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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자 농부 Oct 21. 2021

아아와 켄타우로스 4화

병진은 잠자리를 찾아 헤매다 며칠 전 찾았던 낭떠러지를 떠올린다.

30분쯤 달렸을까. 태평양의 그랜드 케니언이란 별명이 붙은 와이메아 케니언의 입구를 알리는 간판이 나타났다. 여기서부턴 조금 천천히 가자. 어차피 아무도 없으니. 병진이 속도를 줄여 걷기 시작하자 주변으로 야생닭 들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공항에서도, 지금도, 닭들은 병진에게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다만 좀 귀찮게 여기는 눈치. 병진은 며칠 전 인간의 모습으로 왔을 때보다 훨씬 더 주의를 기울여 닭들이 이동하는 곳, 잠자는 자리 등 그들의 동물적 움직임을 살폈다.


“집중하자 집중. 낭떠러지 앞 공터를 찾아야 해.”


그는 괜히 소리 내 말했다. 온통 붉은색이었지. 외계 행성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그 작은 언덕을 찾아야 해. 비상용으로 챙겨 왔던 전자 손목시계의 조명을 켜 주변을 비췄다. 달그닥 달그닥. 산길을 더듬거리는데 익숙한 향기가 코끝에 걸렸다. 공터로 이어진 좁다란 길 입구에 피어있던 작은 꽃들에서 맡았던 향기였다. 흙길을 따라가니 찾고 있던 낭떠러지 앞 작은 공터가 나타났다. 병진은 오랜만에 긴 숨을 내쉬었다. 일단 그는 가방을 나뭇가지에 걸어두고, 상체와 하체가 만나는 지점에 걸쳐두었던 바지를 등에서 분리했다. 땀에 젖은 옷은 나뭇가지에 널고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아 폰을 켜자 휴가 연장 승인과 함께 온 부장의 이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노 과장,

조부상이라고. 조의를 표하네. 내가 지난번에 이야기한 건은 하던 대로 일단 심과장이 진행하고 있어. 오면 이야기하자고.    

  

부사장 직보 건은 까다로운 과제지만 고과에 반영될 만한 건이고, 잘 마무리한다면 자리가 부족한 차장 승진에 유리하게 작용할 텐데. 돌아가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지. 감춰진 부장의 읍소에 짧은 답장을 보낸 후 배터리를 아끼기 위해 폰을 껐다. 이제 지구를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는 인공위성 중 그 어느 것 하나도 병진의 위치를 알지 못했다. 포식자가 없는 섬에서 그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아침 병진은 기세 등등한 태양 빛에 눈을 떴다. 네 개의 다리에 힘을 줘 일어서자 발아래 세상이 눈에 들어왔다. 찬란한 태양빛이 닿은 나무, 바위, 물과 흙이 금빛으로 반짝였다. 융기된 땅들은 고대설화의 거인 무리 같았다. 내려다보니 힘찬 물줄기가 상류에서 하류로 흐르고 있었다. 인간이었을 때완 다르게 힘찬 물소리가 들렸다. 예민한 청각 때문에 중세의 병사들은 전투에 앞서 말의 귀를 멀게 했다더니, 그럴만한 청력이었다. 실제로 켄타우로스가 된 인간의 이야기 빼곤 말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들은 꽤나 많이 찾아 읽었다. 그에 비해 인간의 특성이란 무엇일까. 도구의 사용. 복잡한 언어체계. 지구의 가장 큰 오염원....... 뉴스 화면 하나가 떠올랐다.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아이들은 성난 얼굴로 멸종 증후군을 호소했지만 서울의 병진은 과민하고 순진한 선진국 아이들의 배부른 소리라고 여겼었다. 멸종 직전인 자신의 현재보단 적어도 낫겠지, 함부로 짐작했었다.      


매일 아침 병진은 검색 앱을 눌러 헤드라인을 확인하는 버릇이 있었다. 엄지를 따라 흐르던 그의 시선을 붙든 건 ‘하와이의 반인만마’라는 헤드라인이었다.


사진 출처: 

https://www.instagram.com/pre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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