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란지교를 꿈꾸며

일상에 대하여

by sheak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도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
유안진 - 지란지교를 꿈꾸며 중


어렸을 적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라는 시를 좋아했다. 감성적인 성격이었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외향적인 생활을 했던 시기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겉과 속이 희석되긴 했지만, 아직도 속은 감성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고 겉은 외향적인 모습으로 살고 있다.

지금도 대학교 동아리 모임, 전 직장 모임, 여행계 3개, 대학 선후배 모임, 동네 번개모임, 군대 모임 등 다양한 모임을 주도하고 총무도 맡고 있으니 주변에 사람이 많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결혼식에 하객이 많아 친구 사진을 두 판 찍었으니...

하지만 위의 시처럼 그냥 부담 없이 찾아가서 차 한잔, 술 한잔 기울일 수 있는 친구가 더욱 소중해지는 나이가 되었다.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라도 단둘이 만나기 어색한 친구도 있고, 가까이 있어도 선뜻 전화번호를 누르기 망설여지는 경우도 있다. 20대에는 먼저 연락하는 것이 뭔가 '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난 아직도 가끔 유안진의 시처럼 갑자기 찾아가 연락을 하고 만나기를 청하는 행동을 많이 한다. 물론, 집에 없거나, 일이 있어 못 만나는 경우도 있는데 그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 친구도 편하게 사귈 수 있다.

직장에서 술자리를 가지면 대부분 4명 이상이 모이는 경우가 많다. 대화도 직장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고, 직장 상사에 대한 험담을 비롯하여 계속 반복되는 주제가 다루어질 때도 많다. 직장에서의 술자리는 상대방보다는 직장의 내용이 우선이고 개인의 이야기는 실종된다. 물론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그들만의 정보를 공유하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직장을 그만둔 선배들을 보면 퇴직 전 그렇게 술자리에서 친하게 지내던 사람과 연락도 안 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그들의 친분은 직장이 이어준 것이어서 그 틀이 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관계도 정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단 둘이 술을 마시는 것이 중요하다. 대화에서 배제될 일없고, 대화에 대한 집중도도 높고, 대화 주제에 대해 신경 쓸 일이 없어지면서 진솔한 관계가 맺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장에서 친한 사람을 만들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많듯이 그저 직장이라는 조직으로 묶여있고 맘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단 둘이 만날 일은 잘 없다. 노력해야 그런 자리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다들 지쳐 그냥 그냥 살아간다.

당신에게는 '지란지교를 꿈꾸며' 시처럼 언제든 편하게 연락해서 만날 사람이 있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나는 몇 명이나 떠오를까? 생각해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떠오르지만, 직장에서 알게 된 사람은 두 명이 생각난다. 한 명은 같은 학번으로 처음 만날 때부터 친하게 지낸 녀석인데 그때에도 만날 여럿이 모여서 개인적인 얘기를 하진 않아 깊은 교류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배낭여행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도 언젠가 같이 가자는 말과 함께 아직 한 번도 해외여행을 나간 적이 없다고 하여, 그 자리에서 같이 해외여행을 가기로 했다. 짧은 칭다오로의 3박 4일 여행이었지만, 둘이 여행을 하고 술을 마시고 하면서 속마음도 내비치고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에 같이 헬스장을 다니면서 저녁 겸 한 달 동안을 막걸리 집을 드나들며 많은 이야기를 했고 더욱 친해지게 되었다. 또 다른 한 명은 같은 부서의 직장상사인데 일을 하면서 친해지고 술도 한잔씩 하면서 대들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여하튼 다양한 일들을 같이 겪은 9살 많은 사람이다. 지금은 뭐 이름도 부르고 반말도 섞어 쓰며 친구같이 지내는데, 그 사람과도 친해지게 된 계기는 둘이 떠난 캄보디아 여행에서였다. 12월 말에 출발해서 술집에서 새해도 맞이하고 오토바이 타고 마사지도 받으러 다니고, 의견이 안 맞아 싸우기도 하면서 더욱 친해지게 되었다. 지금도 집이 가까워 운동하다 들어가면서 맥주 사달라고 하는 편안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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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내 맘을 먼저 보여주면 뭔가 손해 보는 느낌이었다. 한동안 그랬고, 지금도 그런 맘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요즘은 먼저 보여주고 기다리는 게 더 편하다고 생각하고 실천하고 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이 선택이라고 한다. 선택이 중요하단 의미와 함께 많은 에너지를 선택을 위한 정보 얻기와 판단에 쓴다는 의미이다. 연인도 아닌데 신경 쓰며 상대의 마음을 예측하고 비교하고 하는 것에 에너지를 쓸 필요가 있겠는가?


선택의 카드를 상대에게 주고 편해지는 길은 맘을 먼저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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