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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웅덩이 Aug 24. 2024

에피소드 1

뜨끈뜨끈한 손두부 이야기


첫 요양병원이 문을 닫고 종합병원 야간 약사로 근무하던 어느 날이었다. 심상치 않은 핸드폰 벨이 울렸다. 대화의 요지는 폐업한 요양병원과 관련해서 질문이 있다며 경찰서 지능범죄 수사팀으로 출두하라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보이스피싱인가 했지만 수소문해 보니 요양병원에 근무하던 모든 직원들이 같은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전화를 받고부터 뛰기 시작한 심장은 좀처럼 멈추질 않았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걸리는 문제는 없었다. 


경찰서에 가기로 한 토요일이었다. 오후에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오전에 5여 전도회 임원진 기도회가 있어서 교회로 향했다. 총무를 맡고 있었다. 5여 전도회 주관 행사가 계획되어 있어서 회장과 서기랑 셋이서 토요일마다 기도회로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날은 서기가 다른 일정이 있어서 회장과 둘이서 기도하기로 했었다. 마음이 많이 무거웠지만 교회 1층에 있는 방으로 정해진 시간이 되기 전에 먼저 가 있었다. 혼자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으니 회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런데 그 손에는 방금 만든 뜨끈뜨끈한 손두부가 든 하얀 비닐이 들려 있었다. 


'목욕탕에 갔다가 방금 만든 손두부가 맛있어 보여서 사 왔어요'   


회장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오늘 경찰서에 가는 일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더 당황스러웠다. 보통 기도회에 간식을 가져 올 때는 빵이나 음료 혹은 과자를 들고 오는데 두부를 사 오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없었던 일이다. 나는 내심 하나님이 주신 두부로 여겨졌다. 다시는 이런 일로 경찰서에 가는 일은 없을 거라는 약속 같은 표징이었다. 회장에게는 아무 말하지 않고 감사히 잘 먹겠다는 인사만 할 뿐이었다.


오후에 경찰서로 가는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경찰서에 들어서니 같이 근무하던 다른 직원들도 한 두 명 보였다. 병원이 법인화되면서 문제가 있었던 것을 그날 알게 되었다. 법인화가 되던 시점부터 문을 닫을 때까지 근무했던 나도 그 일에 관여되었는지 알고 싶어 했다. 의리로 마지막까지 근무했던 것이 오해가 되었던 모양이다. 모든 질문에 답을 하고 서류를 작성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다리의 힘이 풀렸다. 

 

만 1년이 지난 어느 날 경찰서에 다시 가게 되었다. 이번에는 약사회에서 구급함세트를 전달하는 자리였다. 약사회 부회장을 맡고 있던 터라 회장단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신문사에서 사진을 찍고 원탁에 둘러앉아 인사를 나누며 즐거운 만남이었다. 한참 이야기하고 있는데 익숙한 얼굴의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날 매섭게 질문을 던지던 그 경찰관이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그도 내 얼굴이 익숙한지 계속 쳐다보았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회의실을 나서면서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기억하시겠어요? OO요양병원에 근무했던 약사입니다." 


그제야 기억이 났는지 얼굴에 환한 웃음을 보였다. 가벼운 인사로 헤어졌지만 그 웃음 속에는 따뜻함이 묻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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