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클릭하자, 호텔 복도와 풀장 쪽 CCTV에 찍힌 병진의 옆모습과 뒷모습이 등장했다. 적외선 카메라가 비춘 병진의 모습은 말머리가 없는 말을 탄 남자거나 켄타우로스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기사의 결론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했다. 목이 탔다. 일단 물을 찾아야 해. 한 번에 하나씩. 병진이 살면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때마다 외쳤던 문장이었다.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6시 반이었다. 관악산이나 도봉산이었으면 부지런한 등산객들에게 꼼짝없이 들키고 말았으리라 생각하며, 병준은 눈을 감았다. 크지 않은 개울물이 근처에 있었다. 소리를 따라 길을 건너니 붉디붉은 땅 위를 흐르는 작은 개울이 나타났다.
갈증에 시달리던 그는 처음엔 손으로 물을 떠마시다가 곧 얼굴을 처박고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그 편이 더 편했다. 물이 혈관을 타고 온몸의 말단에 이르자 병진의 몸은 이번엔 싱그러운 풀을 원했다. 길가의 키 작은 나무들에 다가가 조심스레 연한 이파리들을 따다 감자칩을 욱여넣듯 입에 넣고 씹었다. 병진이 낯선 풀을 음미하는 사이 낡은 사륜구동 픽업트럭이 빠른 속도로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차가 가까워지자 그는 재빨리 개울의 가장 낮은 곳으로 가 온몸을 웅크렸다.
운전자석에서 연보라 머리 소녀가 내렸고, 뒤이어 분홍머리 소녀와 금발머리 소년이 하차했다.
“맞아, TV에서 본 사람, 그 사람이 아이스 아메리카노 시킨 사람이야. 근처에 있을 거야.”
운전자석에서 내린 소녀의 말이었다. 그들은 주변을 살피더니 병진이 간밤에 잠을 청했던 낭떠러지 쪽으로 갔다. 잠시 후 길 건너편에 나타난 연보라색 머리 소녀의 손엔 병진의 티셔츠가 들려있었다.
“난 근데...... 실제로 보면 좀 무서울 것 같아.”
남자아이가 말했다.
“그러니까 넌 집에 있으라니까, 꼭 따라와서.”
분홍머리 소녀는 팔짱을 낀 채 동생을 나무랐다.
“우리가 찾아야 해.”
“말은 생각보다 빠르니까, 일단 차로 다시 이동하자. 숨을만한 곳엔 다 들려보자.”
어쩌지. 나갈까. 아니지, 위험할지도 몰라. 미국 애들은 총기도 다룰 줄 알 텐데. 혼자 생존하는 것보단 나으려나. 쉬이 평정심을 잃지 않던 서울의 병진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새 일어서서 원을 그리며 서성였는데, 미처 결론을 내리기도 전에 차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도로 위로 올라선 차는 서서히 속도를 올려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때 병진의 뱃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그는 거의 반사적으로 도로 위로 튀어 올랐다. 먼저 수풀 속에 숨겨뒀던 배낭을 꺼내 둘러메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속도감이 짜릿했다. 꼬불꼬불한 도로를 따라 모퉁이를 두 번 돌았을 즈음 차 뒤꽁무니가 다시금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차도 곧 속도를 줄여 길가에 섰다.
“좋은 아침입니다.”
그는 최대한 숨을 고르며 미소를 지어 보이려고 애썼다. 지난주 출입국 사무소 직원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얼굴 양옆으론 땀방울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