 공책과  필기구를  

책상 서랍 안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는다.


정신이 바짝 든다. 배가 등가죽에 붙었다.


꼬르륵... 꼬르륵 소리에도 정신없이 책상을

붙여 네모진 식탁을 만들었다.

"친구야 이쪽으로... 자자 빨리빨리..."

각자 싸 온 도시락통을 여느라 바쁘다 바빠

오늘은 우리들만의 비빔밥 데이 ~~


비빔밥 도시락을 만들어 먹었다. 어떻게?


여고시절 쑤우웅~~~

타임머쉰을 타고 과거로의 여행은 벌써 즐겁다.

네모난 도시락 말고 보온밥통 도시락이 나오던

시절에 충청도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차가운 양은 도시락 대신에 보온이 좀 되는

뜨거운 밥통 위에 국통이 있고, 

 위에 반찬통이 있는  (보온 도시락) 말이다.


계란프라이, 멸치볶음, 어묵볶음, 콩나물볶음

계란말이, 무생채, 시금치나물등... 

엄마의 손을 거쳐 도시락 통에 담겼다.

가끔 생선구이 반쪽? 장조림? 김치...

도시락은 무겁지만 행복했다.


등굣길 친구들을 만나 하하 호호

"오늘 도시락 반찬은 뭐야? "

공부는 뒷전이고 도시락 까먹을 생각에

학교 가는 길이 즐거웠다.

도시락은 그때 그 시절 친구들과 한 끼를

야무지게 챙겼던 나의 밥줄이었다.


한 친구가

늦둥이 동생이 다 먹는 분유통을 들고 왔다.

각자의 도시락을 쏟아붓고 키쉐키 흔들어

명품 비빔밥을 만들었다.


'빨... 리 먹고 싶다. 비빔 도시락~'


'빨... 리 먹고 싶다. 비빔 도시락~'


위생관념 제로였던 시절

단발머리 소녀들은 머리를 맞대고

분유통에 들어있는 비빔밥을 사수하느라

숟가락을 들고 경쟁하듯 퍼 먹었다.

그 맛이 기억의 저편에서 아스라이 떠올랐다.


우정을 한 스푼 넣어서인지 꿀맛이었다.


친구의 소시지도... 고기반찬도 이리저리

섞여서 감칠맛이 났다. 어느새 분유통 안에

비빔밥은 바닥을 보였고, 등짝에 붙어있던

배가 봉긋이 나왔다. 속이 채워지고 다시

책상을 정비하고 나니... 아쉽게


점심시간이... 끝났다.


창가에 따스한 햇살을 친구 삼아 꾸벅꾸벅...

5교시 시작종이 쪽잠을 깨운다. 아휴~~~

영어도 수학도 아닌 불어시간 (프랑스어)

블라블라 불라 ㅎㅎ 비빔밥에 수면제를

넣은 듯 자꾸만 감겨오는 눈을 어찌할까?


입시를 앞두고 서로의 경쟁자가 아닌

비빔밥을 나눠먹고 모르는 문제를 머리 맞대고

고민하여 가르쳐 주었던 의리의 학창 시절

그때 그 시절 친구들은

오늘 뭘 먹을까?

늦둥이 동생의 빈 분유통에 도시락 비빔밥을

먹던 친구들이 보고 싶다.




오른쪽으로 비비고,

왼쪽으로 비비고


고추장만 있어도 밥을 먹을 수 있었고

계란프라이에 간장 비빔밥으로도 배고픔을

달랠 수 있었던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시절

볶음김치 하나 만으로도 쓱쓱 밥을 비벼 먹었고

간장게장 게딱지에 밥을 비벼 먹었던 기억이다.


김치찌개 국물에 밥을 비비고

된장찌개 국물에 밥을 비벼서

똑똑 알밥이 입안에서 지는 비빔밥

갈비찜 국물에도 비벼 먹고... 지금도


비벼먹기를 참 좋아하는 나는 한국인이다.


양푼이에 잘 익은 열무김치 국물 넣고

쓱쓱 비벼 볼이 빵빵 해지게 한입 먹으면

세상에 부러울 게 없었다.

신김치 쏭 썰어 프라이팬에 볶은 후에

계란하나 깨트려 비벼 먹으면

혀끝을 감도는 신맛에 허기를 달랬다.


학창 시절 영어선생님이 말했다.

영어공부 열심히 해서 미쿡 가게되면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은 비빔밥이라고...

여기는 베트남 하노이다.

며칠 전 교회 모임을 갔다가 찬양과 말씀

기도와 삶의 나눔 후에 비빔밥을 먹게 되었다. 


삼삼 오오 모여서 비빔밥을 먹으며 분유통에

비벼먹던 여고시절 도시락이 떠올랐고 이제는

아줌마가 되어 함께 먹는 비빔밥을 감사하게

마주 하게 되었다. 역시 한국인은 밥심이다.

수고해 주신 손길에 고마움을 전한다.

하노이 한인교회 내 구역장 모임

밥도 아직 안 넣었는데 이미 푸짐하다.

콩나물국과 시원한 얼갈이 물김치를

곁들여 든든히 배를 채우고 돌아왔다.


"이 정도는 먹어줘야 한쿡사람 이지..."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너무 애쓰지 말고

가족끼리 비빔밥 한 그릇 고추장에 쓱쓱

비벼 먹으면 어떨까? 행복은 너무

크고 거창 하지 않아도 소박한 한 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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