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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웅덩이 Aug 10. 2024

OO감옥 탈출기

운영하고 있던 OO약국이 OO감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3년 동안 운영하던 OO약국이 어느 날 OO감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평 남짓한 이곳에서 아침 9시부터 저녁까지 지키는 시간이 내게는 감옥 같은 시간으로 변했다. 20여 년 전에 시골마을에서 약국을 운영하려면 늦은 시간까지 약국 문을 열야 했다. 개업하고 두 해 동안에는 휴무일도 없었다. 어느 날은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리며 멍 때리기를 하기도 했다.


가족들과의 관계가 더 심각했다. 늘 엄마가 오기를 기다리던 아이들은 사춘기에 접어들자 방문을 닫은 지 오래되었고 함께 운영던 남편과도 언성만 높이는 사이가 되었다. 작은 일에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이해라는 단어를 쓰레기통에 갖다 버린 지 오래되었다. 배움에 대한 갈증도 한몫했다. 좁은 공간에서 지내다 보니 생각도 좁아지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개업 후 10여 년이 지나는 사이에 톨게이트가 옮겨가고 상권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나니 이 약국의 전망도 점점 어두워졌다. 부정적으로 바라보니 모든 미래가 잿빛이 되었고 오직 탈출만이 살길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약국을 넘겨주고 모든 것을 정리하는 6개월 정도가 걸렸다. 툴툴 털어내듯 마무리를 하면서도 한편에는 허전한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세상을 향한 기대로 마음이 가벼워졌다.


버스로 2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요양병원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3월이었다.  요양병원 첫 출근길에는 신세계가 눈에 들어왔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주변에 핀 봄꽃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모든 것이 시가 되고 노래가 되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렇게 많은 꽃들이 피고 지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달마다 바뀌는 꽃들로 얼마나 황홀했는지 첫 해의 출근은 탈출을 기뻐하기에 충분했다. 자연이 계절마다 주는 선물을 이제라도 발견한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컸다.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어느날 행정부장이 조용히 불렀다. 요양병원 문을 닫아야 해서 인원을 감축하고 있다고 했다. 폐업할 때까지 있어달라는 부탁을 했다. 일주일에 두 번 출근을 하던 때라 그리하겠다고 했고 여름이 시작되는 6월에 그 요양병원은 폐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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