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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거나 Dec 05. 2021

더럽고 게으른 주말을 보내며

지금은 일요일 저녁 7시 44분. 내일 출근을 앞둔 나는 토요일 샤워를 거른 채 줌으로 글 모임에 참가하여 글을 쓰고 있다. 하루 샤워를 거른 탓인지 머리는 살짝 간지럽고 얼굴은 세안을 잘하지 않아 피지와 유분기가 한가득 있는 것 같다. 낮잠은 세 시간 퍼지게 자고 일어나서 남편이 해준 김치찜과 찌개의 중간쯤 되는 무엇을 먹었다.

출근하는 월요일 아침부터 기다리는 주말이지만 이번 주말도 여느 주말처럼 집 밖으로 꼼짝하지 않고 더럽고 게으르게 보냈다. 12월 말까지 건강검진도 끝내야 하는데 이번 주도 가질 못했다. 아니 가지 않았다. 그래도 토요일보다 오늘 하나 보람된 것이 딱 한 가지 있다면 오늘은 내가 맡은 학교 업무를 어느 정도 마무리 지었다. 내일 문서 보관에 관한 내부 기안만 올리면 한 업무는 일단락된다.

먹는 욕구에 매우 충실했으며 꽤 자주 검찰공화국이 될까 봐 불안한 마음에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들락거렸다.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들리지 않는 빈 시간은 딸아이와 숨을 곳이 뻔한 집에서 숨바꼭질을 했고 초성 퀴즈를 했다. 그리고 빌려온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몇 챕터 읽었고,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도 읽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왜 나는 브런치에 들리지 않고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이다. 누가 쓰라고 읽으라고 한 것은 아닌데 설명할 수 없는 죄책감이 든다. 심심하며 소설을 쓰고 있는 딸아이를 보면 부러운 마음도 든다. 가끔씩 몰래 훔쳐본 딸아이의 소설은 배경은 독일이지만 돈의 단위는 원이다.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소설이지만 외국이 배경이면 이름을 세 글자가 아니라 마음대로 지을 수 있다는 글을 대하는 딸아이의 쿨함이 부럽다. 내 딸에게는 글이 일종의 유희이다. 잘 쓰고 싶다는 나의 욕심 탓인지 요즘 나는 글이 유희로 느껴지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 좋은 구절을 찾고 싶고, 기억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앞선다. 글로 쓸 거리를 찾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책 모임에 올해 기억에 남는 책을 들고 가야 하는데

아직도 정하지 못했다. 분명히 좋은 책을 많이 사고 읽었는데 말이다. 학기가 끝나면 더럽고 게으른 주말이 평일까지 연장될 터인데 걱정이다.  방학이 되면 지금보다는 글을 많이 쓰고 읽는 내가 되고 싶다. 그러나 나는 안다. 가정법의 문장은 항상 가정에만 머문다. 게으른 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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