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가 있는 날이라일찍 퇴근한 남편에게 며칠 전 마트에서 사 둔 설도를 꺼내어 구워주었다. 배가 고팠는지 아들 먹거리를 챙기는 사이에 고기를 두 점만 남기고 어느새 다 먹어버렸다. 식탁에 늦게 앉아서 남은 고기를 먹고 삶은 계란을 먹으려고 할 때
"껍질을 까줄까?"
라며 미안한 말투로 호의를 베풀었다.
"이미 금이 가 있어요."
라고 했더니
"그래, 우린 이미 금이 가 있지"
라며 장난스러운 웃음으로 되받아쳤다.
"의미심장한 말이네"
라며 둘이 마주 보고는 한참 동안 웃었다.
점심시간에 끓는 물에 넣고 급히 삶다 보니 계란을 냄비에서 꺼냈을 때는 이미 금이 가서 흰 계란줄이 붙어 있었다. 찬물에 넣고 식힌 후 깨끗이 씻어 접시에 담아 두었던 계란이었다. 그러고 보니 퇴근 후 집에 와서 각자의 시간을 갖는 일이 어느새 자연스러워졌다. 밥을 먹을 때 잠시 이야기 나누고 집안의 경조사가 있을 때 잠시 의견을 조율하는 일 외에는 그다지 마주 보고 앉아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남편은 운동과 경제 부분에 관심이 많고 나는 글쓰기나 인문학 부분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인지 공통관심사도 점점 줄어들고 대화시간도 덩달아 줄어들고 있다. '이미 금이 가 있지'라는 말이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좁은 공통 관심사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이야기 나누어 주고 각자의 영역은 존중해 주는 배려가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