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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자 농부 Oct 21. 2021

아아와 켄타우로스 2화

병진은 뜻밖의 사건으로 호텔에서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최종 목적지는 거주민도 관광객도 가장 적다는 카우아이(Kauai) 섬이다. 병진은 휴대폰을 꺼내 게임 앱을 켰다. 화면에 좀비 떼가 어기적어기적 걸어 나왔고 그는 좀비들을 하나씩 처단했다. 뇌를 뜯어 먹히지 않으려면 적재적소의 공격 루트를 짜야했다.      

카우아이섬까진 4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섬에 내리자 제일 먼저 그를 맞아준 것은 야생 닭 무리였다. 인간들과 닭들은 서로가 익숙한 풍경이라는 듯 데면데면했다. 닭이란 공장식 닭장에서 항생제 섞인 사료를 먹으며 살다 몇 개월 후 도축되고 마는 운명이 아니었나. 인간에게 먹이를 구걸하지도, 인간을 경계하지도 않는 쿨한 닭이라니, 영 낯설었다. 먼발치에는 근육질의 산들이 걸려있었다. 보디빌더가 공들여 가꾼 가슴 근육을 자랑하듯 세로로 찢어진 근육들이 산을 360도 둘러쌌다.      




“미스터 노? 안에 있어요? 스티브예요.”


호텔 리셉션 매니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병진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틀째 룸서비스로 연명하고 있는 터인데 그릇을 내놓기도 조심스러워 쌓아 놓는 바람에 방은 엉망이었다. 화장실은 더했고. 말의 배설물은 인간의 것보다 규모가 훨씬 커서 화장실은 눈뜨고 못 봐줄 지경이었다.


“네, 여기 있어요.”


“전화를 안 받아서 올라왔어요. 문 열어보세요. 무슨 문제가 생긴 건가요?”


“아니요. 아닙니다.”


“체크아웃 연장 시간도 지났는데 지금 문을 열지 않으시겠다면, 제가 마스터키를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 예약 손님 받기 전까지 청소할 시간이 필요해요.”


병진은 일단 지갑과, 여권, 비상금, 보조배터리 등을 미리 넣어둔 배낭을 메고, 후드티 주머니에 휴대폰을 챙겼다. 그리고 안에 팬티와 양말, 티셔츠 등을 넣어 통통하게 채워둔 청바지를 허리 뒤쪽에 걸쳤다. 언뜻 보면 마치 사람이 말을 타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띠디. 철컥. 문이 열렸다. 며칠 새 병진은 키가 많이 자랐기 때문에 문을 통과하기 위해선 다리를 굽혀야만 했다. 문이 열리자 매니저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선 주저앉고 말았다.


“이 무슨... 이게, 어떻게 말이...”


매니저는 외마디 욕설을 내뱉곤 정신을 잃었다. 병진은 로비와 반대쪽, 뒤뜰로 난 문을 향해 달렸다.      


호텔 앞의 도로는 양방향이 각 1차선으로 이뤄진 좁은 도로였다. 그는 며칠 전 차로 왕복했던 와이메아 케니언(Waimea Canyon) 쪽으로 달렸다. 최후의 순간이 오면 가려고 정해두었던 곳이다. 저녁 9시, 가로등이 없는 길엔 말굽소리만 울려 퍼졌다. 딸그닥. 딸그닥. 다리가 두 개 있을 때와는 보행이 완전히 달라 처음엔 삐거덕 거렸지만 계속 달리다 보니 확연히 속도가 붙었다. 차도 인적도 없는 밤길을 한참 달리다 보니 어느새 모자가 벗겨져, 머리카락이 말갈기처럼 흩날렸다. 며칠간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 회사에서 하던 대로 학계의 영문 자료까지 찾아보았지만 자신과 같은 사례는 보고된 적이 없었다. 오직 신화 속에만 존재했다. 몸은 땀으로 젖어갔지만 얼굴에 닿는 바람이 찼다.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좌우로 흔들어 추위를 떨쳐내는데 전방에 스타벅스 간판이 영롱한 초록색으로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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