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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미 윰글 Nov 18. 2023

학교폭력 가해 아이들의 현실

반성은 절대 없습니다

"이렇게 00 이가 전학을 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잘 생각해 보시죠?"

"그러면 그 아이들이 제 아이에게 사과라도 하게 하실 건가요?"


"그런 못 하겠습니다. 아이들이 말을 한다고 듣나요?"

"선생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말을 해도 안 듣는 아이가 말을 안 하면 스스로 잘하겠습니까?"


"..."

"저는 제 아이를 그런 교실에 하루도 더 이상 들여보낼 수 없습니다. 그럴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러고 싶지도 않고요. 더 이상은 선생님과 나눌 말씀이 없습니다. 이제 이런 전화나 말씀은 그만하시죠."


이것이 나와 담임교사와의 마지막 통화였다.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는 그 사람과 더 이상의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았다. 교직원으로서도 엄마로서도 이해를 할 수 없는 담임교사의 말을 듣고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내 아이를 위해서 꾹 참았다.


'어쩌면 저렇게 무책임한 태도를 보일 수 있을까.'


그를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같은 반에서 여러 명의 아이가 내 아이를 괴롭히는 정황을 알았다. 그래서 아이를 통해 담임교사에게 수차례 그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전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아무런 회신이 없었다. 아이는 "선생님이 아무런 말씀이 없으세요."라는 말을 내게 했다. 나는 '설마 그럴 리가 없는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빠서 그러시겠지'라고 생각했다. '조금 기다리면 무슨 말씀이라고 있겠지'라고 착각했다. 그 이후에도 계속 아무런 설명이나 회신이 없었고, 아이는 그런 상황에서 마음의 상처를 안고 몇 개월을 더 그 교실에서 괴롭힘을 당하게 되었다. 견디지  못한 아이는 결국 '등교거부'를 시작했고, 나중에는 내가 나서서 '담임교사'에게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물론 정중하게 말이다. 하지만 돌아온 말은  '증거 부족'으로 인해서 상황을 해결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아이를 교육하는 일에 무슨 증거가 필요하다는 건가. 정황만으로도 아이를 지도하는 건 충분하다. 우리가 학교 현장에서 아이를 교육하는 일이 '재판장에 올라선 피의자를 상대하는 것도 아닌데 증거가 꼭 필요하다는 말이가.'. 가해 아이가 한 말과 행동이 있으면 된다. 그리고, 그렇게 담임교사가 원하는 증거도 있었다. 그 아이가 우리 아이에게 폭언을 적어서 준 종이쪽지와 화장실 앞에서 했던 말, 그리고 책상 위에 적어놓았던 '욕'이 있다. 물론, 그 욕은 그 아이들이 적었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앞뒤 정황은 충분하고 그 부분은 알아보면 될 일이다. 상황을 알아봐서 우리 아이가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인정하고 사과해도 된다고 이야기했다. 내가 원한 건 그 아이들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 그 표면화시키고 서로 필요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부분을 아이의 담임교사는 하지 않고 아이는 물론 엄마인 나에게조차 설명이나 해명을 하지 않고, 해결하지 않는 변명만 늘어놓는 모습을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내가 교사가 아니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이건 그럴만한 부분이 아니다. 6명의 아이가 한 아이를 오랜 기간 괴롭혔다는 건 '학교폭력' 중에서도 수준이 이만저만 높은 수준이 아니다. 왜 그 일이 그냥 넘어갈 일이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아이와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교직원으로서 '학교폭력위원회'를 신청해서 연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결국 그 당시 우리 집이 이사를 하는 바람에 아이는 자연스럽게 '전학'을 하는 걸로 결론을 내렸다. 물론 일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는 상처를 받았고 지금도 그 일을 떠올리면 울컥거리면서 화를 낸다. 나는 그때 학폭위를 열지 않았던 걸 지금 후회한다. 그 상처를 안고 지내는 아이를 보면서 그 가해 아이들과 학부모가 공개사과를 하는 모습을 꼭 봤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담임교사가 아이들에게 공정하지 못한 행동을 하게 되면  반의 아이는 누구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는 걸까. 굳이 왜 그런 언행을 한 것인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학교폭력으로 인해서 고통받는 아이를 보면 이런 생각을 한다.


'가해 아이와 학부모는 절대 반성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공개 사과를 받고 싶다면 반드시 학교폭력위원회를 신청하십시오. 제가 적극적으로 그 과정을 돕겠습니다.'


내 아이가 전학을 가고 우스운 일이 발생했다. 우리 아이를 괴롭힌 같은 아이들 여섯 명이 그다음 해 우리 반 아이 한 명을 괴롭혔다. 그래서 그 가해 아이들이 연구실에 모였다. 그리고, 여러 선생님들이 보는 앞에서 우리 반 아이에게 공개 사과를 했다. 그 안에는 전교 회장도 섞여  있었다. 사과를 하는 전날 밤 관련 학부모들이 벌벌 떨면서 학부모들끼리 전화 통화를 하고 난리가 났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내 아이에게 그 말을 전했다. 사과를 하는 날 연구실에서 잠시 몇 초 정도는 그 아이들이 진실해 보였다. 연구실에서 나오자마자 자기들끼리 욕을 하면서 걸어갔다.


이게 바로 학교폭력 가해 아이들의 현실이다.






'법 참 쉽네.'


이 대사는 김혜수 배우님이 출연하는 영화  '소년심판'의 유명한 대사이다.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 두 명이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서 장난으로 벽돌 하나를 떨어뜨린다. 벽돌은 아파트 앞을 지나던 젊은 판사 부부의 유치원생 아들의 머리 위에 떨어졌고, 그 돌을 맞은 아이는 그 자리에서 사망한다. 이 일로 인해서 두 남자아이는 소년 심판에 회부되지만 단 몇 분 만에 '무죄'를 선고받는다. 판결이 끝나고 실실 웃으면서 재판장을 나오는 두 아이를 아이의 부모가 지켜보면서 아이의 아버지(판사)는 이렇게 말한다.



"법이 원래 그래."


이 일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몇 년이 지나고 두 남자아이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더욱 잔혹한 범죄를 저질러 또다시 심판을 받게 되는 걸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공상과학 같은 이 내용은 사실상 드라마가 아닌 현실이다. 물론, 소년심판은 현실을 모티브로 각색되었다. 학교에서 두고 봐도 이 소년심판의 내용이 실제와 비슷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선생님, 저 언니들 일진이라고 하던데요."

"남자친구를 뺏겼다고 서로 싸우고 난리예요."


"저 언니들 무서워서 못 지나가겠어요."

"며칠째 집을 나가서 학교에 안 나온대요."


급식을 먹고 나서 교무실로 걸어가는데 대여섯 명의 6학년 아이들이 강당 바닥에 앉아서는 강당을 지나가는 저학년 아이들을 보며 키득거린다. 강당에서 놀면 안 된다는 학교 규칙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고래고래 큰소리를 지르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자기들끼리 웃느라고 주변의 사람들이 하는 말이나 움직임에는 관심도 없다. 딱 봐도 학폭 영화나 드라마 한 편이라도 찍을 분위기인데, 저 아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저렇게 큰소리로 말하고 행동하는 건지 묻고 싶었다. 영웅이라도 된 듯한 분위를 연출한다.


물론 아이들이 교사나 어른이 말한다고 그 말을 모두 다 알아듣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말을 하지 않거나 지도를 포기한다면 과연 그 아이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알까. 아이들은 오늘 가르친다고 오늘 당장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는 변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누군가는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교사와 어른이 할 일이다.



'버려지는 아이들'


교사는 학교폭력으로 인해서 위험해지는 양쪽의 아이를 살펴봐야 한다. 피해를 입는 아이는 당연히 보살펴야 한다. 무력감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무능함으로 인해서 피해를 입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시켜 주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같은 상황이 생기면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을 낼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아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해 학생들의 교정지도가 필요하다. 또한 반드시 그들의 행동에 대한 합당한 처벌을 주어야 한다. '잘못을 하고도 멀쩡히 잘 지내는 모습'이 피해 아이들이 견뎌내기 힘든 일이다. 타인을 괴롭히고도 멀쩡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잘 살아간다면 그 가해 아이들은 앞으로 '괴물' 같은 인간이 될지 모른다. 사회의 '악'과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그건 가해 아이들을 방치하는 또 다른 형태의 '아동 학대'라고 본다. 반드시 잘못된 행동을 교정해 주어야 한다. 그 아이들도 바르게 자랄 권리가 있다.


지금 생활지도를 바르게 하기 위해서 교사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이런 맥락과 일치한다. 그리고, 이것이 꼭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것이다.



'부모는 절대 할 수 없는 일'


자식을 고치는 일은 부모가 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다. 그것은 자식의 결점이 부모에게는 안 보이는 허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학교에서 교사가 반드시 교정해 줘야 한다고 본다. 힘들지만 우리 교사들이 힘을 냈으면 한다. 선량하고 착한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고, 나아가 바른 사회가 되기 위해서다. 그리고, 우리 아이가 썩은 사회에서 살지 않고 제대로 된 인간다운 곳에서 멀쩡히 살도록 하고 싶은 엄마 교사의 마음이다.



어른이 더 노력해야 아이는 바르게 자랄 것이다. 


교사는 더 그래야 한다. 적어도 아래에 적힌 변명이나 행동으로 나의 반에 들어온 소중한 아이들은 기만하지 않았으면 한다. 아이는 성장과정에 있는 불완전한 존재이고, 그런 아이를 감싸 안아서 바르게 가르치는 일이 우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일을 잊지 못한 건 네 잘못 아니니?'

'조용히 넘어가면 될 일을 왜 그러는 거야?'

'나중에 이야기하자'

'...'(묵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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