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유미 윰글 Nov 04. 2023

회색 아이

'회색빛'에서 '살구빛'으로

"왜 이렇게 예뻐졌어?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니?"

"아니에요. 선생님!"


한 여자아이가 운동장을 가로질러서 긴 머리를 나풀거리며 내게로 달려온다. 그 애는 작년에 내가 담임을 했던 서희(가명)였다. 하지만, 4학년 때와는 뭔가 달라 보였고, 나는 그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이는 무표정한 얼굴을 내게 보였다. 하지만, 운동장 건너편에 서 있던 내게 달려온 서희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5학년이라는 학년은 그렇다. 고맘때 아이들은 가만히 있어도 뭔가 불편해하고 어떤 일을 해도 무겁게 느낀다. 그저 그렇고 그런 나이이고, 이건 아이뿐만이 아니다. 학부모 상담을 하다 보면 울컥해서 눈물을 흘리는 분이 있다. 그럴 때면 내가 아이 엄마라는 사실에 감사할 때가 있다. 적어도 육아의 고통과 어려움은 이미 알고 있으니, 공감을 표현할 수는 있어서다.


오늘은 나의 아침 걷기의 당번일이다. 8시 20분부터 운동장에 서서 우리 학교 1, 2, 3학년 아이들이 운동장을 걷는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 당번을 맡은 교사는 이 시간 동안 아이들이 걷기 라인을 잘 지키는지 서로 다투지는 않는지 살핀다. 그리고, 위험한 물건이나 상황은 없는지 수시로 확인한다. 그러다 아이들과 같이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선생님~~~"


오늘은 가만히 서서 아이들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여자아이들 다섯 명 정도가 내게 다가왔다. 작년 4학년 때 담임을 맡았던 아이들이었다. 이 시간이면 언제나 이렇게 나에게 몰려와서 5학년 동안 있었던 일이나 자기들의 신변잡기들을 내게 들려준다. 그리고, "아무개는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고자질을 한다. 하필이면 작년에 담임을 맡은 아이의 동생이 두 명이나 우리 반에 있어서 "동생이 선생님 말씀을 안 들으면 많이 혼내주세요."라고 말을 한다.


이렇게 말을 하느라 분주한 아이들 틈으로 무표정한 서희의 얼굴이 보였다. 그 아이는 작년까지만 해도 활기찼다. 그런데 언제부터 이렇게 다른 분위기를 가지게 되었을까. 무슨 고민이라고 있나. 아니면 친구 사이에 어려운 일이라도 생긴 걸까. 궁금한 일도 물어보고 싶은 말도 많았지만, 탁 트인 운동장에서 다른 아이들도 많은데 질문을 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요즘은 학원에 다녀?"

"아니요. 안 다녀요."


"우와, 너무 좋겠다. 소원 풀었네."

"네. 좋아요."


"그래, 언제 선생님 교실에 놀러 와."

"네. 그럴게요."


"그래, 그럼 잘 걷고 들어가."

"네. 선생님!"


유난히 신경이 쓰이고 눈이 가는 서희에게 무심히 인사를 건네고 교실로 들어왔다. 하지만, 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참 사춘기를 지나고 있을 저 아이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작년에도 자주 표정이 굳었던 서희는 시간이 날 때마다 내게 와서 이렇게 물었다.


"학교가 집보다 더 좋아요."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요."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물론, 4학년 아이라면 이런 질문을 자주 한다. 그렇지만, 서희는 유난히 어두운 표정으로 이 고민을 나에게 건넸다. 주중에는 학원을 밤 7시까지 다녔다. 중학생이 거의 대부분인 그곳에서 수업을 들으며 저녁까지 공부를 한다니. 아침 8시 30분부터 12시간을 공부에 매달리고 있었다. 그것도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말이다. 이 말을 듣기만 해도 갑갑한 마음이 들었다. 어른도 12시간을 공부에 매달리라고 하면 힘에 부칠 텐데 말이다. 그래도 늘 "괜찮아요."라고 말했던 서희는 정말 괜찮았던 걸까. 그런 아이를 보면서 난 늘 이런 생각을 했다.  


'힘들어서 나쁜 길로 빠지면 안 된다.'






회색 아이



"서희가 요즘 일진이 되고 싶대요. 선생님, 얘 좀 혼내주세요."


둘째 아이의 예방접종을 맞히러 보건소에서 갔다가 엄마와 같이 온 서희를 만났다. 이런 말을 하는 엄마를 보면 서희는 어떤 생각이 들까.


"그럴 리가 있나요? 우리 서희가 얼마나 착실한데요."


급하게 떠올린 이 말로 그 상황을 얼버무렸다. 아이를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여러 사람이 모여있는 그곳에서 굳이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 무슨 의도로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지 아이 엄마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을 묻는 것도 서희에게 또 다른 부담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만두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우리 서희 참 힘들겠다.'


4학년 때 서희는 밝고 적극적이었고 표현이 많았다. 말괄량이 기질이 다분해서 남자아이들과도 잘 어울렸다. 그러면서도 속이 깊어 친구들의 잘못된 행동을 보면 작은 일 정도는 넘어가는 아량을 지녔다. 표정은 여유로웠고 그래서인지 친구들이 서희를 잘 따랐다. 이런 점을 높이 평가받은 건지 몰라도 올해는 반장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5학년이 시작된 지 이제 겨우 7개월인데 서희는 4학년과는 전혀 다른 아이가 되어 있었다. 물론, 학년이 바뀌고 그 아이의 생각이 달라졌다. 서희에게는 사춘기의 호르몬이 흐르고, 그 아이의 주변 인물도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니, 서희는 이미 작년의 그 아이가 아니다. 이걸 부모도 받아들여야 한다. 아이는 제자리에 있지 않고 늘 걸음을 걸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부모의 손에서 벗어나 자신의 속도로 인생길을 걷는다. 그런데, 부모가 자신의 손에 꼭 쥐고만 있으려 하면 그 아이는 오히려 그 범위를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쓸 것이다. 그래서 부모와의 다툼과 갈등을 일으키고 아이와 부모 사이에는 고통을 일으킨다. 그 둘 사이에서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배려해야 한다면 그건 인생을 먼저 살아본 부모가 아닐까. 우리는 알고 있다. 아이의 흔들림은 한때이고 성장을 위한 요동이라는 것을. 그러니 부모는 '아이를 가만히 기다리고 믿어주면 된다'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내가 나를 믿듯이 아이 또한 믿어줘야 한다.' 


돌아보면 도덕 교과서에서 하지 말라고 하던 행동을 나 또한 어릴 때는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멀쩡한 어른으로 잘 자라 있다. 반항도 해보고 일탈도 해봤지만, 지금은 그 기억이 현실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니, 부모가 바른 모습만 보여준다면 아이도 바르게 잘 자랄 것이라고 믿으면 된다. 오히려 그 믿음을 보여주면 아이는 믿음을 져 버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널 믿는다. 네가 어디에 있든, 그리고 어떤 일을 하든 엄마와 아빠는 널 믿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해." 


부모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기를 권한다. 이런 말은 아이의 얼굴을 '회색빛'에서 '살구빛'으로 바꿀 것이다.

이전 01화 넌 이미 어른이구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