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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미 윰글 Oct 28. 2023

넌 이미 어른이구나

고맙고 고맙다

손톱이 빠지다


"제발 좀 바로 앉아보자."

"연필은 필통에 넣고, 아침에 오면 연필은 한 자루만 책상에 올려놓자. 이걸 꼭 기억하면 좋겠어."

"기우(가명)야, 가방은 가방걸이에 걸어야지. 이러다가는 친구들이 지나가다가 가방을 고 넘어질 것 같아."


기우(가명)는 내 말은 듣는 건지 마는 건지 확인하기가 어렵다. 매일 같은 말을 수도 없이 내게 들어도 그다음 날이 되면 또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하지만, 교사인 나는 이 아이가 바뀔 때까지 끊임없이 같은 말이라도 또다시 말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담임을 맡은 일 년 동안 내가 기우에게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어떤 날은 이런 일이 버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오늘이다. 기운이 쭉 빠지고, 우리 반 아이들의 목소리가 귀에 날카롭게 박힌다. 무기력해지고 소리를 낼 힘을 잃는다. 그럴 때면 어디 조용한 자리에 가서 쉬고 싶다. 하지만, 학교 어디 구석에도 그럴 수 있는 곳은 없다. 복도를 오가는 아이들의 음성이 다시 내 목소리를 키운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 반의 한 아이가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 기우가 다쳤어요."


우리 학교는 1, 2학년만 교실에서 배식을 한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배식을 돕는 배식당번이 있다. 일주일에 다섯 명씩 돌아가면서 정해지는데 이번 주에 배식을 담당하는 다섯 명의 아이 중 두 명은 배식차를 교실로 들여놓았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인 희재(가명)는 급식차의 뚜껑을 들어 올리던 중 그만 그 손을 놔 버렸다. 그런데 하필이면 기우의 손가락이 그 뚜껑 밑에 깔리게 된 것이다. 그 장면을 본 우리 반 아이들은 비명을 질렀다. "선생님, 이것 보셔요."라고 외치는 소리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무슨 일인지 몰라서 급식차 주변을 둘러봤다. 4교시는 수학 시간이었고, 뒤늦게 과제를 검사받으려는 아이의 책을 보는 중이었다. 원래는 내가 하는 일이었지만 그 사이에 희재가 나를 돕고 싶어서 급식차 뚜껑을 열었던 것이다. 그 시간은 겨우 3초 정도 그곳을 지키지 못했을 뿐인데 그 일이 벌어진 것이다.


기우(가명)는 다친 손가락을 쭉 펴서 내게 보여주며 다가왔다. 슬쩍 보니 손가락에 껍질이 벗겨져 있는 것 같았다. 아이의 표정은 덤덤했다. 다행히 '큰일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잠시 후 아이가 울먹거렸고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크게 다친 거다.'


기우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아이의 손가락을 살펴봤다. 손가락에 붙은 것은 살갗이 아니었고 손톱이었다. 아이의 손톱이 통째로 빠져서 손톱이 있던 자리에 덜렁거리면서 매달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소리를 지를 뻔했다. 하지만, 아이 앞에서 애써 덤덤한 모습을 보여야 했다. 내가 소리를 지르면 아이가 놀랄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피는 흐르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도 어리둥절해서인지 처음에는 울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더니, 3분 정도 후부터는 고통이 몰려오는지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아팠을까.'라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우선 반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기우의 손가락을 잡았다. 더 이상 어디에 부딪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시간은 12시 12분. 점심시간이니 다른 교사에게 아이를 맡길 수도 없다. 그렇다고 우리 반 아이들을 모두 남겨두고 내가 교실을 비울 수도 없었다. 우선 우리 반에서 제일 야무져 보이는 아이 한 명을 불러서 "보건실에 기우를 좀 데려다 줄래?"라고 부탁했다. "네"라고 하는 아이에게 "절대 손가락이 부딪히지 않도록 해야 돼."라고 단단히 일렀다. 그리고, 기우에게 말했다.


"보건선생님께서 잘 안내해 주실 거야. 그리고, 선생님이 엄마에게 연락해서 학교로 오시라고 할게. 너무 걱정하지 마."

"네, 선생님."


인터폰을 들고 보건실로 연락했다.


"선생님, 저희 반 아이가 손톱이 빠졌어요. 그래서, 지금 보건실로 갔습니다. 아이를 좀 바로 봐주셨으면 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어머님께 연락을 드려서 바로 학교로 오시라고 해 주세요."


"네, 선생님."


나는 기우의 어머니께 연락을 드렸다. 다행히 어머니는 집에 계셨고, 학교로 바로 오시겠다고 말씀하셨다. 통화를 끝낼 때쯤에 보건 선생님께서 핸드폰으로 연락을 주셨다.


"선생님, 기우 어머니와 연락이 되셨나요? 제가 지금 바로 학교에 옆에 있는 병원으로 바로 가려고 합니다. 아이 어머니와 다시 통화하셔서 병원으로 어머님이 바로 오시게 해 주세요. 그게 낫겠어요. 점심시간에 걸리면 한 시간 넘게 아이가 기다려야 하는데 아무래도 그렇게 되면 상처에 안 좋을 것 같아서요. 바로 병원으로 갈게요."

"네, 바로 제가 어머님과 통화를 할게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이의 손가락도 걱정이고, 점심시간에 걸려서 아이가 제대로 제시간에 치료를 못 받을까 봐도 걱정이 되었다. 보건선생님은 아이를 거의 끌고 가다시피 해서 병원에 도착하셨다. 보건선생님도 아이도 점심을 먹지 못했다. 다행히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병원에 도착했지만, 10분 후에 점심시간이라고 접수를 안 받아준다는 걸 보건선생님께서 억지로 고집을 피우셔서 진료가 가능했다고 한다. 병원에 접수를 하고서 기다리는 사이에 기우의 어머님이 병원에 도착하셨다. 보건선생님은 아이가 뼈사진을 찍으러 들어가는 걸 보고 학교로 돌아오셨다.





핑계


"시간이 없어요."

"네가 무슨 시간이 없다는 거니?"


기우는 숙제나 과제를 해오라고 하면 늘 시간이 없다는 말을 한다. 아이가 핑계를 대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말을 하면 안 돼. 무슨 일이든 하려고 해야 할 수 있는 거란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건 핑계가 아니었다. 그 아이의 집에 어떤 사정이 있어서인지 모르지만, 아이는 매일 10시가 되어야 귀가했다. 학교가 끝나면 늘봄에 학원에, 공부방까지 간다. 그리고, 저녁은 공부방에서 먹는다고 한다. 그러면 엄마가 해주는 밥도 먹지 않는다는 말이다. 나는 그 말을 들으니 '아이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평소에 실내화를 벗고 다니면서 양말도 없이 있는 그 모습이 떠올랐다.


'9살이라는 나이'


초등학교 2학년이라면 한참 가정과 보호자의 돌봄이 필요한 나이다. 물론 가정마다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매일 14시간씩 바깥에서 다니는 9살짜리 아이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늦게까지 다니면 힘들지 않니?"

"괜찮아요. 늘 그랬어요. 그리고, 어쩔 때는 9시에 들어갈 때도 있어요."


기우의 그동안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요즘 욕 한 마디 안 하는 아이가 없다. 거짓말은 달고 사는 아이도 있다. 하지만, 기우는 그렇지 않다. 일 년이 다 되어도 친구와 싸우는 모습이 없고, 늘 편안한 얼굴로 학교 생활을 해 왔다. 밝은 얼굴로 친구와 선생님을 대하며 어떤 일에도 톤이 높은 목소리로 해맑게 답한다. 그 목소리가 커서 내게 꾸중을 들어도 "헤헤헤"라고 하며 노여움을 부리지 않는다.


여태 기우의 이런 긍정적인 면을 난 왜 더 크게 느끼지 못했을까.






상처가 아물다


"어머님, 기우는 좀 어떤가요?"

"네, 손톱은 아직 나지 않았지만 상처는 다 나아서 이제 병원에서는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다행이에요. 그래도 조심은 해야 할 것 같아요. 아직 학교에서는 아프다고 하더라고요."

"네, 선생님."


기우는 글씨를 쓸 때 아직 불편하다. 하지만, 무난히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 나는 아이를 볼 때마다 "조심해, 손가락을 더 다치면 안 돼."라고 잔소리를 한다. 그러면서 불평하지 않고 지내는 기우에게 고맙다.


"저 집에서는 뭐든지 평소처럼 다 해요. 이제 아프지 않아요. 괜찮아요. 선생님!"


기우의 손톱이 빠진 그날의 그 순간을 3주가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반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고, 희재는 놀란 표정으로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다친 기우는 울지도 않고 가만히 고통을 삼키고 있었다. 내가 자기를 달래는 말을 따르며 아픈 손가락을 잡고 보건실로 향하는 기우를 보면서 기특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 아픈데 그 고통을 참아내는 모습에 기특하고 고마웠다.


평소 기우는 내 눈에 산만하고 자기 물건 정리를 잘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아이의 곁을 지날 때마다 "정리하자, 책상 위에 물건을 좀 넣자. 필통을 가방에 넣고, 자세를 바르게 하자." 등의 말을 했다. 그런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이런 기우에게서 이와는 다른 면을 보게 되었다.


'의젓함, 참을성, 진득함, 배려'


기우는 자신을 다치게 한 희재를 탓하지 않고, 그 아이가 하는 사과를 받아주었다. 물론, 희재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라는 것을 기우와 나는 안다. 하지만, 아이가 다치는 상황에서 난 솔직히 희재를 살짝 원망했다. '조금 더 조심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다친 기우는 그런 태도를 3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희재에게 보이지 않았다. 그런 아이의 마음이 고마웠다. 그리고, 아이는 3주 동안 손톱이 빠진 자리를 소독하고 치료받는 과정에서의 고통을 잘 참아내고 누구 한 명 원망하지 않았다. 통증을 이겨내며 학교에서 본인이 할 일을 묵묵히 해 나갔다. 기우의 자리를 지날 때마다 아이의 손가락과 무덤덤한 아이의 표정에 눈이 갔다.


'넌 이미 어른이구나!'


누군가를 원망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 어른이다. 아니 어른스럽지 못한 어른이다. 학교에 근무하다 보면 어른보다 나은 아이를 본다. 아이들은 친구가 잘못해서 용서를 구하면 요즘 말로 '쿨하게' 용서를 해준다. 서로 싸움을 하고도 돌아서면 '헤헤' 하면서 금방 같이 논다. 어른이 누가 그럴 수 있을까.


다툼이나 나를 다치게 한 상황은 누구에게든 화를 일으킨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차분하게 고통을 이겨내고 시간을 흘러 보내며 몸과 마음에 난 상처를 극복하는 아이는 이미 '어른'이 아닐까.


오늘도 아이에게서 '어른'을 본다.


고맙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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