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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김선미 Oct 26. 2022

어린이날 선물

할아버지의 약속

    아이 셋을 돌보며 부모님까지 살뜰히 챙기는 일이란 생각보다 어렵다. 이사로 인해 부모님과 멀리 떨어지게 되면서 부모님을 자주 뵈러 가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첫째가 초등학생이 된 이후로는 평일에 학교를 빼가면서까지 가족이 함께 움직이는 건 엄두도 안 냈다.

   

    그러다 보니 아빠 곁에 진득하니 있고 싶어 져서 지난 겨울 방학 내리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서 살다시피 했다. 길고도 짧은 방학이 끝나가고 집에 돌아가려니 그렇게 아쉬웠다. ‘한 달에 한 번은 아빠 보러 가야겠다.’ 생각하며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왔다. 그런데 막상 3월이 되니 도무지 갈 틈이 안되었다. 학기가 시작되었으니 주말을 이용해서 다녀와야 하는데, 우리 집(순천)과 친정(인천)은 아무래도 장거리인지라 말처럼 쉽지 않았다.


    4월이 돼서야 친정에 갈 수 있었다. 한 달 넘게 아빠를 못 봤던지라 우리 다섯 식구는 주말을 이용해 다녀왔다. 그때 아빠는 곧 어린이날이라며 손주들에게 가지고 싶은 선물이 뭐냐 물었다. 아이들은 자기가 원하는 걸 신나게 말하기 시작했다. 아빠는 팔 쓰는 게 힘들어졌는데 손까지 건조해져 핸드폰 사용이 불편했지만 몇 번씩 터치해가며 메모장에 열심히 입력했다. 



다섯 식구가 순천 집으로 돌아온 날 새벽,

손주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었던

아빠는 긴장이 풀렸는지 경련을 일으켰다.



    다음 날,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어린이날이 되기 전에 정신이 없을 수도 있겠다며 미리 선물을 보낼 테니 잘 가지고 있다가 어린이날에 선물해 주라 하였다. 본인의 컨디션이 평소와 많이 떨어졌다는 걸 느낀 듯했다. 며칠 후, 우리 집으로 택배가 하나둘 도착했고, 아이들에게 완벽한 서프라이즈를 선물하기 위해 꼭꼭 숨겨 두었다.               



    하지만 어린이날까지 아빠의 컨디션이 어떨지 나 역시 예상할 수 없었다. 아이들에게 먼저 선물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둘까 생각했지만, 막상 매일 저녁이 되면 아이들과 정신없이 보내느라 기회를 놓쳤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린이날이 코앞으로 다가와 버렸다. 다행히도 올해 어린이날은 징검다리 휴일 덕분에 유난히 명절처럼 느껴졌다. 아이들과 무얼 할까 고민도 잠시, 나의 선택은 친정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아빠를 보러 갔다. 손주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드리고 싶었기에 아빠가 보냈던 선물도 고스란히 다시 챙겨갔다. 


    할아버지도 손주도 목 빠지게 기다리던 어린이날.

할아버지의 선물을 드디어 받게 된 아이들은 예상대로 뛸 듯이 기뻐했다. 아빠는 그 모습을 잔잔한 미소로 지켜보다가 아이들에게 한마디 건넸다.

  

할아버지 약속 지켰다.


    그 말은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마치 아빠 자신에게도 하는 말 같았다. 당장 어린이날까지 컨디션이 허락할지 아빠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이들이 좋아할 모습을 얼마나 상상하고 기다렸을까. 아빠는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며 “할아버지 약속 지켰다.”는 말을 두어 번 더 되뇌었다. 


    아빠가 손주들에게 꼭 지키고 싶어 했던 약속. 그 덕에 나 역시 어린이날 선물로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을 선물 받았다. 

감사해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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