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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김선미 Oct 30. 2022

아만자 아빠에게 햇살이 비추었다

이별이 성큼 다가왔을 때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결과 문자를 보여주고 아빠가 있는 병실로 갔다. 밤새 아빠 옆을 지키느라 피곤해 보이는 엄마와 동생보다 아빠에게 먼저 눈이 갔다. 여전히 아빠는 눈을 감고 있었다.     


“나 왔어.”     


    아빠는 말이 없었다. 오늘은 비닐장갑 없이 아빠 손을 잡았다. 움직임이 없던 아빠 손이 움찔했다. 체온을 통해 나에게 왔냐고 묻는 것 같았다.     


“응, 나 왔다고.”     



    손을 더 꽉 쥐었다. 내가 왔으니 엄마와 동생은 집에 다녀와도 되었다. 엄마는 혈압약을 처방받으러 동네 병원에 가야 했다. 어제 약 처방받으러 가는 길에 아빠의 컨디션이 안 좋아져 아빠에 한달음에 왔고, 동생 역시 회사 차로 바로 왔다. 동생도 회사 차를 집 앞에 옮겨 놔야 했다.     


    엄마와 동생이 가고 나는 아빠를 지켜보았다. 아빠의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 있었다. 엄마는 밤사이 우리의 노래와 아빠가 자주 듣던 찬송가를 번갈아 틀어주었다. 핸드폰을 보니 우리가 함께 녹음했던 노래가 재생되고 있었다. 그 모습을 한참 보고 있는데, 아빠가 팔을 든다. 눈은 살짝 떴지만, 초점은 없었다. 허공을 향해 팔을 휘젓는 것처럼 보였다. 간호사에게 물었다. 


    간호사는 EKG 모니터, 주사약, 소변 양 등을 확인한 후 아빠의 상태를 보고는 아빠의 손을 잡았다. 간호사는 아빠 손을 잡고 엄지손가락으로 아빠의 손 둘째 마디에서 다섯째 마디를 왔다 갔다 한다. 누가 옆에 있음을 아빠에게 알려주었고, 아빠가 또 허공에 팔을 휘저으면 손을 잡고 아빠의 가슴을 손으로 토닥거렸다. 아빠는 이내 괜찮아졌다. 간호사는 아빠가 지금 충분히 이럴 수 있는 단계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섬망일 수도 있다고 했다. 간호사가 나간 뒤 다시 아빠 손을 잡았다. 아빠에게 친구들이 보내온 문자 메시지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원장님이 말해주셨던 것처럼 “아빠는 천국에 갈 거야, 걱정하지 마요.” 말해주기도 했다. 찬송가도 틀어주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작은 아빠, 고모와 중간중간 통화를 했다. 작은 아빠는 오전에 PCR 검사를 하고 병원으로 오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검사 결과 문자가 있어야 병원 출입이 가능하기에 서울에서 오고 있는 작은 아빠를 되돌려보내야 했다.   



   

    엄마와 동생이 다시 왔고, 나는 초본을 떼러 주민센터로 갔다. 사망진단서에 현재 집 주소를 초본 상 최근 등록거주지와 동일하게 써야 한다는 글을 봤던 터라 미리 준비해서 나쁠 건 없었다. 근처에 사는 친구와 통화를 하며 가는데 친구가 잠깐 커피 마시자며 병원 앞으로 온다 했다. 그러자 했다. 또 한 명의 친구도 함께 보기로 했다. 초본을 떼고 오는 길에 마트에서 커피음료 12개를 사서 병원 앞 카페로 갔다. 친구들은 이미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내가 부탁했던 샌드위치도 시켜두었다. 어차피 점심 식사를 위해 써야 할 시간을 여기서 쓰면 되겠다 싶어 샌드위치를 코로 먹었다. 친구들은 체하겠다고 했지만, 괜스레 마음이 급했다. 


    정말 잠깐 커피를 마시고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순천으로 이사 간 후로 처음 셋이 모이는 자리여서 할 말이 많았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병원에 와서 간호사에게 사 온 커피를 건넸다. 누워있는 아빠에게 간호사, 요양보호사 분들이 대하는 모습에 내심 감사했었기에 드리고 싶었다. 병실에 들어와서 아빠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빠는 아까의 모습과 같았다. 여전히 잠을 자는 것 같았다.     


    간호사와 요양보호사는 번갈아 아빠의 상태를 살피러 왔다. 간호사가 내게 잠깐 나오라 한다. 엄마에게 설명해주었지만, 내게도 다시 설명해주었다. 어제부터 아빠의 상태가 급성으로 악화되었단다. 아빠는 지금 숨이 많이 찬 상태인데, 달리기를 쉬지 않고 해서 숨이 많이 찬 상태가 지속되는 정도라 했다. 오늘은 어제에 비해 호흡이 안정되었지만, 숨 쉴 때 가래가 있는 것도, 소변양이 많이 줄어든 것도 임종기의 단계라 했다. 체온은 38도여서 해열제를 놓았다 했다. 아빠의 맥박은 110-200 사이를 왔다 갔다 했고, 산소포화도는 보통 99정도를 유지했다.     




    오후 4시가 다 되어 의사의 회진이 있었다. 의사는 지금 하는 호흡은 거의 산소마스크에 의존한 호흡이라 했다. 이어 간호사에게 햇살방이 비어 있으니 그리 옮기시라 했다. 햇살방은 호스피스 내 임종실이다. 임종이라는 분위기에 맞지 않는 이름이었다. 예비 1인실에서 진짜 1인실로 가는 길. 아빠의 침대는 햇살방을 향해 가고 있었다. 통로를 지나며 다인실의 문을 확인했다. 활짝 열려있던 병실의 문들이 어느새 닫혀있었다.      


    며칠 전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빠가 다인실에 계실 때 누군가 임종기에 들어서면 1인실로 가는데, 그때마다 병실 문을 닫았다고 했다. 얘기를 들으며 문이 닫히고 침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걸 누가 모르겠냐 싶었는데, 그 대상자가 아빠가 되었다. 



병실 하나 옮기는 과정인데,

아빠의 생사가 방 하나로 결정되는 것 같았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병원에 입원해서 호스피스로, 그리고 햇살방으로 가는 과정은 3주가 채 안 되었다. 착잡한 발걸음으로 들어선 그곳은 햇살이 온 방 가득 비추고 있었고, 나의 마음과는 달리 따뜻함마저 감돌았다. 누워있는 아빠의 몸에도 햇살이 비추었다. 우린 아빠의 모습을 한참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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