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며칠 전에도 여기서 커피를 사 갔었지. 익숙한 녹색 로고를 보자 병진의 몸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간절히 원했다. 어쩌면 당분간 커피를 마시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그의 몸은 이미 드라이브 스루용 스피커 앞에 다가가 있었다. 빨간 버튼을 누르자 여자 목소리가 나왔다.
“반갑습니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그 말에 병진은 어떻게든 좀 도와달라고 외칠 뻔했다.
“디카페인 아이스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요.”
그는 서울에서 늘 하던 대로 디카페인 커피를 시켰다.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카페인을 먹어도 되는 것일까? 위는 인간의 모습을 한 상체에 붙어 있으니까 만성이 되어버린 역류성 식도염만 걱정하면 될 일. 아니지. 그게 문제가 아니지. 풉. 문제는 더 큰 문제로 덮인다더니. 몇 걸음 앞으로 가자 작은 창 너머로 연보라색 머리를 한 앳된 직원이 보였다. 그녀가 빨대를 집는 사이를 틈타 병진은 재빠르게 앞쪽으로 이동했다. 그녀의 입장에선 말대가리가 앞쪽에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현실을 편집한 셈이었다.
“와우. 말 탄 손님은 처음이에요. 멋진데요.”
대답을 하려고 눈을 바라보자 왼쪽 눈꼬리 옆에 문신으로 새겨진 세 개의 별이 눈에 띄었다.
“네, 취미예요.”
말은 타본 적도 없으면서 영어로 가장 쉬운 말을 뱉어버렸다.
“저희 집에도 앨리스라는 말이 있었어요, 제 언니였어요. 그래서 제 이름도 알렉스로 지었대요. 말 이름이 뭐예요?”
진짜로 말을 타고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병진은 옷에 달린 모자를 푹 눌러쓰고 아메리카노를 빠른 속도로 들이켰다. 뼛속까지 시원한 기분이 들었고, 그제야 등과 엉덩이 쪽 털이 흠뻑 젖어 있었다는 게 느껴졌다. 몸에 닿는 밤바람이 찼다. 손으로 조심스레 만져보니 짧고 빽빽하게 난 털들이 젖어 있었다. 군대 시절 땀에 젖었던 까까머리의 촉감과 비슷하다면 비슷하달까. 작은 초소에서 북한 땅이 보이느냐 마느냐로 공기의 질을 가늠했던 스물한 살의 아득했던 여름밤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