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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미 윰글 Nov 11. 2023

당기는 부모, 뒷걸음질 치는 아이

위험한 늪

알림장 안 포스트잇


"이 과제는 이미 검사받았고요. 교과서는 좀 찾아주세요."

"선생님의 확인 도장이 이미 찍혀 있거든요."

"00 책 좀 찾아주세요."

"후이(가명)는 수업 시간에 교과서도 없이 수업을 한 걸까요?"


우리 반 아이들에게는 3월부터 매일 부모님에게 알림장 확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부모님이 바빠서인지 거칠게 자라온 아이들은 입에는 욕을 몸에는 거친 행동을 달고 있다. 가슴에는 화가 많고 친구가 하는 말에 쉽게 흥분한다. 아이들끼리 복도에서 지나다가 어깨라도 부딪치면 똑같이 자신의 어깨나 손을 날려서 상대를 밀쳐야 직성이 풀려한다. 이 모습을 보고 어디서부터 아이를 가르쳐야 할지 고민을 하다가 알림장을 통한 인성교육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이만 교육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기고, 부모님께 확인을 받아오라고 했다. 그래야 그 내용이 가정과 학부모에게 전달되어 학교와 가정의 연계 교육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이 학교에 내가 부임한 지 3년 차인데 '알림장 인성교육'은 그럭저럭 효과는 보는 중이다. 한 학년을 맡고 일 년이 끝날 때쯤에는 아이들의 눈빛은 달라져 있다.  


하지만, 학급에는 알림장에 이런 글을 남긴 학부모 같은 분도 있어서 힘이 빠진다. 이 분은 작년에도 우리 반 아이의 학부모였다. 그렇다면 나를 잘 알고 있고, 내가 어떤 마인드로 학급을 운영하는지 익히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느낌의 글을 남겼다는 사실에 더 서운해진다. 간단한 인사 한 마디 남길 여유조차 이 글 속에는 없다. 적어놓은 글 한 마디 한 마디에서 화가 묻어난다. 무엇이 이 분을 이리도 격앙시켰을까. 제일 궁금한 건 '마지막 글이 누구에게 묻는 말인가'라는 것이다.


후이(가명)는 과제를 오랫동안 하지 않았고, 학교에서 지도하는 걸로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가정에서 아이가 숙제로 할 수 있도록 봐달라는 내용의 쪽지를 알림장에 적어 보냈다. 그 부분에 학부모는 이런 반응을 보냈다. 하지만 나는 그 학부모가 한 말의 이유를 묻고 싶지 않았다. 그건 이런 학부모가 학교에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식의 반응에 일일이 답을 하다가는 끊임없이 학부모와 다퉈야 하고 그건 아무런 보람도 의미도 없는 항의성 질의응답의 '늪'에 빠지는 일이 된다. 또한 그래봐야 그건 결국 '아이를 버리는 일'이 된다. 그러니, 어른이 그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 나는 의미 없는 다툼은 버리는 걸 선택한다. 그리고, 오늘도 알림장을 펴고 아래의 글을 적어 보냈다.  


"말을 할 때는 상대를 배려해야 합니다. 그것이 예절입니다."


후이(가명)는 오늘 소개할 또 한 명의 위험한 아이다. 아니, 위험에 빠져있는 아이다. 부모가 '보호'라는 이름으로 가로막아서 바르게 변할 기회를 주지 못하는 아이다. 그래서 내가 또 포기해 버릴지 모르는 우리 반의 사랑스러운 또 한 명의 아이다. 충분히 바르게 자랄 수 있지만 부모가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발전의 희망'을 놓쳐버릴지 모르는 위험한 아다. 올해 나에게 숙제로 다가온 아이, 오늘은 이 '후이'라는 아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까 한다.





어머나


알림장에 적힌 학부모의 글은 나를 두 번 놀라게 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한껏 날려서 성의 없이 쓴 글씨체였다. 두 번째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본인이 적은 글을 담임교사가 읽을 게 뻔한데도 불구하고 앞뒤 문맥이 맞지 않는다. 그만큼 생각 없이 급하게 글을 적어 보냈다는 뜻이다. 김주환 님의 책 '회복탄력성'에서 '소통 능력''내용'의 차원과 '관계의 형성과 유지'의 측면을 모두 지닌다고 했다. 그렇다면 후이(가명) 학부모의 글은 내용적으로는 '담임교사에게 내리는 지시서'였다. 그 지시 내용은 '교과서를 찾아내라'라는 것이다. 아이가 잃어버린 물건을 대신 찾아준 경우는 많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학부모가 담임교사에게 업무 지시를 내리는 일은 난생처음이다. 그것도 인사 한 마디 없이 갈겨쓴 글씨체로 된 것은 더욱 그러하다.



씨체


담임교사는 3월 첫날 아이 편으로  '아동 기초 조사서' 집에 보낸다. 이는 주로 아이를 파악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된 조사서이다. 예전처럼 그 내용이 상세하지는 않지만, 꼭 필요한 내용은 포함하고 있다. 주로 학교에서 요구하는 명부를 작성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면 학부모는 이런 내용을 자필로 적어서 다음날 학교로 제출한다. 그런데, 이 기초 조사서는 인쇄물로 배부되기 때문에 모든 학부모가 수기로 작성한다. 사람의 글씨체를 보면 타고난 성향을 가늠할 수 있다. 그리고, 수정이 불가능한 양식에 어떤 내용을 적을 때의 신중함으로도 그들의 성향이 파악된다. 이런 여러 가지를 고려하면 직접 학부모와 만나지 않고 기초조사서만으로도 어느 정 학부모의 성향을 가늠할 수 있다. 물론, 이는 정확하지 않고, 단지 오랜 교직 경력에 비추어 짐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맞아 들어간다. 물론 후이(가명)의 경우도 대부분 맞다.



글씨체와 말투


무성의하게 갈겨서 쓴 글씨체에 성의와 예의라고는 하나도 없는 내용의 쪽지로 보아서 학부모의 성향이나 모습은 그려졌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부모는 아이에게서 한 걸음 물러서야 한다.' 아이가 자랄수록 떨어져 서 있는 그 걸음의 수는 늘려야 한다. 그만큼 더 아이를 믿어야 하고, 그의 말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 주며 자신의 미래를 향해 한 발 더 전진하도록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 하지만, 후이의 학부모는 그러지 못했다.


1교시 수업이 이미 시작되었는데, 교실의 전화벨이 울렸다. 수업 중이라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혹시 급한 연락인가 싶어서 받은 전화는 후이 부모님의 연락이었다.


"선생님, 후이는 오늘 교과서가 없어서 숙제를 하지 못한 것이니 그렇게 알아주세요."

"어제 숙제가 있었으니 미리 교과서를 챙겼어야 하는데 안 그랬나 봐요. 다음에는 숙제가 있는 날에는 꼭 미리 교과서를 챙겨 와야 한다고 저는 말해줬지만, 집에서도 한 번 더 이야기해 주세요."


"선생님, 후이가 교과서를 잃어버렸다고 하네요. 교과서 좀 찾아주세요."

"교과서를 잃어버린 걸 저한테 왜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요? 미리 말했으면 학교에 있는 여유분을 챙겨줄 수도 있었을 텐데요. 그리고, 저희 반은 수업 시간에 교과서가 없으면 과제 검사를 못 받거든요. 그래서, 교과서가 없었을 리가 없는데요. 후이가 교과서를 잃어버린 것이 맞나요""


"선생님이 무서워서 말을 못 하겠대요."

"어머나, 후이는 저한테 엄청 말을 잘합니다. 집에 가서는 그렇게 말씀드리나 봐요. 그리고, 제가 무섭든 무섭지 않든 자신이 할 말은 해야 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아이에게 이야기해 주세요. 어머님께서 후이를 아기처럼 대하시는 것 아닌가요?"


"..."


과연 학부모는 후이의 발전을 생각하는 내 진심을 이해했을까. 부모가 나서서 아이를 변호하거나 대신 나서주면 아이는 한발 뒤로 물러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할 일을 대신해 주는 누군가가 있는데, 아이는 당연히 자신이 할 일을 미룰 것이다. 나라도 그럴 것이다. 그러면 언제까지 이런 일이 반복될까.


"학부모님은 아이가 몇 살이 되면 이런 챙김을 그만두실 건가요?"


수능시험일에 지각을 한 고3 학생에게 "왜 이렇게 늦었어요?"라고 물으니, "엄마가 늦게 깨웠어요."라고 해서 시험 감독관이 당황스러워했다는 말을 들었다. 후이의 학부모는 아이가 몇 살이 될 때까지 챙길 것인지 꼭 물어보고 싶다. 나중에는 아이에게 울면서 '제발 그러지 말고, 자기의 일은 스스로 좀 챙겨 봐!'라고 애원하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무조건 아이를 다 챙겨주려는 어리석은 행동을 멈추라고 말하고 싶다. 아이를 '자기 일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아이 어른의 늪'에 빠뜨리지 않으려면 말이다.


것이 현직교사로서 '아이를 자주적으로 키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조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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