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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김선미 Oct 25. 2022

오늘도 어김없이 영상통화를 했다

그동안의 우리

    오늘도 어김없이 아빠와 영상통화를 했다. 아빠는 손주가 셋이나 되니 각자가 동시에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아이들은 저녁은 무얼 먹었는지, 친구들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등을 이야기한다. 

    매일, 저녁 시간이 되면 으레 볼 수 있는 우리 집 풍경이다. 아빠에게 핸드폰을 건네받은 엄마가 아이들과 통화를 이어갔다. 엄마의 모습 뒤로 아빠가 보인다. 본인이 화면으로 보이는 걸 모르는 아빠는 엄마가 통화를 하는 동안 가쁜 숨을 천천히 몰아쉬고 있었다. 아빠의 눈은 금방이라도 풀려버릴 다리처럼 힘이 없었다. 이내 아이들이 할아버지를 보여달라 말하자 엄마 손에 있던 핸드폰은 다시 아빠를 향했고, 아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정면을 주시했다. 힘이 들어간 목소리였지만 부드러웠다. 


아이들과 통화를 마친 아빠는
“잘자”라는 인사로 내일을 기약한다.
가족 누구도 알 수 없는 내일을.     
    

아빠가 폐암 진단을 받은 지 벌써 6년 차. 아빠는 많이 변했다. 암 진단을 받고도 일을 계속 다녔던 아빠는 이제 침대 밖을 벗어날 수 없다. 우리 집 맥가이버였던 아빠는 이제 청소기가 고장 나도 손을 볼 수 없다. 술을 과하게 마셔도 선비처럼 흐트러짐 없이 정자세를 유지했던 아빠는 이제 편히 앉는 것조차 숨이 차다. 작년부터 컨디션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는데, 불과 몇 달 새에 사람이 이렇게 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건강이 빠르게 악화 되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뇌에 전이된 암세포의 영향이 컸다. 심지어 그곳의 부종이 신경을 누른 탓에 아빠는 다리를 점점 못 쓰게 되었다. 두 발로 곧게 걸었던 아빠가 작년부터 다리가 하나인 등산 스틱에 의존하기 시작하더니, 그걸로도 안되어 다리 두 개, 바퀴 두 개 달린 보행 보조기에 의존했다. 그 뒤로는 온 가족의 손과 발이 아빠의 다리를 대신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많은 혼란이 있었다. 어떻게 해야 아빠가 마음이 더 편할지, 어떻게 해야 더 즐거울지, 어떻게 해야 덜 아플지, 어떻게 해야 덜 슬플지. 정해진 답은 없었지만, 우리 가족은 답을 얻기 위해 서로 노력했다. 나 역시 그랬다. 


    작년, 아빠를 위해 딸로서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빠를 인터뷰하였고, 그걸 바탕으로 책을 만들었다. 누가 하라고 시킨 것은 아니었지만 꼭 해보고 싶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선물 받은 아빠는 좋아하는 티를 팍팍 내지는 않았지만, 풍기는 분위기로 행복했음을 알 수 있었다. 



< 아빠만을 위한 책과 책 속에 쑥스럽게 끄적인 마음 >


    그리고 올해, 아빠의 컨디션이 눈에 띄게 나빠지면서 끝을 알 수 없던 마지막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아빠의 마지막을 마음속으로 준비하고 있지만, 막상 닥쳐올 마지막이 사실은 미치도록 두려웠다. 



매일 밤, 아빠에게 내일이 오기를 바라며

잠이 들면서도 눈을 뜨면 어느새

나의 오늘을 살아가느라

아빠의 오늘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아빠가 당연히 곁에 있을 거라는 안일한 믿음의 결과다. 야금야금 하루하루가 지나갔고 아빠는 어느새 대화를 길게 하지 못할 만큼 숨이 가빠졌다. 

  

  점점 약해지는 아빠의 ‘마음의 짐’은 점점 무거워지고 있다. 아빠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엄마에 대한 ‘미안함’ 또한 점점 커지고 있다. 한없이 약해지고 있는 아빠도 누군가에겐 큰 힘이 되어주기도 했을 테고, 누군가에겐 유일하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편안한 사람이 되어주기도 했을 텐데. 아빠의 마지막이 그랬으면 좋겠다. 사실 ‘죽음’이라는 단어를 늘 접하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금기어를 대하는 것처럼 말하기가 불편했다. 하지만 내 가족에게 ‘죽음’이 다가옴을 인정하게 되면서 마냥 불편했던 감정을 조금씩 덜어내었다. 아빠는 어떻게 느꼈을까?


6년 차 아만자 아빠와 그동안 소소한 추억거리를 많이 만들었지만 그중 마지막 5월의 이야기부터 꺼내 보려 한다. 아빠에게도 우리 가족에게도 더욱 애틋했던 5월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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