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하여
소싯적에는 운동의 대명사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일명 '일진'이라 불리는 무리들과 어깨를 견줄 정도로 명성을 날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느덧 시간이 흘러 나는 40대에 접어들었고 몸은 점점 쇠약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다행히 코로나가 시작될 때 실시한 건강검진에서 정상범위를 넘어선 여러 측정값을 보면서 시작한 다이어트로 다행히 쇠약의 속도는 줄일 수 있었다. 주중에는 음주를 잘하지 않고 주말에 몰아하는 성격이라 금요일에도 한잔하고 토요일에도 한잔하고. 일요일 장거리 라이딩 약속이 잡혔다.
라이딩 멤버는 대학교 동아리 친구들이면서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들로 아침 8시에 모여 출발하기로 하였으나, 역시 약속은 잘 지켜지지 않고 08:20이 되어서야 가을 하늘을 뚫고 출발할 수 있었다. 이번 루트는 칠곡군 왜관읍을 넘어가는 신동재를 넘고, 하빈면의 넓은 뜰을 지나 육신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낙동강 자전거길로 접어들어 고령강정보가 위치한 디아크(The ARC)에서 점심을 먹는 스케줄로 시작되었다.
시작은 아름다웠다. 맑은 가을 하늘과 아침의 상쾌한 공기 그리고 스스럼없이 친한 두 친구 녀석. 신천변에는 아침부터 조깅과 라이딩을 하는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었고 신천과 금호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자전거를 간략히 정비하고 신동재를 향해 페달을 밟았다. 아침을 만날 차려주는 거 먹고 다니는 친구 녀석이 당 떨어질까 오래간만에 슈퍼마켓 빵을 사줬다. 나는 다이어트 중이라 패쑤. 그리고 이어지는 신동재 고갯길은 팔공산 한티재나 청도 가는 헐티재에 비하면 작은 언덕에 불과하여 금방 넘을 수 있는 코스였지만, 내가 꼴찌였다. 이틀에 걸친 숙취가 아직 풀리지 않은 건가? 생각하며 다운힐로 지천면에 도착했다. 지천면엔 1박 2일에도 나온 유명한 막걸리 도가가 있다. 바나나 향이 향긋하게 올라오는 막걸리는 딱 1병만 사서 나눠마시고 하빈면으로 움직였다. 하빈은 평야가 넓게 펼쳐진 곳이라 익어가는 논을 사이에 두고 달리다 보니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대화가 가능할 만큼 차도 많지 않았다. 가을을 느끼며 달리다 보니 어느새 육신사에 도착하게 되었다. 사육신을 모신 사당이 있는 곳으로 삼성그룹의 이병철 회장 부인의 생가가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라이딩. 그저 스쳐 지나갈 뿐.
잠시 트럭이 다니는 도로를 지나 낙동강 자전거길에 진입했다. 큰 강을 옆에 끼고 달리는 기분은 신천이나 금호강보다 훨씬 운치 있었지만, 서서히 올라오는 엉덩이 통증과 무거워진 다리는 속도를 점점 더디게 하고 있었다. 달리면서 점심 먹고 지하철 타고 복귀해야지 하는 생각이 굴뚝같이 일어났고, 혼자 마음의 다짐을 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서 일요일 오후라도 가족과 함께 보내서 생존을 도모해야겠다고...
가을이 내려앉은 강변의 숲을 지나 고령강정보에 도착했다. 다양한 전동 이동수단을 탄 사람들이 복잡하게 돌아다니고 있어 상당히 위험해 보였다. 인파를 뚫고 디아크에 라이딩을 오면 항상 들르는 가게에 자전거를 세우고 굳은 몸을 풀어주었다. 잔치국수와 수육을 시키고 잠시 라이딩에 대해 대화를 나누면서 난 "밥 먹고 지하철 타고 가야겠다"를 시전 하였다. 친구 중 한놈은 나의 말에 어느 정도 동조하여 지하철 복귀가 성사되나 싶었지만, 체력만 좋은 무식한 친구 녀석이 여기까지 왔는데 80km를 채워야 다면 우리를 독려했다. 친구의 독려가 뭔 소용이겠나 싶고 지하철 타면 되는데, 그 녀석이 밥값까지 계산하는 바람에 마음이 약해져 남은 27km도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했다.
식사를 마치고 출발한 지 10분쯤 지났을까? 지하철 라인이 머리 위를 지나가고 있었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친구 녀석을 보채니 그냥 가잖다. 독한 놈. 다시 아픈 오른쪽 무릎과 바닥난 체력을 추스르고 가는데 뒤에서 '대기'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완주를 강행하자던 친구 녀석이 자전거와 함께 바닥에 널브러져 있지 않는가? 자전거를 돌려 보니 다리가 긁혀 찰과상을 입고 어깨다 아프다고 하는데,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잠시 쉬고 가기로 했다. 꾸역꾸역. 진짜 그때부터는 억지로 페달을 밟았다. 꾸역꾸역, 비틀비틀 한 시간을 더 달려 결국은 집에 도착했다. 총 이동거리 80km를 찍었다. 하루 이동거리로는 올해 최고 거리를 달성했지만, 3년 전 포항까지 110km를 달렸던 때로는 못 돌아갈 것이란 걸 실감하는 라이딩이었다. 출발할 때 가을을 느끼며 호기롭게 출발했지만, 돌아와서는 욕조에 몸을 누이고 40분을 졸고 저녁 내내 정신을 못 차렸다.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에서 일요일의 2/3를 혼자 놀다 온 사람 취급받게 되면서 눈치도 보여 몸은 더욱 처졌다. 쏟아지는 원망의 눈을 피하기 위해 저녁으로 갑오징어 볶음을 해주고 결국은 막걸리 한잔을 마셨다. 무릎에 파스를 붙이고 몸이 쑤셔 오지 않는 잠을 청하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난 몸은 여전히 천근만근, 살은 하나도 빠지지 않고, 무릎은 아직도 아프고 엉덩이 통증만 사라진 월요일 아침을 맞이했다. 친구들아, 적당히 타자!
ps. 친구 녀석이 넘어진 이유는 갑자기 풀숲에서 나온 비둘기를 피하려 손잡이를 갑자기 틀어서 그런 거였다. 동물을 사랑하는 녀석인가? 고프로를 이용해 촬영한 동영상을 통해 영상을 만들어 보았다. 내가 찍었으니 나는 나오지 않는다. 이 얼마나 자애로운 상황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