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를 함께 버텨온
새벽 2시쯤 되었을까. 막내가 물을 달라며 깨웠다. 친정에 와서 뭐 그리 바쁘게 보냈는지 눈꺼풀이 잔뜩 무거워진 채로 거실로 나갔다. 거실은 밝았다. 거실에서 둘째와 자고 있던 엄마가 이미 잠에서 깨서 아빠가 불편한 게 있는지 살펴본 후 아빠의 요청에 불을 켜 둔 것이다. 얼른 막내에게 물을 주고 방으로 들여보내고선 아빠에게 숨 쉬는 게 답답하냐 물었다. 평소처럼 숨이 찬데 불을 끄니 더 답답한 느낌이라 했다. 문득 전날 아빠가 한 말이 생각났다.
아무도 없을 때 경련이 오면
바다 한가운데 내던져진 느낌이야.
옆에 누가 있으면 위안이 돼.
아빠의 답답함은 힘든 호흡보다 어둠에서 밀려오는 불안감에서 오는 듯했다. 아빠 침대 옆에 가만히 앉았다. 아빠는 내게 남편이 언제 오는지 묻는다. 남편은 친정(인천)에 올 때 같이 오지 않았다. 화물차 운전을 하는데 배차 일정이 미리 고정된 게 아니기에 대기를 해야 했다. 그런데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인천 배차가 웬일로 잡혔다. 남편이 하차하고 나면 오후 1시쯤에나 집에 올 거라고 아빠에게 말했다. 시계를 보더니 한숨을 푹 내쉰다. 아빠가 힘들어하는 와중에 사위가 언제 올지 묻는 걸 보니 내심 사위 얼굴을 보고 싶어 하는 듯했다. 사위의 얼굴을 보고 ‘이제 됐다하며 눈을 감는 건 아니겠지.’ 하며 별의별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이야기를 조곤조곤하게 하며 아빠 곁을 지켰다. 아빠는 곧 잠이 들었다.
30분쯤 지났을까. 아빠는 다시 숨이 차다며 눈을 떴다. 아빠는 병원을 가야 한다며 바지를 입혀 달라고 했다. 아빠가 유난히 바지부터 찾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거동이 가능할 때는 화장실 가는 게 가능했지만, 다리를 쓸 수 없게 된 후로는 아빠도 상상하지 못했던 기저귀를 사용하게 되었으니까. 별명이 선비일 정도로 행동에 흐트러짐 없이 곧았던 아빠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스스로의 모습이 많이 신경 쓰였을 터였다.
아빠는 그제 낮에도 어제 낮에도 병원 얘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제도 오늘도 새벽만 되면 응급실에 언제 가냐, 앰뷸런스는 언제 부를 거냐, 미리 바지 입고 있을까 등을 물으며 병원에 가길 원했다. 표정의 변화는 거의 없었지만 죽음이 언제라도 다가올 것처럼 불안하고 두려워 보였다. 안타깝게도 그걸 대신 해결해 줄 수 없었다. 엄마와 함께 병원 갈 준비를 하였다. 준비라기보단 아빠 옷을 갈아입혀 드렸다는 게 맞는 표현이다. 입원을 몇 번 했었던지라 입원 가방은 늘 준비되어 있었다. 더 준비할 건 없었다. 아빠는 환자 번호를 확인 할 경우 핸드폰을 보여주면 된다며 병원 앱을 열어 달라 했고, 체크카드 잔액을 확인해보라 했다. 아빠도 병원 갈 준비가 되었다.
새벽 3시 26분. 나는 119를 불렀고, 잠시 후 세 명의 구급대원이 왔다. 현관 중문이 좁은 터라 바퀴 달린 들것이 들어오지 못했다. 세 분은 침대 위에 누워 있던 아빠를 간이 들것에 옮겨 현관을 향했다. 성인 세 명이 들것을 들고 중문을 빠져나가려니 여간 좁은 게 아니었다. 그곳을 통과하기 위해 들것을 약간 기울여야 했는데, 아빠의 눈을 통해 몸에 잔뜩 힘을 주고 있다는 걸 알았다. 침대에서 현관까지 고작 몇 걸음인데, 아빠는 이제 그 거리조차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수없이 드나들던 현관이 점점 멀어지는 심정은 희미하게나마 예상할 수 있을 뿐, 나로서는 완전히 알지 못할 것이다. 아빠는 들것에 실린 채 구급차에 올랐고 이어 보호자인 엄마도 몸을 실었다. 뒷문이 닫히고 구급차는 출발했다. 구급차가 내 시야에서 없어진 후에도 한참을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면서 가슴 한구석이 허했다.
덤덤히 집으로 들어서는데, 텅 빈 현관에는 아빠 신발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걷지 못하는 아빠에게 필요 없어진 신발을 엄마는 신발장에 넣지 않았다. 아빠의 존재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병원을 수없이 오갔을 신발에는 마음의 짐을 잔뜩 얹어 무거웠을 발걸음이 담겨있었다. 힘겨움을 꿋꿋이 버텨온 신발은 지금까지 우리 집 현관을 지켜왔다. 신발에게 말해주고 싶다.
참으로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