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5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 13시간 근무
종합병원 근무는 꼭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 같은 일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화학회사에서 근무를 하다 보니 종합병원에 들어갈 기회를 얻질 못했다. 약국에서 조제하거나 판매하는 약과 병원에서 사용하는 약들은 범위가 달랐다. 특히, 주사제가 그렇다. 약사공론에 있는 구인란을 뒤적이던 중 OO대학병원에서 야간 약사를 구한다는 문구에 눈이 갔다. 서울에 아이들이 대학을 다니고 있던 때라 생활비가 부족하기도 했고 종합병원의 약사 업무를 배우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10월에 입사를 했는데 다음 해 3월까지 6개월 계약제로 일했다. 이 기간은 3월에 새내기 약사들이 배출되기까지 약사 구하기가 가장 어려운 기간이었다. 나이가 있음에도 면접을 통과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처음 2주간은 매일 낮 시간에 출근을 하며 업무를 익히는 과정이 있었다. 이메일로 넘어온 약의 수는 2,000가지가 넘었는데 약품 이름을 익히는 것부터 시작해서 조제 공간과 보관 장소, 정해진 업무에 관한 배움 과정이다. 여러 가지 기계를 다루는 방법도 익혔다. 특히 0.1g 이하의 미량으로 가루약을 분할해서 담아주는 기계가 신기했다.
야간근무는 2인이 한 조가 되어 근무를 했다. 나이도 있고 초보이다 보니 베테랑 후배 약사가 함께 해 주었다. 덕분에 어렵지 않게 일을 배우며 근무할 수 있었다. 모두 젊은 약사들이라 야간 근무 후에도 피곤해하지도 않았고 업무에 노련해서 배울 것이 많았다. 중간에 2시간을 교대로 쉴 수 있었는데 그 시간에 잠을 자 두어야 새벽에 힘들지 않다. 하지만 처음 두어 달은 잠을 자지 못했고 야간 근무를 마치고 집에 오면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 석 달째부터 조금씩 업무에 적응을 하기 시작했다. 체력을 고려하여 일주일에 두 번, 화요일과 목요일에 일을 했는데 일주일이 금방 지나갔다.
저녁 5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 두 시간의 휴식 시간을 제외하면 13시간을 근무하는 일이다. 집에서 병원까지 버스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이기에 18시간을 움직이는 일이라 체력이 받쳐주질 않았다. 6개월 계약기간이 끝나자 퇴사를 했다. 퇴사하는 날 아쉬워해주는 동료들이 있어서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