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함 속에서도 살아 있음에 감사
아들이 집으로 내려온 후, 부엌의 모든 기구들이 본연의 일을 매일매일 해내느라 분주하다. 6인분 밥솥은 매일 콧등으로 김을 품어내고, 꽂이에 꽂혀 휴가를 즐기던 프라이팬도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내느라 쉴 틈이 없다. 세탁기는 하루에 두 번 이상 일할 때도 있고 음식물 쓰레기통은 이틀이 멀다하고 집 앞 전봇대 앞에서 비워지길 기다린다. 냉장고는 날마다 들여오는 식자재로 꽉 차서 여름이 더 덥다고 투덜거린다.
'미녀와 야수' 영화에서 처럼 모든 주방 기구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옥수수로 만든 수세미들이 다양한 투정들을 레몬향 세제로 깨끗이 씻어내고, 한낮의 뜨거운 태양은 행주들의 흐르는 땀을 말려주어서 좋다.
부부 둘 만 지낼 땐 저녁을 직장에서 해결하고 오거나 가볍게 외식으로 대체하다 보니 부엌에 있는 모든 기구들은 주말에야 잠시 일을 하게 된다. 큰맘 먹고 반찬을 해두면 다 먹기도 전에 상해서 버려야 했고 음식물 쓰레기통은 너무 오래 둘 수 없어서 다 채우지도 못하고 비우기 위해 내놓아야 할 때도 있었다.
식구 한 명 늘었을 뿐인데 주방은 생기가 돌고 집 안 분위기에 사람 사는 기운이 넘친다. 저녁밥을 짓고 있는 밥솥에 김이 나오고 있다. 따뜻하고 고슬고슬한 밥을 먹이기 위해 조금씩 자주 밥을 하다 보니 밥통도 날마다 깨끗이 씻겨진다. 그릇들도 날마다 씻기고 말려져서 개운하게 진열되어 있다.
분주함 속에서도 모든 것들이 살아있음에 감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