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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김선미 Oct 27. 2022

아만자 아빠의 하루

우리 가족의 하루

    왁자지껄했던 어린이날이 지나고 모두 잠든 새벽 3시. 방에서 아이들과 자고 있는데, 엄마와 아빠가 남동생을 부른다. 동생은 잠이 깊이 든 모양인지 엄마와 아빠가 연신 동생 이름을 부른다. 내가 대답하며 거실에 나갔더니 아빠 몸에 경련이 와서 엄마가 아빠의 왼쪽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아빠의 눈동자엔 힘이 없었다. 


    아빠의 경련은 통화로만 들었지, 직접 눈으로 본 적은 없었다. 얼른 아빠의 왼팔을 주물렀다. 아빠의 손은 주먹이 쥐어져 있었는데, 일정 속도로 까딱까딱 안쪽으로 움직였다. 아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건지 물으니 아니란다. 경련이었다. 몸을 바들바들 떠는 것만 생각했는데, 그제야 이것도 경련이란 걸 안거다. 잠에서 깬 동생도 아빠의 발을 주물렀다.


    아빠는 숨이 차다며 병원에 가고 싶어 했다. 다른 때보다 더 심하게 숨이 찬지 물어보니 더 심할 것도 없이 계속 숨이 차다며 병원을 언제 갈지 보고 있다고 했다. 당장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시간이 지났고, 경련도 병원에 가자는 얘기도 잠잠해졌다. 아빠는 동영상으로 목사님 설교를 들으며 이내 잠이 들었다.

 

    밤에 잠을 설쳤던 나는 엄마가 아이들 아침을 주는 줄도 모른 채 잠을 잤다. 막내딸이 아침이라고 깨우고 나서야 느릿느릿 일어났다. 오늘은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두 달 전에 대여한 휠체어를 장애인종합복지관에 반납하고, 며칠 전 고장 난 청소기를 주민센터에 배출하는 것부터 처리했다. 차를 가져온 김에 엄마의 수고를 덜기 위함이다. 




    점심 무렵에는 손님이 오셨다. 나에게 일을 알려주신 원장님인데, 어제 욕창에 대해 전화로 여쭤보다가 집에 욕창 방지 매트가 있다며 남편분과 함께 가져다주신 것이다. 매트를 침대 위에 놓으려면 아빠가 몸을 움직여줘야 했다. 움직일 수 없는 아빠를 원장님과 엄마 그리고 나까지 셋이서 패드째로 들었고, 원장님 남편은 들린 패드와 침대 사이에 재빠르게 매트를 넣었다. 쉬워 보이는 이 과정이 생각보다 어려웠지만 모두 한마음으로 매트를 깔았다. 욕창 방지 매트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려주신 뒤 원장님 내외분은 집을 나서려고 인사를 했다. 그때 아빠가 원장님께 말했다.


“전에 오셨을 땐 앉아있었는데,
지금은 누워있네요.
원장님, 우리 선미 잘 알려주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매트를 까느라 안 쓰던 근육들이 놀랐는데, 방심한 틈에 아빠는 안 쓰던 마음 근육까지 놀라게 했다. 순간 울컥하는 걸 누르고 마냥 웃어 보였다. 원장님 내외분이 가시고 매트가 불편하지 않은지 다시 한번 봐 드렸다. 


    손님맞이를 한 아빠는 한숨을 돌린 후 내게 방에 있는 하늘색 노트를 가져오라고 했다. 거기에는 보험사 전화번호, 건강보험공단 전화번호, 부고 시 연락해야 할 분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아빠는 본인의 마지막 준비를 조금씩 해오고 있었다. 아빠만을 위한 준비는 아니었다. 나중에 우리가 일일이 찾아야 할 수고까지 덜어준 것이다. 아빠는 부고 문자를 보낼 때 계좌번호는 엄마 것으로 하라 했다. 말이 나온 김에 아빠가 납부하고 있는 자동이체 계좌를 물었다. 여러 계좌로 되어있으면 관리하기 불편할 테니 한 계좌로 통일하기 위함이었다. 핸드폰 요금을 제외하고 이미 한 계좌로 관리하고 있어서 아빠의 동의하에 핸드폰 요금 수납 계좌를 변경했다. 계좌 잔액도 모두 한 계좌로 몰았다. 

< 오랜만에 보는 캐릭터에 놀라고, 아빠의 준비에 놀라다. >

    

    아빠는 더 물어볼 게 있으면 물어보라 했다. 사실 물어볼 거야 많았다. 이렇게 준비하고 있는 마지막 준비가 정말로 되었는지, 마지막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하고 싶은 건 없는지 등등 말이다. 아빠를 인터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정도 컨디션은 안 되어 보였기에 쉬라고 했다. 아빠는 동영상으로 목사님 설교를 틀어 달라고 했다. 천장을 보며 아빠는 설교를 들었고, 난 아빠 옆에 그저 묵묵히 앉아있었다.

 

    하루가 어찌 지나갔는지 모르게 벌써 저녁이다. 저녁 메뉴는 정해져 있었다. 아빠가 날 먹이려고 주문해두었던 홍어회다. 거기에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막걸리까지 두 병 사두었다. 핸드폰 조작이 점점 어려워짐에도 불구하고 딸내미 오면 먹이겠다고 핸드폰을 붙들고 고군분투하며 주문했을 아빠의 모습 때문인지, 홍어의 알싸한 맛 때문인지 코끝이 아려왔다. 아빠의 저녁은 유부초밥이었다. 손이 떨려 밥을 자꾸 흘린다며 며칠 동안 한입에 먹을 수 있는 생선 초밥으로 끼니를 때웠던 걸 알기에 간편하게 드실 수 있는 유부초밥을 만들었다. 거기에 홍어회도 몇 점 놨다. 막걸리도 한 모금 따라주냐 물으니 오케이란다. 


< 서로를 위해 준비한 음식 >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식사 시간은 늘 시끌벅적했다. 아이가 셋이니 오죽하겠나. 그런데 이날따라 막내가 여간 재롱을 피운다. 혼자 신이 나서 춤을 추길래 아빠의 시선에도 잘 보이도록 막내를 세우고 재롱을 맘껏 피울 수 있게 판을 깔아주었다. 이에 더 신난 막내는 할머니의 노래에 맞춰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춤을 추었다. 앉아있기도 힘들었던 아빠는 막내의 재롱에 미소 짓는다. 웃음은 희미해 보였지만, 몸에 남아있는 힘을 모두 끌어모아 웃는 것 같았다. 하지만 행복감만은 묵직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 모습을 놓칠세라 얼른 동영상으로 찍어두었다. 

    



    신나게 저녁을 먹고 치우기 시작했다. 나는 설거지를 하고 엄마는 냉장고에 반찬을 넣고 있었다. 그때 앉아있던 아빠가 “나 넘어져.”하며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슬로우 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아빠의 말과 동작을 똑똑히 보고 있었지만, 달려가지 못했다. 반면 반찬을 넣고 있던 엄마는 아빠의 말과 동시에 아빠에게 달려갔다. 



그제야 엄마가 보였다.

아빠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아졌다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덜 아픈 엄마를 보지 못했다.


   

    24시간 대기조로 있다 보니 몸은 늘 긴장 상태고 밤에도 제대로 눈을 붙이지 못했던 엄마. 허리가 아파서 설거지할 때마다 기대서 하고, 아빠를 앉히고 눕히느라 힘을 써서 등이고 허리고 마사지기를 연신 두드렸던 모습, 내가 있을 때 잠깐이라도 아이들과 바람을 쐬고 싶어 했던 모습들이 기차가 되어 내 머릿속을 스쳤다. 엄마가 아빠에게 한달음에 달려가는 것을 보고 그간의 돌발상황들이 적잖이 있었겠구나 싶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고,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는데, 너무 많은 일을 한 것처럼 진이 빠졌다. 가족을 돌보는 것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님을,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 역시 관심을 가져야 함을 몇 초의 순간으로 알게 되었다.

     

하루 동안 우리 가족에게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아빠는 무슨 일이 있던지 늘 침대 위였다. 아빠가 느끼는 하루의 체감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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