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린 김선미 Oct 30. 2022

아빠의 장례를 준비하며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던 준비

    아빠를 보고 주차장으로 가려던 발길을 돌려 옆 건물로 향했다. 장례식장이다. 장례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기에 알아놔야 했다. 지원군 남편은 입원 중이라 내가 직접 알아봐야 했다. 사무실 문을 노크하고 들어가자 직원이 잔뜩 움츠린 내게 물었다.

  


“본원에 입원하셨습니까?”

“네.”

“위독하십니까?”

“네.”     



    능숙한 친절함과 함께 아무렇지 않게 물어보는 직원을 보며 나에게 큰일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일’일 뿐이구나 싶어 적잖이 당황했다. 직원은 나를 자리로 안내하고 종이를 건넸다. 장례식 비용에 관한 내용이었다. 상조 가입 여부를 묻는다. 상조 여부에 따라 뭐가 달라지는지 궁금하여 후불 상조를 할지, 상조 없이 장례를 치를지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장례가 처음이고 집에 어르신이 많이 계시지 않다면 알아서 진행해주는 상조가 낫지만, 그 반대라면 상조를 안 하는 게 낫다고 한다. 다만 진행에 관해 장례식장에서 도와주는 건 없다 했다. 시할머니 장례를 치러봤던 남편의 말이 떠올랐다. 상조로 인해 오히려 절감할 수 있는 비용도 고스란히 나갔었기 때문에 상조를 안 하는 게 낫다고 했었다. 직원에게 상조 없이 장례를 진행하는 것으로 설명을 들었다.

      

    가족의 장례를 치른 건 대학생 때 친할머니의 장례, 결혼 후 시할머니의 장례였다. 학생 때는 그저 상을 차리고 치우거나 잔심부름 정도를 했다. 시할머니의 장례 때는 돌쟁이 첫째를 보느라 거의 일을 도와드리지 못했다. 그러니 장례에 대해 크게 아는 게 없었다. 그런 내게 직원의 설명은 5살 아이에게 공인중개사 시험에 대해 말해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누가 알아봐 줄 것이 아니기에 온전히 내가 알아야 했다. 설명을 듣다가 이해가 안 되거나 '염습'같이 생소한 단어는 그냥 넘어가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꼭 물어보았다. 그렇게 설명을 듣고 나니 나름의 판단 기준이 생겼고, 다른 장례식장과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얼른 집으로 와서 장례식장을 알아봐 준 친구와 통화를 하고 내게 일을 알려주신 원장님과도 통화했다. 얼마 전, 시어머니 장례를 치르셨기에 내가 알아야 할 것들을 상세히 알려주셨다. 자정이 넘어서 친구가 알아봤던 장례식장에 전화를 걸어 상담했다. 역시나 상조 가입 여부를 묻기에 이곳에서도 상조 여부의 차이가 무엇인지 물었다. 이곳에서는 상조를 하지 않아도 직원들이 모두 장례지도사이기에 진행하는 것을 도와준다 했다.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꼼꼼히 메모를 한 뒤 전화를 끊었다.   

   

    걱정해주었던 친구들과도 통화를 했다. 나의 상황을 아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먼저 울었다. 이 상황에서도 웃음을 주려던 나는 “너네 아빠 아니고 우리 아빠야. 왜 그래~”하니 울던 친구가 웃는다. 어떤 친구는 본인 꿈에 우리 아빠가 나타나 도가니탕을 드시고 싶다 했다며 도가니탕을 사드려야 한다 했다. 어떤 친구는 내 심정을 알기에 전화를 먼저 못 했다고 하고, 어떤 친구는 명언을 남겼다. 


뭘 해도 후회하겠지만
그 후회를 줄이는 게 우리 몫이야.


언제나 힘이 되는 친구들과 울다 웃다 통화를 마쳤다.

     

    전날 잠을 3시간도 안 잤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일단 내일 병원 갈 준비를 했다. 핸드폰 검색창에 ‘장례식 준비물’을 검색했다. 미리 준비해두지 않으면 일이 닥쳤을 때 집에 가야 할 일이 생길 텐데, 그렇게 낭비되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싶었다. 제일 먼저 핸드폰을 집었다. 영정사진으로 쓸 아빠의 프로필 사진이 있는지 확인했다. 우리 가족과 작은아빠네, 고모네가 3일을 함께 있으면서 필요한 짐을 하나둘 싸기 시작했다. 모두가 함께 쓸 세면도구, 핸드폰 충전기, 수건 등 필요할 것들을 다시 집에 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넉넉하게 준비했다. 아빠가 쓰던 손수건까지 챙겼다.     


    새벽 4시가 되어도 여전히 잠이 오지 않았다. 아니, 잠을 잘 수 없었다. 앨범을 뒤졌다. 그러다가 한 사진에 눈이 갔다. 돌이 안돼 보이는 내가 아빠의 오른쪽 볼을 잡고 있고, 아빠는 나를 꼭 안은 채 한쪽 눈을 찡그리고 있었다. 한참을 보았다. 30대 초반의 아빠는 젊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자식들을 아끼는 건 여전했다. 그런데 아까 보고 온 아빠는 내가 멀리서 달려왔음에도 눈을 뜨지 않았다. 이 상황 자체만으로도 잠을 이루지 못할 이유였다.



     날이 밝은 후 아빠를 종일 보기 위해서는 억지로라도 잠을 자야 했다. 결국 2시간을 못 채우고 일어났지만. 10시에 올 거라는 코로나 검사 결과 문자는 9시에 왔다. 음성이다. 제일 좋아하는 원피스를 입고 서둘러 나섰다. 마지막으로 아빠에게 예쁜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챙겨놓은 짐가방을 트렁크에 실었다. 가방을 차에서 꺼낼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마음 한편에서 스쳐 지나갔지만 붙잡을 수 없었다. 얼른 아빠를 만나고 싶다. 


이전 06화 아빠에게 마지막이 오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